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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조금만 나눠도 충만해진다

우리 가게 옆으로 조그마한 미국 교회가 있다. 여러 민족이 다양하게 모이는 곳이다. 그 교회에서는 매월 둘째·넷째 주에 교인들이 음식을 손수 만들어 지역 내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원하는 사람에게는 두 손 모아 기도를 해준다.     봉지에는 여러 가지 콩으로 만든 수프와 사과나 바나나·오렌지 하나, 초콜릿 바 하나 물병, 냅킨에 스푼과 포크를 넣고 성경 말씀과 교회 안내서도 한장 들어있다.     교인들은 번갈아 봉사한다. 우리 가게 앞 사거리에서 음식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길거리에 다니면서 나누어 주기도 한다. 음식을 받은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웃으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교인들이 아침 일찍 모여 음식을 만들고 포장해서 나누기까지 정성을 들인 모양새가 저절로 배어난다.     어느 날 손님이 그 음식을 나에게 준다. 먹어보니 여러 가지 콩 종류에 특별한 양념을 다 집어넣었는지 맛있었다. 미안하고 고마워 그 손님을 통해 정기적으로 후원하게 되었다. 가게 옆이고 손님들이고 동네 사람들이다 보니 교인은 아니지만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내 삶이 훌륭하다고 생각지도 않고 그렇다고 걱정할 만큼 내 삶의 질이 떨어져 있지도 않다. 물론 나는 나만을 위한 욕망은 많이 내려놨지만 오히려 그러고 나자 더 충만한 행복과 평안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삶을 산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치 않는다. 나도 이와 비슷하다. 내 삶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큰 사랑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너희 영혼을 높이 끌어올렸는가? 무엇이 그대의 영혼을 가득 채우고 기쁨을 주는가?’ 프리드리히 니체의 질문에 가만히 답을 하다 보면 내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사람들이 살면서 허무하다고 느끼는 때를 보면 자신의 삶이 또는 자신이 이루어 나간 것이 아무런 의미도 있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이다. 타인을 돕거나 누군가의 힘이 되어줄 때 우리는 우리 존재의 의미를 실감하고 순수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 즉 봉사라는 삶은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의 활력이 되어줄 수 있다.   가게 손님 루시는 항공사에서 25년 일하고 정년 퇴직했다. 오랫동안 어린이 암 치료 병원에 매달 20달러를 보낸다. 아이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생활이 넉넉하지도 어렵지도 않지만 꼬박꼬박 우체국에 가서 돈을 부친다.     나는 삶 속에서 행하는 작은 선의의 봉사와 기부는 균형 있는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나 자신만을 위한 욕망과 돈을 밤낮으로 쫓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세계의 부자라는 사람은 결혼식에 사람들이 놀랄 만큼 돈을 뿌려 댄다. 결혼식 비용의 1만분의 1이라도 가자지구에 먹을 것이 없어 배급을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식량이라도 나누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욕망은 채우면 채울수록 마음은 더욱 공허해진다. 현대인이 갖는 불안과 공허를 잘못된 방법으로 극복하려 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만이 아닌 타인이나 다른 생명체를 위해 작은 일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내가 얻는 것이 많다. 나를 희생하는 이타심이라기보다는 나에게 있는 것을 조금 나눈다는 생각의 봉사는 장담컨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충만함을 선사할 것이다. 조금씩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은 어쩌면 더 희망차게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양주희 / 수필가이아침에 결혼식 비용 교회 안내 우리 가게

2025.08.2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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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마음의 거스러미

발톱 옆에 거스러미가 생겼다. 스치기만 해도 따가워 신경이 쓰인다. 살짝 당겨보니 확 아린 것이 자칫하면 죽 찢어지게 생겼다. 일단은 그냥 두어 보기로 하지만 종일 거슬린다. 거슬려서 거스러미인가. 손톱깎이로 잘랐다. 그런데 며칠 만에 그곳에서 자른 부분이 자라나 또 아프다. 이번에는 손톱으로 뜯어 결국 피가 나고 말았다. 조금 살살 다룰걸. 딴생각을 하다 발등을 계산대 모서리에 콩 부딪쳤다. 외마디를 내지르고 깽깽이를 뛰면서 순간의 통증을 이겨냈지만 한참 뒤에 내려다본 발등의 색이 퍼렇게 변했다. 그제야 욱신대는 것 같기도 하고 뼈에 실금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걱정되어 괜히 절룩이며 조심했다. 별거 아니라고 여겼던 생채기와 멍울도 인지한 순간부터 거치적거리고 신경 쓰이고 아프다. 슬며시 궁금증이 들어선다. 그간 몰랐던 마음의 티끌을 우연히 발견했다.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영 부담스럽게 알아 버렸다. 과연 우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멍과 거스러미는 어떻게 어루만지고 있을까.   우리 가게에 자주 오는 루시는 유나이티드 항공사에서 25년을 재직하고 62살에 은퇴했다. 아직은 젊고 힘이 넘친다. 일주일에 3일 운동하고 가끔 복지회관에서 봉사 활동하고 94살 친정어머니 집에 들러서 이야기하고 일주일에 두 번 차이나타운에 있는 한의사에게 체중조절 침을 맞는다. 입으로는 바쁘다고 하지만 너무 일찍 퇴직한 걸 후회한다. 일할 때는 상사의 잔소리도 귀에 거슬리고 동료와도 사이가 서먹하고 출퇴근도 번거로웠지만 퇴직하고 보니 귀찮게 여겼던 모든 것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시간이 많으니 사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많아졌다. 유나이티드 항공사에서는 25년 이상 근속하면 세계 어느 곳이든 비행기가 무료다. 1주일씩 현지 관광 경비도 많이 들고 호텔비 하며 씀씀이가 커져 퇴직금을 야금야금 꺼내 쓰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루시가 가게에 오면서 색다른 이야기, 내가 모르는 미국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나 경험, 유머 같은 것을 좋아했다. 가게 앞에 몇 시간씩 앉아 좀도둑도 지켜주고 나도 일하면서 심심치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루시가 가게에 와서 간섭하고 내 시간을 빼앗는 느낌이 들면서 거슬렸다.   동네 소식이 빠른 루시가 가게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큰 교회에서 벼룩시장이 열린다고 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쓰지 않는 물건을 팔겠다고 했다. 하루 자리 사용료가 30달러. 미국 사람들은 이사를 하면서 거라지 세일을 한다. 그 사람들이 살면서 요긴하게 썼지만 더 이상 필요치 않아 세일을 한다. 가끔 좋은 것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행운도 있지만 요상한 물건을 누가 살까 하는 의구심도 많다. 오늘 첫날인데 80달러를 팔았다고 좋아한다. 무엇을 팔았냐고 물었더니 어렸을 때부터 모은 동물 인형이다. 이제는 방구석에 쌓아놓은 인형들이 거슬려 치워버렸더니 속이 시원하다고 털어놓는다. 다음 주는 우리 가게에 찾아가지 않은 옷들을 주겠다고 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옷들은 언젠가 찾으러 오겠지 하며 기다렸는데 과감히 정리하기로 했다. 쓸 만한 옷들이 제법 많다. 테이블에 펼쳐놓고 접어서 옆에 놓고 줄을 만들어 걸어 놓으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사갈 것 같다. 눈에 띌 때마다 정리해야지 외치며 마음속으로 무척 거슬렸는데 빈자리를 쳐다보니 막혔던 파이프 구멍이 뚫린 것 같다. 이제는 루시와 조금 거리를 두었다. 한결 편해진 나의 마음을 지킴과 동시에 오히려 가끔 듣는 루시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에 거스러미도 생긴 이유가 있지 않을까. 건조하다든지 거칠게 다루었다든지. 타인의 문제점에는 명확한 훈수를 두고 자처해 상담해 주기도 하면서 왜 내 마음에만 가혹한지. 발톱 옆에 거스러미도 슬금슬금 달래 뜯을 걸 혼자만의 괭이질이 너무 힘들거나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거스러미 마음 유나이티드 항공사 우리 가게 계산대 모서리

2024.08.05. 21:22

[삶의 뜨락에서] 버틴다는 것

드라마 ‘미생’ 윤태호 작가는 만화가로서 재능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 시간 자체를 버텨내기만 한다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 어려운 환경까지 버텨내는 것까지도 다 재능이라고 했다. 만화가로서 그의 삶은 지독히 궁핍했다. 다행히 미생 덕에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이 존재의 물음에서 넓게는 철학과 사상, 정치와 문명이 탄생해왔고 좁게는 개인의 가치관 인생관이 세워진다. 시대정신을 담은 문학도 영혼을 치유하는 음악도 문화란 인간 자신이 누구인가를 묻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이 세상에 사는 사람 말고 또 누가 자기 밖에서 자기에 관해 물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토록 위대한 인간이 각박한 현실을 버텨내기가 힘들다. 뭘 해야 먹고 살 수 있는지가 당장 코앞에 닥친 문제고 직장에서는 위에서 차이고 아래에서 박힌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하루가 다르게 뛰는 물가 때문에 주머니는 항상 비어있고 운전하면서 주유소를 지날 때는 내 차 기름이 얼마쯤 있는지 자연스럽게 쳐다보게 된다.   우리 가게 옆 캐롤 가게에 물 폭탄이 쏟아졌다. 파이프가 터져 가게가 물바다가 되었다. 물을 퍼내고 한숨 돌리고 있는데 물과 스팀이 혼합되어 곰팡이 냄새가 우리 가게까지 스며들어 온다. 오래된 건물이라 한두 번 물이 천장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건물 주인에게 몇 번씩 통보했지만 관심이 없다. 그러다 타운에서 조사관이 나와 경고장을 주면 고치는 시늉만 했다. 캐롤은 아이들이 3명이고 학교에 보내며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곳이 이 가게다. 물이 전기선에 닿으면 화재 위험이 있다고 소방관이 전기를 차단했다. 캐롤 가게는 여성 핸드백과 여러 가지 파는 잡화 가게다. 크리스마스 대목도 보지 못했고 바닥부터 새로 깔고 페인트칠 하고 가방과 많은 물건을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가게로 탈바꿈해 놓았다. 그러나 보험이 아직 처리되지 않아 보상도 받지 못하고 타운에서 영업 허락이 안 된 상태이고 소방서에서는 다른 보완 장치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에다 약속 날짜에 오지 않아 몇 번씩 재촉 전화를 해도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   캐롤은 힘들어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버틸 수 있는 부적 같은 힘이 아이들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허물없이 말해준다. 단 한 사람도 행복하다 말한 사람 없고 모두 이루었다 말한 사람 없다고 웃으며 말하다가도 어느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이들의 웃음으로 버티든 버텨가고 있다.     코로나19가 들이닥친 지 3년. 빈 가게들을 볼 때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어느 순간 내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두운 터널을 버티어 내며 살아내고 있다.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멀리 바라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먼 목표가 아니라 내 앞에 작은 희망들로 우리는 버티어 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매주 셔츠 앞주머니에 로또 한장이 들어있는 손님이 있다. 왜 이것을 사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에 대답은 간단했다. 이것이 희망이다. 이게 한 주를 버티게 하는 힘이라고 했다. 그는 일주일마다 희망을 산다. 버티고 버텨낸다. 그리고 또 하루를 산다. 그렇게 버텨나갈 힘만 있다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행복하다고 큰소리치진 못해도 희망이 있다고는 말할 수 있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캐롤 가게 우리 가게 셔츠 앞주머니

2023.02.0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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