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최신기사

[문예마당] 1도의 온도

작년 연말, 카카오톡이 업데이트되면서 내 생일이 1월 1일로 잘못 바뀐 모양이다. 새해 첫날, 신년 인사와 함께 뜻밖의 생일 축하 메시지가 잇따라 도착했다.   “새해 첫날 태어났으면 매스컴도 탔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신기해하는 이도 있었다. 내 진짜 생일은 신록이 눈부신 오월이다.   “오늘 제 생일 아니에요.” 웃으며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일일이 답장을 보냈다.   어느새 나이테가 늘듯, 숫자가 더해지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세월이 쌓일수록 여러 의미를 덧입히게 되니, 예전의 기대와 설렘보다 왠지 서글픔이 먼저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하 메시지를 읽는 동안만큼은 인연이 남긴 따스함이 잔잔히 퍼져왔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아직 지워지지 않은 이름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 그 사소한 확인만으로도 희미해졌던 내 존재의 테두리가 또렷해지는 듯했다. 오류가 만들어 낸 엉뚱한 생일 덕분인지, 올해는 축하받을 일이 많으려나 하는  작은 기대만으로도 마음이 몽글해진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어떤 날은 황당한 사고로 낭패를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전혀 계산되지 않은 감동이 불쑥 다가오기도 한다. 얼마 전, 트레이더 조(Trader Joe's)에서 우유와 치즈 등 유제품 몇 가지를 들고 계산대 앞에 섰을 때였다. 낯선 히스패닉 할머니가 다가오더니 내 물건값을 대신 지불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영어를 못하는 그녀와 스페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끝내 소통하지 못했다.   다행히 히스패닉 캐셔가 통역을 도와주었는데, 그녀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이유는 없어요. 그냥 그러고 싶어요.”   내 뒤로 줄 서 있던 손님들도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나에게 캐셔가 말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그냥 받으세요.”     더 지체할 수 없어 나는 “그라시아스(Gracias)”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녀는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왜 처음 본 나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었는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혹시 한국 사람에게 크게 신세를 진 적이 있었을까. 그저 짐작만 해 볼 뿐이다.   지인 댁을 방문하러 가던 길이었다. 과일 한 박스를 사서 계산을 마치고 출구를 나서는데, 전도지를 나눠 주던 젊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저희 교회에 한 번 방문해 주세요.”   건네받은 초대장에 적힌 교회 이름과 위치를 보니, 개척교회 목사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영혼 구원이라는 사명을 품고 선택한 길이겠지만, 홀로 노방전도를 하고 있는 그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목사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나는 카트에 실린 과일 박스를 불쑥 내밀었다. 뜻밖의 행동에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하며 마음을 받아 주었다. 그 순간, 몇 달 전 누군가에게 받았던 호의가 문득 떠올랐다. 나 역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아마도 기독교인으로서 목회자를 향한 존경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관계를 맺는 일에서도 '득과 실'을 먼저 계산한다. 이익이 되지 않거나 감정 소모가 클 것 같은 관계는 애초에 걸러내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문을 닫고, 손해 보지 않기 위해 거리를 조절하는 일은 당연하게 여겼다. 그렇게 효율과 손익의 잣대는 인간의 마음마저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   이름 모를 히스패닉 할머니의 호의에도, 목사님께 건넨 과일 박스 한 상자에도 어떤 계산도 없었다. 만약 그 순간 서로의 이해관계를 먼저 따졌더라면, 낯선 이가 건넨 손길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은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계산 없는 마음은 오래도록 빛으로 남는다.   이유 없는 온기가 이 삭막한 세상의 온도를 아주 조금, 1도쯤은 올려놓지 않았을까. 김윤희 / 수필가문예마당 온도 수필 히스패닉 할머니 히스패닉 캐셔 과일 박스

2026.03.12. 21:19

[글로벌 아이] 한중관계의 온도

베이징 교민사회의 요즘 화젯거리 중 하나가 이번달 10~12일 열리는 K-FESTA(페스타) 문제다. 매년 이맘때 한국 중소기업들과 요식업체들이 베이징 한인타운인 왕징 시내에서 2~3일간 여는 행사인데 이번에 장소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왕징 한복판에 위치한 쇼핑타운 1층에 자리잡고 행사를 해왔다. 우리 제품을 알리고 한국 식품도 판매하는 연례 행사인데, 올해 당국이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행사를 허가하지 않았다. 결국 장소는 왕징을 벗어난 곳에 어렵게 잡았다고 한다.   작은 일 같지만 이런 일들이 중국에선 중요한 관심사다. 그도 그럴 것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일상적으로 처리되던 일을 갑자기 못하게 되는 경우가 중국에선 허다하다. 이번에도 행사장 불허에 교민들의 우려와 불만이 터져나왔다. 여러 경로로 확인해본 결과, 3월부터 베이징에서 실외 행사 허가 과정이 강화된 데다 예년 행사 장소에 화재가 난 일이 있어 안전 우려 때문에 허가할 수 없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무슨 꿍꿍이인가’사람들은 중국의 속내에 불안해한다.   반면 중국의 다른 지역에선 한국 기업들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여러 우리 기업 임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중국 지방 성급에선 예우가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 기업마다 담당자를 한 명씩 지정해 개별 관리를 하거나 당국이 먼저 접근해 사업 유치를 제안해 온다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중국 경제 침체로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내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미·일 협력 관계가 강화되는 가운데 중국 관료들이 낮은 자세를 보인다는 건 좋은 신호다.   지난 11일 중국은 국영언론 CGTN의 앵커였던 호주 국적의 청레이(成?)를 석방했다. 3년 가까이 가택연금 중이던 그녀를 석방시키기 위해 호주는 지속적인 노력을 했다. 이날 석방은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 해빙의 신호탄으로 해석됐다.   한중관계는 최근 교착 상태다. 사드 사태 때와 같은 보복 조치는 없지만 중국은 북핵 사태에 대한 접근, 탈북민 북송 등 민감한 이슈에 정중동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대미·대일 외교를 강화하면서도 아시안게임 총리 참석 등 중국과의 적절한 거리 유지를 위해 공을 들인다. 사드 사태 이후 7년, 한중 관계는 새로운 관계 설정의 갈림길로 접어들었다. 중국의 위기가 우리에겐 기회다. 북한 문제와 중국 시장 개방에 중국의 성의 있는 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올해 말 한·중·일 정상회의가 개최된다면 관계 정상화의 또 다른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박성훈 / 한국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글로벌 아이 한중관계 온도 행사장 불허 베이징 교민사회 실외 행사

2023.11.01. 21:33

[음식과 약] 국밥의 온도

뜨거운 라면 국물에는 찬밥을 말아야 국물이 흡수가 잘 된다고들 한다. 찬밥을 라면 국물에 말면 찬밥이 잃어버린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라면 국물을 흡수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틀린 설명이다. 우리가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국물이 밥 알갱이 속으로 침투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소금물에 파스타를 넣고 익혀도 파스타 내부로 스며드는 염분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메리카 테스트키친 팀이 실험한 결과 파스타 100g에 고작 0.3g에 불과하다. 소스는 면의 표면에 달라붙는다. 표면적이 넓을수록 소스가 더 잘 묻는다. 면과 면 사이 모세관 현상으로 소스가 붙잡힌다. 가느다란 면일수록 소스에 잘 버무려지는 이유다.   뜨거운 밥알 속에서 뿜어내는 김이 라면 국물 속으로 들어가서 라면 국물을 싱겁게 만든다는 설명도 틀렸다. 더운밥을 말아 국물 온도가 올라가면 그만큼 수분이 증발하는 양이 늘어난다. 찬밥을 말아 국물 온도가 낮아지면 수분이 증발하는 양이 줄어든다. 실제로 찬밥이나 더운밥을 국물에 말기 전후 염도를 측정해 봐도 별 차이가 없다. 맛으로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왜 찬밥을 국물에 말면 더 맛좋게 느껴질까. 온도 때문이다. 뜨거운 라면 국물에 찬밥을 말면 온도가 낮아진다. 국물이 너무 뜨거울 때는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같은 국물이어도 40~60℃에서 맛보면 70℃ 또는 80℃로 맛볼 때보다 더 짜게 느낄 수 있다. 찬밥을 뜨거운 국물에 말아서 국물 온도가 내려가면 더 짜다고 인지한다.     이와 비슷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온도로 음식이 제공될 경우 가장 짜게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뜨거운 라면 국물에 찬밥을 말아서 적당히 먹기 좋은 온도가 되었을 때 제일 짜고 맛있다고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국물이 이미 식었을 때는 국에 뜨거운 밥을 말아 먹는 게 찬밥보다 훨씬 맛좋다. 국밥집에서 토렴하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지금은 전기보온밥솥이 널리 보급되어서 뜨거운 밥과 국을 따로 낼 수 있지만 전에는 찬밥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내는 과정을 반복해 토렴한 국밥이 손님에게 훨씬 환영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토렴은 온도를 맞추고 딱딱하게 굳은 전분을 다시 호화시키는 비법이었다. 하지만 토렴한다고 해도 국물이 밥알에 더 배어들지는 않는다.   겨울에 적당히 따뜻한 국물보다 맛있는 음식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다 먹기엔 나트륨이 너무 많다. 국물까지 싹싹 비우면 국밥 한 그릇만으로 나트륨 섭취량이 하루 기준치를 넘기기 쉽다. 맛있는 음식일수록 아껴서 조금만 먹는 게 건강에 유익하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국밥 온도 국물 온도 라면 국물 나트륨 섭취량

2022.12.26. 18:06

[음식과 약] 국밥의 온도

뜨거운 라면 국물에는 찬밥을 말아야 국물이 흡수가 잘 된다고들 한다. 찬밥을 라면 국물에 말면 찬밥이 잃어버린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라면 국물을 흡수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틀린 설명이다. 우리가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국물이 밥 알갱이 속으로 침투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소금물에 파스타를 넣고 익혀도 파스타 내부로 스며드는 염분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메리카 테스트키친 팀이 실험한 결과 파스타 100g에 고작 0.3g에 불과하다. 소스는 면의 표면에 달라붙는다. 표면적이 넓을수록 소스가 더 잘 묻는다. 면과 면 사이 모세관 현상으로 소스가 붙잡힌다. 가느다란 면일수록 소스에 잘 버무려지는 이유다.   뜨거운 밥알 속에서 뿜어내는 김이 라면 국물 속으로 들어가서 라면 국물을 싱겁게 만든다는 설명도 틀렸다. 더운밥을 말아 국물 온도가 올라가면 그만큼 수분이 증발하는 양이 늘어난다. 찬밥을 말아 국물 온도가 낮아지면 수분이 증발하는 양이 줄어든다. 실제로 찬밥이나 더운밥을 국물에 말기 전후 염도를 측정해 봐도 별 차이가 없다. 맛으로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왜 찬밥을 국물에 말면 더 맛좋게 느껴질까. 온도 때문이다. 뜨거운 라면 국물에 찬밥을 말면 온도가 낮아진다. 국물이 너무 뜨거울 때는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같은 국물이어도 40~60℃에서 맛보면 70℃ 또는 80℃로 맛볼 때보다 더 짜게 느낄 수 있다. 찬밥을 뜨거운 국물에 말아서 국물 온도가 내려가면 더 짜다고 인지한다. 나트륨 섭취를 줄여야 하는 사람이라면 뚝배기에 펄펄 끓는 국밥보다 바로 먹어도 될 정도로 적당히 데운 국밥을 먹는 게 낫다.   이와 비슷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온도로 음식이 제공될 경우 가장 짜게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뜨거운 라면 국물에 찬밥을 말아서 적당히 먹기 좋은 온도가 되었을 때 제일 짜고 맛있다고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국물이 이미 식었을 때는 국에 뜨거운 밥을 말아 먹는 게 찬밥보다 훨씬 맛좋다. 국밥집에서 토렴하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지금은 전기보온밥솥이 널리 보급되어서 뜨거운 밥과 국을 따로 낼 수 있지만 전에는 찬밥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내는 과정을 반복해 토렴한 국밥이 손님에게 훨씬 환영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토렴은 온도를 맞추고 딱딱하게 굳은 전분을 다시 호화시키는 비법이었다. 하지만 토렴한다고 해도 국물이 밥알에 더 배어들지는 않는다.   겨울에 적당히 따뜻한 국물보다 맛있는 음식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다 먹기엔 나트륨이 너무 많다. 국물까지 싹싹 비우면 국밥 한 그릇만으로 나트륨 섭취량이 하루 기준치를 넘기기 쉽다. 맛있는 음식일수록 아껴서 조금만 먹는 게 건강에 유익하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국밥 온도 국물 온도 나트륨 섭취량 라면 국물

2022.12.22. 19:05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