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을 때, 베토벤은 인간의 존엄성, 귀중함 뿐 아니라 고통과 빈곤을 가슴에 품고 전능하신 분을 경외하는 신앙의 신비를 음악으로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장엄미사(Missa Solemnis)’와 9번 교향곡을 예로 들 수 있다. 그가 49세에 시작해서 4년이나 걸려 완성했다는 ‘장엄미사’의 낮 공연을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 있는 월트디즈니 홀에서 2월의 마지막 주일날에 보았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음악 감독 구스타프 두다멜(45)은 이 ‘장엄미사’를 ‘우리 (인간) 자신보다 더 위대한, 그 무엇인 내부에 존재하는 믿음-그 믿음에 대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종교적인 표현이 아닌, 철학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베토벤의 음악 속에 생존해 왔던 영(靈)이 물 들거나 나약해지지 않고, 듣는 이들에게 베토벤이 뜻하던 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지휘자 두다멜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의 관계를 17년 동안 숙성시킨 후, 올해 비로소 연주를 시도해 불만 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필하모닉은 135년의 긴 역사를 가진 아마추어 오레오 카딸랴(OREO CATALA) 합창단 94명과 전문 실내 합창단인 코르 데 깜브라(COR DE CAMBRA) 31명과 함께 막간 휴식 없이 80여 분 동안 연주했다. 네 명의 독창자도 함께했는데 그중에 한국인 백석종 테너가 멋지게 독창, 이중창, 사중창을 불렀다. 내가 그날 들었던 ‘장엄미사’는 그 제목처럼 엄숙하고, 웅장한 음악이었고 참으로 숭고하고, 진실한 기도였다. 기도…전능하신 분에게,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또 변하기를 거부하는 인간의 그분을 향한 찬양, 때로는 무엇인가를 구하고, 또 간혹 따지고 싶어 하는 항변이 기도가 아니겠는가. 이번 공연은 감독 지휘자 두다멜이 뉴욕 필하모닉으로 옮기기 전 마지막 이별 공연 중의 하나였다. 참고로 그는 스페인에 살고 있고, 베네수엘라와 스페인 시민권이 있다. 두 번째 아내가 스페인 여성이다. 남아메리카 베네수엘라의 평범한 음악 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공공 청소년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가로 성장한 세계적 지휘자의 삶이 나에게는 경이롭게 보였다. 한국과 미국에 사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청소년 음악 프로그램이 무척 부러웠다. 한국은 유신 정책으로 힘들고, 베네수엘라는 석유 생산시설 국유화로 외국 투자자들과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는 협상을 해야 하였던 시기(1975년)에 엘 시스테마(El Sistema: The System) 라는 어린이를 위한 단체가 만들어졌다. 지하 주차장에서 11명의 어린이를 모아 시작된 이 단체는 10여 년 후에 세계적인 지휘자로 성장할 4살짜리 꼬마 두다멜을 환영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접했던 두다멜은 작곡 공부에 이어 지휘 공부를 하게 되었고, 18세에 베네수엘라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었다. 두다멜에 관한 이야기가 한국과 한인 차세대를 연결해서 생각하도록 한다. 한마디로 부럽다. 빈부 차이가 심하고, 인간관계, 국가 행정의 수직적인 정책도 별로 다를 바 없는 두 나라이지만, 베네수엘라는 이렇듯 성공적인 청소년 음악 프로그램을 이끌어 왔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 베네수엘라의 선각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 악기의 개별적인 소리가 오케스트라에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고, 여러 사람의 음성 하나하나가 모여서 함께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것은 절제와 협동 그리고 사회적 융합을 뜻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또 이 단체는 문체부 소속이 아니었고 국민의 복지에 관여하는 보건사회부 산하에 있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두다멜의 ‘장엄미사’ 지휘는 정중하면서도 발랄하고, 심각하면서도 경쾌했다. 이 곡을 들으면서 편안히 사는 범부(凡婦)인 나는 마치 수도승처럼 ‘장엄미사’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음악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축복하고 있었다. ‘장엄미사’를 듣고,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에게 햇빛은 편안하게 함께 했고, 저물어 가는 엷은 햇살은 아름다웠다. 숨 쉬는 나날의 엄숙함, 신비함, 아름다움, 가냘픔, 웅장함을 희미한 텐트 속에 모두 집어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보았던 석양은 슬프도록 붉었다. 슬픔이 행복의 일부일 수 있다는 해석이 틀리지는 않는 것 같다. 세상이 깊이 좋아하고 존중하는 베토벤의 작품은 그의 신체적 불온전(不穩全)함을 뛰어넘고 만들어졌다. 얄팍한 재주나 우연이란 오래가지 않는다. 영구히 좋은 모든 것들은 충분한 성숙의 시간을 보내고 탄생하는 것 같다. 베토벤의 4년과 두다멜의 필하모닉 그룹의 17년처럼 말이다. 류 모니카 M.D. / 종양 방사선 전문의·미주 한국어진흥재단 명예 이사장문예마당 베토벤 불구 청소년 음악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2026.04.02. 20:01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세계적 명성을 얻기까지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종신 상임 지휘자를 비롯한 거장 지휘자들의 덕이 크다. 그들의 재능과 열정, 그리고 뛰어난 리더십이 청중들을 사로잡아 감히 넘볼 수 없는 베를린 필의 아성을 쌓은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등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유명 오케스트라의 단원은 모두 세계적인 연주자들이다. 그들이 각자의 개성은 죽이고 지휘자의 지휘봉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하모니를 이루며, 연주하는 모습은 예술의 극치다. 한 사람의 지휘에 의해 완벽한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지휘자의 뛰어난 곡 이해와 강력한 리더십, 그리고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절제된 최고 기량을 발휘하는 연주자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정치도 오케스트라가 아닐까. 대통령이 국정철학과 비전을 갖고 청중인 국민을 위한 최고의 연주를 할 수 있다면 위대한 지휘자의 칭호를 받지 않을까. 그러한 지휘자를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모두에게 만족감을 줄 수는 없더라도 애쓴 흔적은 있어야 한다. 지휘자는 한 파트의 음에 오류가 있다면 이에 신속히 대처해 오케스트라 전체가 엉망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지휘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청중들은 완벽하지 못한 연주에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청중들은 온전한 하모니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지휘자나 각 파트의 연주자들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듣는 귀는 그들보다 더 높이 있기에 말이다. 이번 한국 총선 결과를 봐도 그렇다. 집권여당의 대승이 마땅한데 어처구니 없게도 참패를 했으니 막말로 여당은 완전히 스타일 구긴 꼴이 되었다. 결국 지휘자인 대통령에게 책임이 전가되어 버렸다. 지휘자가 청중인 국민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청중은 지휘자를 향해 무엇을 원했을까. 지휘자에 의해 연주자가 하나 된 아름다운 선율의 하모니를 기대했다. 청중이 오케스트라에 동화되어 감동하는 그런 것을 원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왜 그럴까? 보수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얻은 것도 있었지만 잃은 것도 많았다. 그것도 막판에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과연 보수의 가치란 무엇일까? 보수의어학적 의미는 보존, 유지를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주의자는 무엇을 지키고 유지하고 싶어 할까? 그 보존의 대상은 대개 가족, 전통, 신앙, 사유재산, 법, 질서, 도덕 등을 의미한다. 그러니 사상적 이념도 보수의 가치다. 왜냐하면 보존의 대상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한이 분단되어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이념만을 고집하는 것이 보수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잘못됐다. 진보보다 앞서 국민의 삶을 헤아려야 한다. 한국은 개발도상국 단계를 지났지만 여전히 빈부 격차가 심하다. 그것도 수도권 중심으로 더 심각하다. 그런데 개념에 대한 오해로 보수는 부자들을 위한 것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 그래서 서민층에서는 보수에 대한 적대감이 있다고 본다. 선거 때가 되면 진보는 포퓰리즘을 앞세워 표를 모은다. 어떻게 보면 국민이 보는 시각에서 보수는 먹는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고, 진보는 이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에 진보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생활고를 겪게 되면 정부의 정책에 민감해진다. 그런데 서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 정책이 미흡하니 어느 누가 여당에 표를 주겠는가. 이번 총선에선 보수가 주장한 범죄자 문제 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표심을 갈랐다고 본다. 특히 수도권은 이런 문제에 민감한 지역이다. 그러니 포플리즘적 공약에 더 관심이 가는 것 아니겠는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어려운 역할이다. 그래도 청중에게 감동을 주는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게 임무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오케스트라 지휘자 오케스트라 지휘자 상임 지휘자 거장 지휘자들
2024.04.22. 18:44
오케스트라의 지휘대에 선 상상을 해보자. 지휘할 곡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 1악장은 4분의 4박자다.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첫 음을 시작하면 두 박자 후에 바이올린이 일제히 등장한다. 그런데 만일 바이올린 주자들의 연주가 잘못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달 7일 프랑스에서 파리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얍 판 츠베덴은 연주를 멈췄다. 그 후 처음부터 다시 했다. 연습도 아니고 청중이 있는 공연에서 음악을 멈추고 다시 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지휘자는 잘못된 지휘를 인정하는 수치를 견뎌야 하는 일이다. 영국의 음악 비평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1958년 지휘자 아드리안 볼트가 BBC 심포니의 연주를 중지한 후 처음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음악 무대에서는 생각보다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순간에 지나간 음(音)은 고치거나 덧칠할 수 없다. 그나마 혼자 연주할 때는 실수의 치명도가 낮다. 잘못했어도 만회할 수가 있다. 하지만 여럿이 연주할 때는 빠르게 판단할 리더가 필요하다. 바이올린 연주자 수십명이 한번 제각각 연주하기 시작하면 다시 맞추기 어려우니까. 리더가 잘못 판단하면 재앙이 된다. 2019년 러시아 모스크바. 세계적 대회인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한 중국인 피아니스트가 결선에 올랐다. 그는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기로 돼 있었는데, 지휘자는 순서를 반대로 알고 있었다. 사고가 일어날 조건은 충분했다. 연주 전 곡목을 알리는 방송은 지휘자만 알아들을 수 있는 러시아어로 나왔다. 오케스트라가 라흐마니노프를 시작했을 때 차이콥스키를 준비하던 피아니스트는 제대로 된 음을 연주하지 못했다. 상황 파악을 하고 오케스트라와 맞췄을 때는 첫 6마디쯤 놓치고 난 다음이었다. 당시 콩쿠르 측은 순서를 제대로 전하지 못한 진행 요원을 징계했지만 문제는 지휘자에게도 있었다. 피아니스트가 아무 음도 치지 못하고 당황하며 지휘자를 바라봤지만 지휘는 계속됐다. 지휘자는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판단도 불가능했다. 콩쿠르 측은 참가자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겠다고 했지만 참가자가 거부했고, 이 장면은 두고두고 콩쿠르의 오점으로 남게 됐다. 1958년에 아드리안 볼트는 BBC심포니와 마이클 티펫의 교향곡 2번을 지휘하다 첫 2분을 조금 넘기고 연주를 멈췄다. 뒤로 돌아서서 청중에 “모두 나의 잘못”이라 한 후 처음부터 연주했다. 이 연주는 유튜브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이달 초 츠베덴과 파리 오케스트라가 다시 시작한 쇼스타코비치 또한 훌륭했다고 한다. 리더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으면 꼬여버린 연주로 남을뻔한 장면들이다. 김호정 / 한국 중앙일보 기자J네트워크 오케스트라 지휘자 오케스트라 지휘자 지휘자 아드리안 파리 오케스트라
2022.04.20. 1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