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침에] ‘아디아포라(Adiaphora)’
남편이 매주 한 번씩 치러 가는 교회 탁구실이 문을 닫았다. 10년 이상 운영되던 탁구 교실이다. 탁구를 안 치는 내가 더 서운하다. 남편이 없는 그 시간은 오롯한 나만의 시간으로 독서나 사색하기 좋았는데 말이다. 며칠 전 후배를 만났더니 나와 똑같은 말을 한다. 후배의 남편인 집사님도 같은 탁구부원이었다. 그러고 보니 탁구를 좋아서 치는 당사자들에겐 운동으로 힐링이 되고, 그 배우자에겐 또 다른 휴식의 일석이조의 기회였는데 참 아쉽다. 생각이 짧은 누군가가 “금요예배도 안 나오면서 수요일엔 탁구를 치다니!” 하고 마치 신앙적으로 큰 죄를 짓는 듯 말을 하니 그야말로 김이 새서(?) 탁구실을 잠정적으로 닫기로 했다는 거다. 중세의 수도사도 아니고 현대교회의 평신도에게 그런 구닥다리 잣대로 신앙을 평가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교회의 건물은 커뮤니티에 되도록 많이 개방하여 신앙인이 아닌 이에게도 유용하게 쓰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미국교회들을 보면 커뮤니티의 시니어 교육, 요리교실, 댄스교실 등으로 개방하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나도 오래전 유학생 배우자 신분으로 미국에 왔을 때 남침례교단의 부인회에서 많은 걸 배워 큰 도움을 받은 기억이 있다. 탁구부원이었던 원로목사님도, 다른 교회에서 오시던 탁구애호가도, 전도 대상으로 점찍었던 이웃 주민도 탁구실을 닫았다니 실망이 크시다. ‘아디아포라(adiaphora)’라는 말이 있다. 헬라어 ‘아디아포로스’에서 유래한 용어로, 기독교의 성경이나 교리가 명시적으로 명령하거나 금지하지 않은 중립적인 영역을 뜻한다. 음식, 복장, 취미, 예배 형식 등 행동의 여부가 신앙의 본질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대수롭지 않은 것” 즉 “해도 좋고 안 해도 괜찮은 일”을 뜻하며 간단히 말해 목숨 걸 필요가 없는 일들이라는 말이다. 세상엔 굳이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참견하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들이 많다. 그 일을 계기로 요즘 교회가 “신앙의 고백과 교리는 있으나 사랑의 실천이 없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상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자기애’적 신앙생활만 하는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그가 비록 교회에서 리더역할을 하고 있을망정. 사랑 없는 특권의식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희생을 무효화시키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요즘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데 혹시 이런 일들이 원인일 수도 있지 않나 걱정스럽다. 복음은 ‘관계의 화해’이며 ‘제한성의 극복’이고 ‘시선의 확장’이라는 것을 믿는다. 이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교회 탁구실 요즘 교회 오래전 유학생
2026.02.10. 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