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10여 년 전 레지오 주 회합 때의 일이다. 단원 12명이 매주 일요일 성당에서 모임을 갖는 행사였다. 지각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여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단원 한 명이 불현듯 김일성을 찬양하며 북한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자 한 사람이 “당신 빨갱이구먼”이라고 면박을 주었다. 상대가 “빨갱이가 뭡니까, 좋은 말 놔두고…”라고 반박하자 그분은 “그럼, 빨갱이보고 빨갱이라고 하지 뭐라고 말하느냐”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러자 “진보라고 해야지요”라고 맞받으면서 두 사람은 육탄전 일보직전의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단장인 내가 그 언쟁을 제지하려 회합을 속히 진행했다. 정치 성향에 대한 갈등은 미국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체육관에서 함께 운동을 하며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두 명 있는데 미 육군에서 전역한 짐은 공화당 성향이었고 다른 친구 토니는 민주당원이었다. 토요일 11시경 세 명이 브런치를 먹는 좌석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화제가 정치 쪽으로 흘렀다. 두 사람이 의견 차이로 언성이 점점 높아져 살벌해졌다. 내가 “화제를 바꾸자”고 제안했더니 두 사람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명 이상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정치적, 종교적인 대화는 삼가자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언쟁이 유발되기 십상팔구이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에는 좋았던 관계가 금이 가고 사이가 멀어지게 되기도 한다. 한국 사회나 미국이 진보와 보수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국론이 분열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좌파와 우파는 있는데 중도파가 없는 것이 문제다. 검은색에 흰색을 배합하면 회색이 된다. 회색은 흑색이나 백색보다는 안정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중도 성향을 선호한다. 그렇다고 두 진영에 양다리를 걸친 기회주의자나 보신주의자가 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극단적으로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것보다는 다양성을 포용하자는 것이다. 중도 성향은 갈등과 충돌을 피할 수 있다. 한국은 3개월 전에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진보 성향의 정부든 보수 성향의 정부든 국민을 화합하고 국가 발전을 위해 힘쓰는 정권이라면 상관없지 않은가. 국민이 자유롭고 잘 살 수 있게 해주어 행복하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약 50여 년 전 중국의 정치 지도자가 ‘흑묘 백묘’론을 주장하였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다. 내가 전적으로 공감하는 금언이다. 좌파든 우파든 국민을 위하여 일하는 정부라면 개의치 않는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이미 퇴출된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좌파 정치인들에게 국민은 혐오감을 갖고 있다. 또한 여전히 무능하고 무력하기만 한 우파 정치인들에게도 국민은 실망하고 있다. 모든 일은 자신의 입장에서 아전인수격 사고로 판단하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난다. 이진용 / 수필가열린광장 좌파 정치인들 우파 정치인들 진보 성향
2025.09.11. 1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