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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돌아갈 수 없는 날들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살던 집이 있을까 / 네가 돌아와 차고 문을 열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 (중략) 네가 없어도 바다로 내려가던 하얀 언덕길이 거기 있을까’ - 이어령 유고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중에서.   시대의 지성,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딸 이민아 목사 10주기를 앞두고 생의 마지막에 남긴 아버지의 독백이다. 헌팅턴비치는 이민아 목사가 생전에 살았던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해변이다.   이민아 목사는 생전에 쓴 책 ‘땅끝의 아이들’(2011)에서 예쁜 잠옷 입고 서재로 가서 아버지가 ‘굿 나잇’ 해주길 바랬지만 아버지는 건성으로 손을 흔들기만 했다고 한다. 작가, 교수, 논설위원 등 3개 이상의 직함을 가진 아버지 팔에 매달려 사랑받는 딸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피곤한 아버지는 ‘밥 좀 먹자’면서 날 밀쳐내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했다’고 토로한다.   ‘고통으로 아파하는 딸 위해 흘리는 눈물이, 유리창에 흐르는 빗방울과 무엇이 다르냐’고 미안해하던 아버지는 딸 10주기 기일을 보름가량 앞두고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며 가장 아픈 손가락이던 딸의 품으로 돌아갔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얻기 위해 우리는 투쟁하며 사는가? 명예와 부, 지식과 행복, 사랑과 배신, 상처와 굴욕을 견디며 생의 한가운데로 던져지는가?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한줌 목숨 지킬 수 없어 우리는 빈손으로 작별 인사를 한다. 용서를 빌며 회한의 눈물로 적은 편지는 부칠 곳이 없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은 파랑새가 되어 허공을 맴돈다.   사랑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아이들은 어른을 흉내 내며 자란다. 아버지와 어머니, 가장 가까이 함께 숨결 나누는 사람에게 사랑을 배운다. 아름다운 집과 값 비싼 옷, 멋진 환경보다 따스한 아랫목에 다정하게 두 발 비비며 살던 때를 그리워한다,   강남 갔던 제비는 봄이 오면 다시 온다. 생태계 문제로 제비가 돌아오지 않아도 어머니는 대청마루에서 발 뒤꿈치 들고 빈둥지로 돌아올 제비를 기다렸다.   사업하며 가장 힘들었던 일은 시간을 쪼개는 일이다. 풀타임으로 뛰어도 감당 못할 노릇에 여자가 사업하는 건 생명 건 투쟁이나 다름 없다. 천방지축 잠꾸러기가 새벽 4시 기상, 지금까지 지속하는 건 ‘어머니’란 기적의 단어 때문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투항하는 게 내가 사는 법칙이다.   애들은 날 닮아서 갈팡질팡 일거리를 만들었지만 할머니 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정이 많고 착한 편이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숨가쁘게 이리 뛰고 저리 달렸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축복 받고 아름다운 시절이였음에 틀림없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어떤 것이 축복인지 행복인지 알지 못한다. 산다는 것이 허무의 신발 가게에서 짝이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쩔뚝거리며 산다해도, 명절이면 품 속에서 데펴 꽃신 신겨주던 엄마 손은 따스했다.   하늘을 나르는 샤갈의 연인처럼 내 아이들이 행복한 사랑을 꿈꾸고, 피카소처럼 굵고 강렬한 선으로 스스로 인생을 창조하기를 바란다.   크리스마스 때 손주들 만나면 꼭 껴안고 볼에 뜨겁게 키스하리라. 내 침대에서 ‘미미’하고 자겠다며 차례를 다투는 손주들을 품에 껴안고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리라. (작가,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행복 사랑 이민아 목사 이어령 유고시집

2025.12.0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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