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했다. 50대에 신자가 된 후, 매년 한두 차례 하는 일이다. 고해성사에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 지난 삶과 언행을 돌아보며 그 안에서 잘못한 일들을 깨닫고(성찰), 뉘우치며(통회),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고(결심), 신부님에게 나의 죄를 고백하고(고백), 죄 사함을 받은 다음 그 죄에 해당하는 벌을(보속) 받는 것이다. 고해성사를 보고 하느님에게서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주었으면 적절한 보상과 용서를 구해야 한다.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그 후에는 다소 회의적인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보곤 했는데, 최근에는 기쁜 마음으로 고해소에 들어간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신부님에게 낱낱이 고백을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진심으로 죄를 깨달아 죄지은 이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죄사함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과연 무엇이 죄인가. 이건 사람에 따라 다소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주어진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 도울 수 있는데 돕지 않은 것, 남들 앞에 내놓기에 부끄러운 생각이나 행동 등이 모두 죄가 아닌가 싶다. 자녀가 여럿이다 보니 모두 늘 좋을 수만은 없다. 가끔은 섭섭한 일도 생기고, 그래서 한동안 소원해지기도 한다. 요즘은 이런 일이 생기면, 그저 “내 탓이요”하고 만다. 사실이 그렇다. 내가 부모 된 도리를 잘했어야 하는데, 뭔가 심기를 건드리는 언행을 했으니 자녀가 내게 섭섭함을 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웃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 이러쿵저러쿵하면 그 사람도 나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묵은 죄를 생각하다 보면 용서를 구해야 하는 당사자를 이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친절과 관용을 베푸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나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죄를 짓고 산다. 그러니 내게 상처를 입히고 죄를 지은 사람들도 있다. 변상과 사과를 받고 싶지만 상대방은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는 태도를 보인다면?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구절이다. 남의 죄를 용서해야, 나도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남을 용서하는 것이 나를 살리는 일이다. 용서하지 않은 일은 늘 마음에 남아 나를 괴롭힌다. 그 일을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용서하고 잊는 것이 최선이다. 얼마 전 차고 공사를 하며 아내가 이런저런 물건을 많이 정리했다. 차고가 넓어졌다. 내게 고해성사는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내가 지은 죄를 용서받으며 마음에 남아 있는 앙금을 털어낸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용서 한동안 소원하어지기 변상과 사과 차고 공사
2025.04.02. 18:39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용서와 관련한 성경구절이다. 기독교에서 용서(Forgiveness)는 핵심적인 신앙 개념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용서하시고, 신자들 또한 서로를 용서하도록 명령하신다는 가르침을 기반으로 한다. 성경에서는 용서를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한다. 불교에도 자비와 같은 용서와 유사한 개념이 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접근방식과 관점이 다소 다르다. 용서는 ‘죄나 잘못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용서는 특정 행위가 벌이나 제재를 받아야 할 ‘나쁜 것’임을 전제로 한다. 반면 불교에서는 죄나 잘못을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죄나 잘못은 벌해야 하는 것이 아닌, 가엽게 여기고 무지를 깨우치도록 인도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기와 살해는 나쁜 행위이기 때문에 벌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불교에서는 사람은 물론이고 죄나 잘못도 나쁜 마음이 아닌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애초부터 사람이든 일이든 용서할 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골목길에서 운전하다가 난데없이 홈리스(Homeless people)에게 심한 욕을 들은 적이 있다. 내 딴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분을 생각해서 천천히 간 것인데, 본인은 위협 혹은 조롱으로 느낀 듯 했다. 욕을 들었을 당시에는 불쾌했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소음이 가시지 않는 도로변에서 잠을 자고, 적지 않은 수가 마약에 손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다면 홈리스 상태에서 제정신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에 발길질을 하는 홈리스를 차주가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이와 비슷한 이유라 하겠다. 부처님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대자대비’이다. 대자(大慈)는 말 그대로 자비심을 이르는 것이고, 대비(大悲)는 사리 분별 못하는 어린 자녀가 제 눈을 제 손으로 찌르고, 칼날을 잡아서 제 손을 상하게 하건마는 그 이유는 알지 못하고 울고불고 하는 것을 보면 부모가 가엾은 생각이 나서 더욱 보호하고 인도하여 주는 것 같이, 부처님께서도 모든 중생이 삼독심(욕심, 성냄, 어리석음)에 제 스스로 악도에 떨어질 일을 지어 죄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늘 주위를 원망하는 것을 보시면 크게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어 정성으로 제도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홈리스는 물론 연쇄살인범에 대해서도 증오와 분노보다 연민과 제도의 마음을 내는 것이 불교 수행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이유 없이 욕을 하고 공공기물을 훼손하는 홈리스나 연쇄살인범을 처벌하는 일은 진리적이지 않은 것인가? 사람이 범한 죄와 잘못에 대해 시비를 가리고 그 행위에 상응하는 벌을 주는 현대사회의 형법체계는 부처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인가? 대종사께서는, “성자들은 주로는 도덕으로 자비 방편을 베풀지만, 때로는 도덕이나 법률로 중생을 제도하기도 한다.” 하셨다. 사회질서와 더 큰 죄업을 방지하기 위해서 적절한 벌은 필요하다. 벌 역시 넓은 의미의 자비라 할 수 있다. 법률과 정치가 자비가 되기 위해서는 증오와 분노심이 아닌, 연민과 제도의 심경이 바탕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email protected] 양은철 / 교무·원불교 미주서부훈련원삶의 향기 용서 의미 홈리스 상태 정치가 자비 불교 수행
2025.01.27. 17:57
한인 장기수 앤드루 서(50·한국명)씨가 조기 출소한 후 처음으로 언론에 소회를 밝혔다. 출소한 지 일주일만이다. 2일 일리노이주 윌링 그레이스 교회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서씨는 먼저 “30년 전 큰일을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갔다”며 “기쁘고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론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마음도 아프고 매우 복잡한 심경”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누나의 동거남을 총격 살해한 혐의로 100년형을 선고받고 19살(1993년) 때 수감 생활을 시작했었다. 서씨는 울먹이며 유가족에 대한 사과의 마음도 전했다. 그는 “제가 그분들에게 정말 큰 죄를 지었다”며 “피해자 가족이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더라도 나는 용서를 구할 것이며 기회가 생기면 꼭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서씨의 양아버지 김한철 장로가 본지에 인터뷰〈본지 2024년 1월31일자 A-3면〉한대로 향후 청소년 사역과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할 계획도 밝혔다. 서씨는 “아직 사회 경험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해봐야 하지만 내가 받은 것을 커뮤니티에 모두 돌려줘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며 “청소년과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서씨는 기자회견 내내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현재의 삶은 축복이고 감사할 뿐이며 여전히 얼떨떨하지만 두 번째로 태어난 것”이라며 “그동안 한인사회가 저를 버리지 않고 기억해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했다. 한편, 1976년 시카고에 이민 온 서씨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누나에게 의지해 살았다. 이후 누나의 사주를 받고 지난 1993년 9월 살인을 한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샀다. 서씨의 누나 캐서린(54)은 현재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장열 기자 [email protected]가족 용서 피해자 가족 그동안 한인사회 이날 서씨
2024.02.02. 20:59
30년만의 출소 눈물의 기자회견... “겸손한 자세로 커뮤니티에 봉사” “오랜 기간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신 한인 동포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한인 여러분의 기도와 성원 속에 오랜 수감생활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를 잊지 않고 앞으로 겸손한 자세로 조금이나마 사회에 봉사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9세 때인 지난 1993년 9월 시카고서 발생한 비극적 살인사건의 범인이자 피해자인 앤드루 서(50•한국명 서승모)가 2일 오전 9시30분 윌링 그레이스 교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 26일 일리노이 서부 키와니교도소서 30여년 만에 출소한 지 1주일 만이다. 이날 그동안 자신을 후원해온 김성민 변호사와 함께 자리한 서 씨는 “열아홉 살 때 저지른 큰 잘못으로 수감 생활을 하면서 깊이 회개해왔다. 과거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켜 여러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사망한 오두베인의 가족에게도 “미안하다”고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 서 씨는 이날 기자회견 내내 눈물을 닦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 30년동안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좋은 마음으로 어둠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현재의 삶은 축복이고 감사할 뿐이다. 여전히 얼떨떨하지만 한번의 실수는 끝났고 이제 두번째로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19살에 교도소에 가서 50대 아저씨가 돼 나왔다. 인터넷도 모르고 페이스북도 모른다”며 “차차 미래를 계획하겠지만 청소년들을 선도하고 커뮤니티에 봉사하고 싶다”고 밝혔다. “출소 이후 1주일간 김치도 먹고 감도 먹어보았는데 맛있었다”는 서 씨는 “한인사회가 저를 버리지 않아주셔서 고맙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한인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며 “그레이스교회와 목사님, 선한 사마리아 분들, 아버지 김한철, 김성민 변호사님께 특히 감사하고 직접 교도소를 면회 와준 분들께도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서 씨는 이날 기자회견서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했는데 한국어는 충분히 소통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는 “부모님이 어렸을 때 한국말만 하라고 해서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 씨는 대학 2학년 때 누나 캐서린의 사주를 받고 누나의 동거남 로버트 오두베인(당시 31세)을 총격 살해한 혐의로 1995년 재판에서 징역 100년형을 선고 받았고 이후 항소심에서 80년 형으로 감형됐다. 서 씨는 모범적인 수감 생활과 재활 프로그램을 이수할 경우 감형 특혜를 주는 새로운 일리노이 주 법 덕분에 조기 출소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서씨는 2살 때인 1976년 군 장교 출신 아버지•약사 출신 어머니를 따라 시카고로 이민했다. 그러나 이민 9년 만에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세탁소를 운영하며 남매를 키우던 어머니마저 2년 후 강도에게 살해당한 후 서 씨는 5살 위인 누나 캐서린에 의지해 살았다. 캐서린은 당시 서 씨에게 "오두베인이 엄마를 죽였다. 상속받은 재산을 도박 빚으로 탕진하고 학대한다"며 살인을 사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J 취재팀회개 용서 누나 캐서린 출소 눈물 김성민 변호사
2024.02.02. 13:35
‘용서하라.’ 때론 참 이기적인 말처럼 들린다. 특히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에게 건넸을 땐 잔인하기까지 하다. 최근 가까운 지인이 불미스러운 일의 피해자가 됐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기자 일을 하며 웬만한 별일을 다 봤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의 이면은 생각보다 더 추하고 더러웠다. 가해자의 이기심은 한 사람, 그리고 한 가정을 파괴했다. 그를 향한 피해자의 분노와 절망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그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지인의 마음은 언제나 사건 당일, 그 시각에 머물고 있었다. 자책과 미움, 연민과 증오의 감정선에 얽혀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했다. 인간의 탈을 쓰고 동물도 안 할 짓을 저지른 상대에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울화가 치미는데 당사자는 오죽할까. 오열하는 그에게 진정하라는 말조차도 쉽게 건네지 못했다. 하지만, 신앙인이었던 피해자는 ‘복수’에 대해서는 마음을 삼켰다. 복수의 시작은 어쩌면 ‘용서’와는 영영 이별을 뜻할지도 모른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분노로 희미해진 마음에도 그는 어렴풋이 알고 있는 듯했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결국 그 종착역이 용서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저명한 정신의학자들과 종교계 리더들은 용서가 철저히 본인 중심의 행위라는 것을 강조한다. 용서를 사전적 정의로만 보면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이다. 용서를 받는 상대에게 혜택이 더 큰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신약성경에서 ‘용서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의 문자적 의미는 ‘떠나가게 하다’, ‘멀리 보내다’, ‘놓아주다’ 등이다. 즉,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앙심을 자신의 마음에서 떨쳐내고, 멀리 보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용서는 나에게 잘못을 한 상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바탕이라는 오해가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용서는 과거로 회귀하게 하는 분노와 절망 등 숨 막히게 하는 감정들을 떨쳐버리고, 멈추게 하는데 초점이 있다. 하버드 의대 조지 베일런트 정신과 교수는 용서에 대해 ▶용서는 범죄에 대한 관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용서는 망각을 의미하지 않는다 ▶용서는 지나간 고통을 제거하지 않는다 ▶용서는 가해자를 너그러이 봐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상대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는 것에 마음의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는 마음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용기가 용서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하트마 간디는 “약자는 용서할 수 없다. 용서는 강자의 속성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무엇보다 용서의 가장 역설적인 속성은 용서를 받을 때보다 용서할 때 더 큰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정신의학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종교적·도덕적 의무로 강요된 용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활성화되는 교감신경이 항진돼 혈압이 오르지만, 용서는 안정감을 주는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해 혈압을 낮추고 심장병을 감소시킨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는 철저하게 자신을 위한 행동이다. 증오와 분노, 적개심과 괴로움이 똬리를 튼 마음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정신도, 건강도 해치기 마련이지만, 용서했을 때 찾아오는 평화는 용서를 받은 상대가 아닌 용서한 나의 건강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찬란할 수 있는 내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우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 오직 나의 평안과 미래를 위해 용기 있게 이기적인 선택을 하자. 남을 용서하는 것,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이기적인 행동이다. 장수아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용서 행동 이기적 행동 분노 적개심 종교계 리더들
2023.04.16. 15:33
“용서와 화합으로 더 나은 협회로 거듭나겠습니다.” 회장단 불신임으로 내홍을 겪은 LA 세계한인무역협회(옥타 LA·최영석 회장)가 제2차 정기이사회를 27일 옥스포드 호텔에서 열었다. 지난 4월 27일 2차 정기이사회에서 배포된 ‘옥타 LA 지회 최영석 회장 불신임 관련 공개질의서’를 자체 감사한 결과 ‘특별히 지적할만한 내용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봉합을 끝낸 만큼 이날 정기이사회는 용서와 소통과 대화합의 장이 됐다. 공개질의서 관련 특별감사 결과 재정적 비리가 문제없음으로 확인되었지만 남아있는 갈등의 골을 없애기 위해 케네스 이 이사가 중재에 나섰다. 이 이사는 “지난 임시 이사회에서 전 이사장의 사과문을 이메일로 전달받았다”며 “공개질의서 작성에 직접 관여한 세 명 이사들에게도 임시이사회에서 발표된 감사결과 보고서를 근거로 사과문을 요구해서 받았다”고 밝혔다. 협회에 따르면, 3명의 이사는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공개질의서를 배포해 최 회장과 옥타 LA의 대외적 이미지를 실추한 데 대해 사과했다. 이날 공개질의서 작성에 관여한 한 이사가 참석해 “향후 후배 이사들에게 모범이 되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겠다”며 사과를 표명했지만 한 이사는 “재발 방지를 위해 징벌을 받아야 한다. 배상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공개질의서 관련 운영위원회가 이사들의 의견도 수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대승적 차원에서 운영위원회가 토론 및 결론을 도출한 것을 이해해 달라”며 “진정성 있는 사과문을 받았고 용서하고 화합하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며 포용의 리더십을 보였다. 그는 또한 “서로 용서와 화합을 통해 옥타 LA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고 신·구이사간에 서로 화합할 것을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에드워드 손 이사장도 “유사 사건들에 대한 징벌에 대해서 운영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할 것을 위임한다”며 공개질의서 관련 결과 발표를 동의 제청으로 마무리했다. 의결권을 가진 124명의 이사 중 참석 33명, 위임 80명으로 열린 이사회는 2022년 상반기 회계 결산보고, 신입이사 인준 및 일반회원 승인, 주요 시행사업 및 추진 사업보고, IT 정보통신분과 개설 등 4개 상정 안건 그리고 공개질의서 관련 결과 발표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이사회에서 김마루 서브웨이 대표와 김루크 겔렉스 대표가 신입 이사로, 진철희 캘코보험 대표를 비롯한 7명이 일반회원으로 인준됐다. 한편 10월 27~30일까지 3박 4일 동안 한국 여수엑스포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하는 제26차 세계 경제인대회 참석에 앞서 10월 23~ 27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필리핀 마닐라 지회를 방문해 향후 양 지회 간의 회원들의 무역 발전을 위한 MOU(업무협약)를 체결할 예정이다. 이 밖에 지회 회원들과 친목 및 회원 회사 방문 등을 안건으로 통과시켰다. 이은영 기자 용서 화합 이날 정기이사회 수석 이사장 최영석 회장
2022.07.28. 22:16
그녀가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이 어제 오후 6시 반쯤이었다. 그저께 아침에 바지 길이를 줄여달라고 우리 세탁소에 처음 온 여자 손님이었다. 얼굴도 예쁘장한 데다가 말도 조곤조곤 얌전해서 호감이 가는 인상을 가진 그 손님에게 하루를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다. 물론 ‘좋은 하루’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가 내미는 티켓을 받아 옷을 찾으려고 옷이 걸린 컨베이어를 돌렸다. 그런데 그녀의 옷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럴 때의 당혹감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머릿속은 신경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졌다. 세탁소 경력 25년이 넘은 나는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알고 있다. 첫째로 옷의 위치가 잘 못 되어 있을 경우다.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컨베이어에 옷이 너무 조밀하게 걸려 있을 때 옷걸이 하나에 걸려 있는 옷이 가끔은 튕겨 나가 바닥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옷이 걸려 있는 컨베이어의 바닥을 살펴보아도 손님의 옷은 찾을 수가 없었다. 또 하나는 옷걸이 하나에 걸려 있는 옷은 주변에 걸린 다른 옷과 함께 엉뚱한 손님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속으로 진땀을 빼며 여자 손님의 옷을 찾고 있는 동안 너덧 명의 손님이 세탁소에 들어와 줄을 서고 있었다. 이럴 때 손님들은 어떤 생각으로 우리 세탁소를 보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속은 더 검게 타들어 간다. 결국 그 여자 손님의 양해를 구했다. 옷을 찾으러 온 손님들은 옷을 찾아서 돌아갔고, 한 더미 옷을 가져온 손님에게는 나중에 전화로 알려줄 테니 옷을 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결국 로사가 옷 수선을 하는 곳으로 갔다. 혹시나 하고 작업대 반대편을 살펴보았더니 거기에 손님의 옷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잃어버린 옷을 찾았을 때의 환희란. 그러나 그 환희는 순간,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준 그녀에게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었다. “혹시 내일까지 기다려 줄 수 있으면 돈은 받지 않을게.” 그녀는 내일 아침에 어디 멀리 가야 하기에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녀가 맡긴 옷을 돌려주는 팔에 힘이 빠져나갔다. 들어와야 할 수입도 잃었고 신용도 잃었다.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그녀를 배웅했다. 그저께는 종업원 하나가 소매가 가죽으로 된 코트를 다리다가 가죽을 망치고 말았다. 이번 주도 적자가 예상되는바 그 코트 값까지 물어주고 나면 손해는 더 지고 말 것이다. 그 여자 손님이 가게를 떠나고 나니 문 닫는 시간이 살짝 넘었다. 30분 넘게 지옥에서 시간을 보냈다. 종업원들이 실수로 끼치는 손해를 몽땅 내가 다 껴안아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 외웠던 영어 격언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 (사람은 실수하고, 신은 용서한다) 따지고 보면 나도 실수를 많이 하는 흠 많은 사람이다. 때로 그 실수가 남들에게 알려지기도 하고, 그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아내와 가족, 그리고 사회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분명 많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실수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신에게 가까이 가는 거룩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순 시기를 지나며 고통이나 극기같이 교회에서 권하는 일에도 게으르고 기도마저 멀리하고 사는 나에게 바지를 잃었다가 찾은 일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어디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너는 고작 한두 명 종업원들 실수한 것 가지고 그리 억울해하니?”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의 실수와 죄 때문에 이리 십자가를 지고 간다.” 로사가 출근하면 평소와 다름없이 미소 지으며 인사해야겠다. ‘Como estas?’ (How are you this morning?) 김학선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실수 용서 세탁소 경력 우리 세탁소 소매가 가죽
2022.04.11. 19:39
여자 손님이 길이를 줄여 달라고 맡겼던 바지를 찾으러 왔다. 그런데 그녀의 옷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 이럴 때의 당혹감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몇 가지 경우를 생각했다. 첫째로 옷의 위치가 잘못 되어 있는 경우다. 두번째로 컨베이어에 옷이 너무 조밀하게 걸려 있을 때 옷걸이 하나에 걸려 있는 옷이 가끔은 튕겨 나가 바닥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셋째는 주변에 걸린 다른 옷과 함께 엉뚱한 손님에게 전달되는 경우다. 내가 속으로 진땀을 빼며 여자 손님의 옷을 찾고 있는 동안 너덧 명의 손님이 세탁소에 들어와 줄을 서고 있었다. 결국 옷수선을 하는 곳으로 갔다. 혹시나 하고 작업대 반대편을 살펴보았더니 거기에 손님의 옷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잃어버린 옷을 찾았을 때의 환희란. 그러나 그 환희는 순간,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실수는 결국 금전적인 손해로 돌아온다. 그저께는 종업원 한 명이 소매가 가죽으로 된 코트를 다리다가 가죽을 망치고 말았다. 코트 값까지 물어주려면 손해가 크다. 종업원들의 실수로 생긴 손해를 몽땅 내가 다 껴안아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고교 시절 외웠던 영어 격언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사람은 실수하고, 신은 용서한다.’ 따지고 보면 나도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그 실수가 남들에게 알려지기도 하고, 그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아내와 가족, 그리고 사회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분명 많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실수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신에게 가까이 가는 거룩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너는 고작 종업원들 실수한 것 가지고 그리 억울해 하니?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의 실수와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간다.” 김학선 / 자유기고가독자 마당 실수 용서 작업대 반대편 영어 격언 여자 손님
2022.04.10.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