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는 14세 때인 중학교 2학년 때 6.25 전쟁을 겪었다. 온 가족이 군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곳에서 이모에게 홀딱 반한 한 남학생을 만났다. 그도 서울에서 피난 온 중 3년생이었다. 이모가 여고 2학년 때부터 일기 형식으로 된 남학생의 사랑의 메시지가 그의 여동생을 통하여 거의 매일 같이 이모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이모는 관심 밖의 일이었고 다른 학생에 비해 키가 크다는 것, 이외는 아무런 호감이 없었다. 이모가 여고 2학년 때 ‘마의 태자’란 연극을 극장에서 일주일 간 공연했는데 이모가 마의 태자비로 출연하였다. 그 학생은 수업도 거른 채 연극 장면을 사진을 찍어 이모에게 주었지만 이모는 그가 보는 앞에서 그동안 받은 러브레터와 사진을 불살라 버렸다. 그 남학생의 이모를 향한 집념은 참으로 집요한 것이었다. 그는 늘 이모 주위를 맴돌았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반대되는 성격의 여성과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5남매를 두었는데 남편이 전쟁 중 납치되어 북으로 끌려가 홀로 자식을 키우느라고 성격이 거칠고 사나웠든가 보다. 이모는 성격이 내성적이었고 가냘픈 아리따운 소녀였다. 그는 이모와 10년 내에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굳센 결의를 보였다. 두 사람은 장학생이어서 이모는 E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역사 담당 교사가 되었고 그 청년은 S대 경제학과 재학 중 군 복무를 마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외국인 회사에 취직했다. 하루는 그가 할 말이 많은데 교외선을 타고 바람 쐬러 가자고 졸라서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승낙했는데 그 기차는 교외선이 아니라 장항선이었다. 이모를 속인 것이었다. 열차가 삽교역에 정차했을 때 이모는 기차에서 내렸는데 그 청년도 쫓아 내렸다. 인근에 있는 덕산 온천에 강제로 끌려가다시피 했는데 거기서 청혼을 수락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모가 단호하게 거절하니까 뺨을 한 대 후려갈겼다. 이모는 기절하여 서산병원으로 실려가 응급조치를 받고 하루 지나 의식을 회복하였다. 그 당시 일간지 1면에 ‘여고 교사 납치’라는 제목의 기사로 실렸다. 형사들이 그의 집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경찰서로 연행해 갔다. 외삼촌과 이모가 경찰서를 찾아가 “우리는 피해 본 것이 없으니 선처를 바란다”고 호소하여 풀려났다. 외삼촌은 이모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청년의 가정이 가난한 것이 흠이지만 인간성이 정직하고 진실되며 건전한 사람이니 결혼해라. 만일, 결혼 생활에 하자가 생긴다면 이 오빠가 책임지겠노라”고 타일렀다. 이모를 달래어 결국 두 사람은 결혼했다. 결혼 후 이모부는 20대1 이라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무원 교육원 교수로 채용되어 경제학을 강의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정권에서 정부 고위 관료들이 의무적으로 등록되어 수강했는데 낙제자는 진급은 물론 자신의 직위가 위태로웠다. 그러다 보니 뇌물이 성행하고 부정비리가 비일비재했다. 이모부의 상관들은 모두 군 장성들이었는데 노골적인 회유와 압력이 가해졌다. 이모부는 청렴하고 강직한 교육 공무원이었다. 그는 부정 청탁에 환멸을 느꼈다. 차라리 미국으로 이민 가서 막노동을 할 망정 교수 생활을 포기한다는 각오로 사직하고 누이의 초청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이민 온 후 대학 3학년으로 편입해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대기업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근무하던 중 그 회사가 멕시코로 사업 진출을 하는 바람에 멕시코 행을 포기하고 이모와 세탁소를 운영했다. 부촌에서 세탁소를 오랫동안 운영하여 부를 쌓게 됐다. 그러던 중 이모부가 날로 수척해지고 엉덩이뼈에 통증이 있어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간암 말기로 판명되었고 암세포가 골수로 전이되어 수습 불가능 단계로 진행되었다. 간은 침묵의 장기라고 하지 않던가, 때는 이미 늦은 것이었다. 항암치료를 받다가 식도장애가 생겨 음식을 삼키지 못하고 영양 주사로 연명해야 했다. 이모부는 이모가 연약하고 여리어 세상 풍파를 견디지 못할 것 같으니 같이 죽자고 제의하였다. 이모는 아들이 아직 결혼을 못했으니 5년 후에 결혼 시키고 뒤를 따르겠노라 약조했다. 이모부는 그 5년 만이라도 남자 친구를 사귀어 행복하게 살다가 오라고 했다. 남자 친구를 사귀려면 자동차가 좋아야 한다며 이모를 딜러로 데리고 가 BMW를 사 주었다. 이모는 이모부와 40년 이상을 동고동락했지만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겠다는 의료진들의 판단으로 딸 집에서 임종을 맞게 되었다. 이모는 의식이 없는 이모부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여보! 사랑해요”라고 애정 어린 말을 연거푸 했다. 이모부는 향년 62세로 이 세상을 마감하였다. 이모는 내년 4월이면 만 90세가 된다. 이모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었단다. 자신이 평생 살아오면서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거나 섭섭하게 해 준 것을 뉘우치고 있고 또 용서받았단다. 남편의 시신은 화장하여 이모의 방 유골함에 보관하고 있다. 자신이 사망하면 화장하여 남편과 함께 수목장을 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진용 / 수필가문예마당 이야기 이모 이모 주위 마의 태자비 만일 결혼
2025.08.28. 19:54
지난 8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LA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던 '가주 레스토랑 트레이드 쇼'(California Restaurant Show)는 식당 업계의 최신 트렌드와 기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북미 최대의 레스토랑 산업 박람회다.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의 식당 경영자, 요리사, 유통 업체 관계자들이 참석해 식음료, 주방 설비, 첨단 기술을 체험하는 중요한 비즈니스 허브라 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2024 트레이드 쇼에서는 '이모네 키친'의 자동 라면 조리기가 큰 주목을 받았다. 하루 평균 200명 이상의 방문객을 모은 이모네 키친 부스는 간편하게 한국 라면을 조리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계를 선보이며 식당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관심을 이끌어냈다. 이모네 키친이 소개한 'EZ Cook' 제품은 미국에서 UL 마크와 NSF 서비스 케이스 인증을 받은 커머셜용 기기로, 바쁜 레스토랑 환경에서 시간과 인건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는 솔루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모네 키친 관계자는 "UC 리버사이드, UCLA, 커머스 카지노(Commerce Casino), 너츠베리팜(Knotts Berry Farm) 등 다양한 기관의 관계자들이 제품에 관심을 보였고, 바로 미팅 일정을 잡았다"라며 "특히 현장에서 미팅과 계약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라고 전했다. 또한 식당 체인점 관계자들은 이모네 키친 제품의 우수성과 실용성을 강조하며,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게 평가했다. 음식재료 전문 업체인 시스코(SYSCO)도 이모네 키친과의 협력을 논의하며 북미 시장 진출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이모네 키친 관계자는 "한국 라면의 인기를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었고, 이번 기회를 통해 더 많은 파트너십을 구축할 계획"이라며 향후 사업 확장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번 LA 트레이드 쇼는 이모네 키친이 북미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EZ Cook 라면 자동 조리기 관련 더 자세한 내용 및 문의는 전화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213)327-6699, (213)500-5034 업계 이모 키친
2024.09.02. 1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