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는 '피해자'도 아닌가…법이 외면했다
시애틀에서 한인 임신부를 총격 살해한 피의자에게 심신상실을 이유로 무죄 판결〈본지 3월 23일자 A-4면〉이 내려진 이후, 사건 당시 숨진 태아에 대한 별도 살인 혐의가 적용되지 않은 점을 두고 법률적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관련기사 한인 임산부 살해범 무죄 판결…“범행 당시 정상적 판단 상실” 워싱턴주 킹카운티 법원은 지난 20일 임신 8개월이던 권이나(당시 34세)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코델 구스비에게 심신상실에 따른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과 변호인 측이 의뢰한 정신과 전문가들이 모두 “범행 당시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검찰이 이에 동의하면서 사건은 사실상 무혐의로 종결됐다. 그러나 권씨의 사망과 별개로 ‘태아 살인’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두고 법적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사라 대븐포트-스미스 ‘휴먼 라이프 오브 워싱턴 정책 컨소시엄’ 선임 정책 분석가는 “최소 35개 주에서는 살인 사건에서 태아를 별도의 피해자로 인정하는 법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즉, 다수 주에서는 태아를 별도의 살인 피해자로 인정하는 법이 있지만 워싱턴주에는 해당 규정이 없어 제도적 공백이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대븐포트-스미스 분석가는 이번 판결이 태아에 대한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사례라고 주장했다. 그는 “더 슬픈 사실은 법이 그 아이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지역 매체 코모뉴스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태아의 이름을 따 ‘에블린 법(Evelyn’s Law)'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23일 보도했다. 구스비는 2023년 6월 13일 오전 시애틀 벨타운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에 접근해 운전석을 향해 최소 6차례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 사건으로 운전석에 앉아 있던 권씨와 태아가 숨졌다. 의료진은 응급 분만을 시도했지만 태아는 곧 사망했다. 사건 이후 킹카운티 검찰은 구스비에게 태아에 대한 별도의 살인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 워싱턴주 법은 '태어난 뒤 살아 있는 상태(born alive)'에서만 피해자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킹카운티 검찰의 법정 정신건강 담당 부서 책임자인 가브리엘 샬턴은 “현행 법 체계상 태아에 대한 별도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 없었다”며 “피고가 피해자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도 없어 과실치사 혐의 역시 적용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이 무혐의로 종결되면서 지역 사회 등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독립 미디어 활동가 조나단 최 씨는 “워싱턴주의 최고위 한인 정치인인 신디 류 주 하원의원과 메릴린드 스트릭랜드 연방 하원의원이 이번 사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 개정이 추진될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디지털 콘텐츠 크리에이터 이강민 씨 역시 “평소 아시아계 증오 범죄 문제 등을 제기하던 활동가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유독 침묵하고 있다”며 “권씨 가족은 정당한 정의를 받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사건이 발생한 벨타운 인근에 거주하는 김모 씨는 “대낮 번화가에서 임신부와 태아가 모두 숨진 사건인데 가해자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며 “한인 사회에서도 이런 사건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강한길 기자외면 태아 체계상 태아 워싱턴주 킹카운티 킹카운티 검찰
2026.03.24. 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