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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오물에서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텃밭에 심은 복초이가 배추만큼 커졌다. 올해는 왜 이토록 실하게 자라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이른 봄에 닭똥과 소똥을 주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나오는 계란 껍데기와 커피 찌꺼기도 썩혀서 같이 주었다고 하니, 역설적이지만, 배설물과 썩은 물질에서 생명이 쑥쑥 자란다는 말이 된다.   ‘오물에서 생명이 자란다.’   이 모순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인간의 배설물에서 인간이 자란다는 블랙 코메디를 쓴 작가가 있다. 정보라 작가의 『머리』라는 제목의 단편이다.   작가는 시간 강사로 십 년을 일했던 자신의 모교를 고소했다. 이유는 부당 노동 착취다. 약자가 당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랜 법적 투쟁을 벌여서 승소했다.   처음 읽고 나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내용인즉슨, 변기에서 매일 버린 오물에서 생명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젊은 여자가 변기에서 자라는 머리 비슷한 오물을 보고 기겁한다. 그 머리처럼 생긴 것은 몇십 년 동안 자라서 인간의 형태를 갖춘다. 다 자란 오물은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여자는 질색한다. “내가 왜 너의 어머니냐? 나는 너 같은 것을 낳은 적이 없다.” “아닙니다. 저는 어머니 몸에서 나온 것을 매일 먹고 자랐습니다. 그러니 저의 어머니입니다.” 형상을 갖춘 오물이 어느 날 변기에서 걸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여자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여자의 몸은 이미 늙어 있었다. 가늘어진 머리칼과 거칠어진 피부를 보며 늙음을 한탄하는데,  자신의 젊은 모습이 변기 속에서 나왔다. 여자가 매일 내놓은 오물을 먹고 자란 여자는 아름답다.     ‘젊은 여자’는 발버둥치는 늙은 여자를 변기에 밀어 놓고, 변기 물을 내리고 뚜껑을 닫는다. 늙은 여자의 옷을 대신 입고 화장실을 빠져나간다.   작가의 ‘저주토끼’라는 단편집은 2022년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2023년에는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외국에서 먼저 알려져서 국내에서 뒤늦게 인정을 받은 경우다.   우리는 젊음에서 늙음으로 가는 몇십 년 동안 먹고 처리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연인들은 분위기 좋은 식당을 찾고, 자식은 고심하여 선택한 식당에서 부모님을 대접한다. 일상과 경사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어디로 가는가. 다음날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혼자 처리한다. 축제의 중심에 있었던 음식의 후처리 과정에서 간혹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단편에 등장하는 여자는 젊은 시절을 대충 살고 나서는 순식간에 젊음이 사라졌다고 허무해 한다. 그녀의 젊음은 어디로 갔는가? 빠져나간 오물 사이로 소비된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타난 생명을 적대시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봄에는 유달리 비가 많았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불평하면 남편은 반대로 말한다. “올해는 대박 날 거야.” 하면서 비를 귀한 손님처럼 반긴다. 비가 닭똥과 소똥을 땅속으로 깊이 넣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텃밭의 복초이는 배설물과 썩은 것을 먹고 오늘도 쑥쑥 자란다.  김미연 / 수필가이 아침에 오물 오물 사이 사회 분위기 모순적 아이디어

2025.06.0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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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오물 풍선, 오물 발상

지난달 28일 미국 대통령 선거 TV토론은 평양에서도 유심히 봤을 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미약한 성량과 불안한 눈빛을 보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후보가 백악관에 재입성하면 진행할 3차 정상회담 장소를 구상했을까. 약 열흘 전 평양 순안공항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새벽 2시 45분까지 기다리며 속 끓이던 때를 상기하며, 그래도 트럼프 같은 구관이 명관이라고 생각했을까.   한편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오물 풍선으로 바빴다. 북한은 5월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6차례 오물 풍선을 38선 이남으로 날려 보냈다. 김 부부장은 첫 살포 다음날 조선중앙통신에 본인 명의 성명을 냈다. “‘표현의 자유 보장’을 부르짖는 자유민주주의 귀신들에게 보내는 진정어린 성의의 선물.” 기생충 인분과 쓰레기로 북한 주민의 고된 일상이 주목받자 이젠 애꿎은 종잇조각을 주로 보내며 표현의 자유를 논하다니, 왠지 딱한 마음마저 든다. 기자뿐만 아니다. 지난주 주한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유럽인 기자는 “그런 도발을 해야 하는 북한 처지가 딱해 보인다”고 했고, 동남아인 교수는 “수준이 낮아도 너무 낮다”고 혀를 찼다.   딱한 건 오물 담은 풍선을 날려 보내자는 발상 자체가 오물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북한 지도부다. 핵심 인물인 김여정 부부장이 직접 나서 궤변을 늘어놓는 것도 애처롭다. 오물 풍선을 보내겠다는 의기양양한 발상과 행동이 결국 한반도의 갑갑한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더 답답해진다. 그렇다고 약 2678만원(서울시와 경기도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이라는 재산 피해가 묵과될 순 없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마주친 김여정 부부장을 기억한다. 특급 호텔 마리나샌즈베이에서 걸어나오던 그는 흰색 실크 블라우스 차림에 한껏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런 그가 6년 후 구상한 논리가 고작 ‘오물 풍선을 보내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니, 실망스럽다.   바이든 대통령의 TV토론 직후 그의 측근부터 뉴욕타임스(NYT) 논설실까지 아름다운 퇴장을 권하는 것을 보며 김 위원장과 김 부부장 남매는 역시 민주주의는 불편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사실 그 반대다. 최고 권력자에게 용퇴를 권할 수 있는 자유, 그런 표현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가 빛나는 이유다. 오물풍선으로 북한이 더럽히는 건 스스로의 얼굴임을 김 위원장과 김 부부장은 깨달아야 한다. 오물 풍선은 발상 자체가 오물이다. 전수진 / 한국 투데이·피플팀장노트북을 열며 오물 풍선 오물 풍선 6차례 오물 자유민주주의 귀신들

2024.07.03.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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