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 아래서] 보답이 아닌 감사
16세기 종교개혁이 한창일 때, 프랑스 오롱 강에 친구와 함께 놀러 나온 한 청년이 있었다. 친구들은 술에 취한 채로 강을 건너려고 배를 탔고, 그만 배가 뒤집혀 버렸다. 물에 빠진 친구를 본 이 청년은 망설임 없이 물에 뛰어들었지만, 자신도 물에 빠져 버렸다. 수영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마침 강둑에 있던 한 하인이 자기 주인인 줄 알고 그를 구하게 된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 청년 올레비아누스는 하나님께 약속했다. “나를 구해 주신다면 독일에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당시 목숨을 잃었던 친구 중 한 명이 바로 유명한 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아들 헤르만 루트비히였다. 그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 청년을 기억하고, 당시 박해받던 그를 궁정 설교가로 부른다. 그리고 청년은 그와는 전혀 다른 소심했던 청년 우르시누스를 하이델베르크에서 만난다. 이 열정과 소심이 만나 프리드리히 3세의 부탁을 받고 어린아이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만들게 되니, 바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다. 이런 섭리 속에서 태어난 이유이리라. 문답 안에는 구원뿐 아니라 구원을 받은 자가 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명시되어 있다. 바로 “감사”다. 우리말 감사는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 혹은 마음”을 뜻한다. 이에 따르면 감사는 하나님께 고마움을 보답하는 인사나 마음이다. 반면에 성경의 감사는 하나님을 인정하며 고백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문답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기쁘게 이를 따라 사는 것을 감사로 표현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부담과 짐이 아니라 즐겁게, 기꺼이 따라가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역시 자신의 신앙을 공격했던 여러 제후들 앞에서 성경을 탁자 위에 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연령, 신분, 계급의 사람이든, 심지어 가장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성경으로부터 무엇인가 더 나은 것을 제게 가르쳐 준다면, 저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하고 그 신적 진리에 기꺼이 순종하겠다는 그 말을 이제 제국의 회의 앞에서 다시 말합니다… 여기 성경이 있습니다.” 추석이다. 풍요의 시간이지만 진정한 의미는 감사에 있다. 그렇다면 문답이 말하듯, 창조주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추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보답 감사 우리말 감사 하이델베르크 문답 선제후 프리드리히
2025.10.06.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