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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이민역사 속 한복의 변천사…내달 7일부터 한복 특별전

LA한국문화원(원장 정상원)이 KAM(Korean American Muse.회장 조민)과 한복 특별전을 공동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가주 정부가 한복의 날(10월21일)을 제정한 지 1주년을 맞아 마련됐다.   한국문화원에 따르면 가주 한복의 날 기념 특별전 '한복, 날아 오르다'가 오는 11월7일부터 문화원 2층 전시실에서 진행된다.   11월29일까지 열리게 될 이번 특별전은 문화원이 진행하는 한국 전통미술 시리즈의 다섯 번째 행사다. 한복의 매력과 우수성을 미주 한인사회와 미국 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특별전에서는 미주 한인이민 역사와 함께 변화한 한복을 조명하며, 현대적 해석이 가미된 한복 디자인, 민화와 비딩(beading)을 결합한 작품, 패션쇼 컬렉션, 전통 장신구와 보자기 작품 등이 소개된다.     전시를 기획한 김은주 한복 디자이너는 "이번 전시가 한복의 순수함을 담아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며 한인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정상원 문화원장은 "이번 특별전을 통해 미국 사회에 한복의 미와 가치를 알리고자 한다"며 "한국 복식문화의 철학과 미학이 미국 현지인들에게도 영감을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문의: (323) 936-3014한복 이민역사 한복 특별전 한복 디자인 김은주 한복

2024.10.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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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라틴계, 정치력 신장 공동 노력

지난 7일 LA한인타운 아로마센터에서 열린 ‘한인 및 라티노 커뮤니티 정치력 신장을 위한 세미나’에는 화랑청소년재단 청소년, 한인 전·현직 정치인, 라틴계 공무원 및 비영리단체 대표 7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인과 라틴계 이민역사와 각 커뮤니티가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정치력 신장을 이뤄나가는지를 공유했다.     이날 행사는 LA총영사관(총영사 김영완)과 멕시코총영사관(총영사 카를로스 곤잘레스 구티에레즈)이 공동주최했다.     세미나에는 폴 서 랜초팔로스버디스 시의언, 케빈 박 샌타클라라 시의원, 마크 김 전 버지니아주 하원의원, 베로니카 페레즈 머큐리퍼블릭어페어 대표, 마리솔로드리게즈 LA시 스트리트LA 대외관계 디렉터, 타티아나 라미레즈 LA카운티노동연합(AFL-CIO) 부디렉터 등이 패널로 나섰다.     이들은 유권자 등록과 선거참여를 통해 ‘선출직 정치인’을 배출하면 각 커뮤니티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력신장단체인 코리안아메리칸인스티튜드(KAI) 대표를 맡은 마크 김 전 의원은 “한인사회는 이민 120주년을 맞아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했다”며 “현재 연방 하원의원 4명이 활동하고, 11월에는 역사상 첫 한인 상원의원이 당선될 수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 절차인 정치참여와 입법을 통해 변화를 추구한다. 한인 유권자가 투표하고, 한인 정치인이 선출되면 소수계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다인종·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 소수계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고 당부했다.     마리솔 로드리게즈 스트리트LA 대외관계 디렉터는 “중학교 때부터 시정부 환경미화 인턴십에 참여하며 작은 실천과 노력이 커뮤니티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했다”며 “시정부, 주정부, 연방정부의 역할에 관심을 갖고 누가 우리를 대변하는지 관심을 갖자. 정치적 이슈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자세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이민역사 공동노력 라틴계 이민역사 정치력 신장 커뮤니티 정치력

2024.09.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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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한국학원 역사문화 캠프

남가주 한국학원(이사장 박성수, 교육감 전송옥) 산하 10개 주말 한국학교 교직원과 학생 120여명이 ‘제5회 역사 문화 캠프’를 진행한다.     이번 역사 문화 캠프는 ‘선구자들, 세상을 바꾼 위대한 미주 한인’을 주제로 16일과 23일 열린다.   16일에는 온라인 줌으로 이민 역사(차만재 박사), 나의 이민 이야기(강형원 기자)를 주제로 한 세기 넘은 한인 이민역사를 배운다.     23일에는 이민 초기 한인타운이 형성됐던 리버사이드를 방문해 ▶학교별 프로젝트 발표 ▶안창호 기념관 부지 견학 및 강의(이영섭 교수) ▶캘시트러스 주립역사공원 박물관 견학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특히 학교별 프로젝트는 선구자로 활동한 한인을 선정해 선구자의 어린시절과 시대적 배경, 교육과 직업, 업적과 영향력 등을 발표한다. 주최 측은 이를 통해 한인 청소년들이 꿈과 방향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전했다.   역사 문화 캠프 위원장을 맡은 신미경 교장은 “한인 이민 역사가 120여 년이 됐다”며 “우리 학생들이 초기 이민자부터 현재까지 앞세대의 삶과 꿈을 알면 정체성 함양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남가주 한국학원 역사 문화 캠프는 재외동포청,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셀리온이 후원한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한인사회 미국 한인 미주 한인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LA 로스앤젤레스 이민역사 현장학습 한인 이민역사 주립역사공원 박물관 재외동포청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2024.03.1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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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 이민역사 120년 전시회

비영리 한인 교육단체 ‘함께하는교육’(대표 김경화)이 미주한인 이민역사 120년 전시회를 개최한다.   내달 7일부터 9일까지 뉴저지 KCC 한인동포회관(100 Grove St, Tenafly, NJ 07670)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한인 이민자들이 미국에 첫 발을 내딘 1903년부터 현재까지 한인사회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민 역사를 소개한다.     7일에는 오후 12시부터 5시까지, 8~9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며 점심이 무료로 제공된다.   이민 역사를 되새기고, 이웃의 역사를 배우며 편견과 증오 대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자리 잡은 사회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 주는 것을 목표로 한 이번 전시회는 민권센터, 시민참여센터, 뉴욕한인봉사센터(KCS) 등이 후원한다.     윤지혜 기자미주한인 이민역사 미주한인 이민역사 이번 전시회 한인 이민자들

2023.11.29. 19:37

고난과 역경 딛고 이룩한 빛나는 발자취

가난과 망국·전쟁 때문에 정든 땅을 떠나 낯선 땅을 찾은 선조들로부터 시작된 미주 한인 이민 역사가 올해로 120년을 맞는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소수민족 중 하나로 평가받는 한인들이 있기까지 그 여정은 혹독했지만, 도전과 성취로 가득했다.       한 세기 전 선배 이민자들의 발자취를 되새겨 본다.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서     1902년 12월 22일. 살을 에는 엄동의 날씨였다. 인천항 항구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벽보에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다.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 배만 곯지 않는다면 족했다.       가슴 속 뜨거운 희망을 가지고 하와이 이민선 갤릭호에 오른 122명. 경유지인 일본 나가사키에서 신체검사에 합격한 102명은 약 20일만인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다. 대한민국 최초 공식 이민자들이다.         ▶혹독했던 하와이의 삶   1903년 1월 102명을 시작으로 1905년 7월까지 하와이에는 65편의 배를 이용해 7800여 명의 한인 노동자가 도착했다. 이들은 하와이 전역의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에 흩어져 일했다.       이들의 삶은 노예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일요일만 빼고 하루 10시간씩 일해야 했다. 당시 일당은 69센트. 무더운 태양 아래서 사탕수수와 에네켄(용설란 일종)을 수확하며 온몸이 찢겼다. 허리가 아파 잠시 일어서면 말을 탄 감독이 가죽 채찍을 내리쳤다.     언어 문화 차이는 고통을 더했다. 한 예로 영어를 못해 달걀이라도 사려고 하면 식료품점에서 엉덩이에 손을 가져다 대고 암탉이 알 낳는 소리를 흉내를 내야 하기도 했다.       하와이 노동자들 가운데 2000여 명은 고된 노동을 견디다 못해 샌프란시스코와 LA 등지로 재이주했다. 1000여 명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남편 찾아온 ‘사진 신부’들   1910년을 전후해서는 사진 신부들이 대거 몰려왔다. 한국의 중매쟁이가 건넨 사진만 보고 남편을 찾아 하와이로 온 여성들이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달랐다.     현지 환경은 열악했고 총각들이 보낸 사진은 실물과 차이가 컸다. 사진 속 저택은 온데간데없고 대부분의 남자는 여자보다 두 배는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한인 여성들은 이내 강인한 정신력으로 자녀를 키워냈다. 가정들이 이루어지면서 한인사회는 비로소 공동체를 형성했다.   ▶새로운 이민 물결   1965년 미국 이민법이 크게 개정되면서 한인 이민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   당시 존 F.케네디 대통령은 유럽인으로 편중된 이민법을 개혁해 아시안에 대한 이민 제한을 제거했다. 실제로 1940년 센서스 당시 전국 한인은 8570명에 불과했으나 80년에 들어서 35만4593명으로 거의 40배가 급증했다.     특히 70년대 들어 한국인들의 집단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몇십 달러만 가지고 맨땅에서부터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대한항공이 정기 노선을 개설한 것도 1972년이었다.     한인 이민이 정점을 찍은 것은 1985~1987년대. 연간 3만5000여명의 한인이 미국으로 향했고, 한국은 멕시코와 필리핀에 이은 3대 이민국이 되기도 했다.     ▶LA한인타운의 조성     1930년대에는 약 650명의 한국인이 LA에 거주했다. 그들은 주로 야채와 과일 배급에 중점을 둔 비즈니스를 뒀고 교회, 식당 및 지역 사회 단체를 설립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인종 계약법과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지역적으로 활동에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 가파른 경제 쇠퇴를 기점으로 빈 상업 공간과 사무실 공간이 넘쳐났고 이는 부유한 한국 이민자들을 끌어들였다.     1967년쯤 올림픽 불러바드 선상에 한인식당 2개와 한인마켓 2개가 생겼다. 1970년에는 미국에서 가발이 크게 유행하면서 가발업 종사하는 한인들이 상당한 돈을 벌며 모여들었고, 1973년에는 석유파동을 계기로 주유소를 차려 크게 번창하기도 했으며 또 한인 노동력을 모아 일을 하는 청소업도 유행했다.   1970년대 후반, 올림픽 대로와 8가 지역 대부분의 업체는 한인들의 소유였다.  경제 호황은 한인 언론 매체와 지역 사회 단체의 설립으로 이어졌고, 이는 한인들의 정체성을 굳히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주민들은 1982년에 첫 번째 한인타운 사인을 설치하기 위해 성공적으로 로비했다. 이는 현재 2.7 스퀘어 마일의 한인타운 공식 구획이 지정(2010년)되는데 시발점이 됐다.     ▶높아지는 한인들 위상   센서스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인 인구는 192만6508명이다. 20년 전인 2000년 기준 107만6,872명보다 78%가 늘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이민자 중 80%가 10년 이상 미국에 거주한 경우였다.   한인 가구의 중간 소득은 7만 2200달러였고, 한인 2세 가구의 중간소득은 8만 8100달러였다. 한인 인구 중 빈곤 계층에 속하는 인구는 전체의 11%로 한인 2세만 살펴볼 경우 빈곤계층이 전체의 9%였다.         지난 2012년 기준 전국의 한인 업체 수도 22만4891개로, 매출만 1078억1323달러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한인 사업체는 중국계 52만8702개, 베트남계 31만864개 다음으로 세 번째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정계는 물론 재계와 문화계 등 다양한 한인 리더들이 곳곳에 포진해 한인의 명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한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한국 문화 콘텐츠들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 사로잡고 있으며 K팝으로 시작된 미국 내 한류 열풍은 한국문화와 한국상품 등 한국 자체를 동경하고 선호하는 현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장수아 기자신년특집 이민역사 한인 노동자 한인 역사 미주 한인

2023.01.0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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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소희 작가 두 권 신간 출간

‘하늘에 별을 묻다’, ‘독박골 산1번지’ 등의 작품을 통해 문단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권소희 작가가 동시에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지난달 도서출판 도화에서 발간한 동화책 ‘순득이네’와 장편 소설 ‘포스트 잇’이다.     ‘순득이네’는 순득이네 일가족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이민 가는 험난한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동화다.     직접 그린 따뜻한 그림과 문체에 역사적 사실을 더해 초기 하와이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춰 재밌게 들려준다.     권작가는 ‘하늘에 별을 묻다’를 집필하면서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들은 육성녹음을 토대로 순득이네를 완성했다.     권작가는 “이민 역사가 120년이지만 아동용 한인 이민사 책이 없다”며 “한인 2세들이 사는 땅에서 선조들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이민사 공부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순득이네 출간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장편 소설 ‘포스트잇’은 작가가 팬데믹동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구상한 작품이다.     부적절한 사랑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로 음습하고 치졸한 사회의 단면과 치부를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권작가는 한국소설 4월호에 단편소설  ‘시타커스, 새장을 나서다’로 작품 활동을 하고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서 단편소설 ‘틈’으로 신인상을 받았다   저서로 ‘시타커스, 새장을 나서다’, ‘하늘에 별을 묻다’, ‘초록대문 집을 찾습니다’, ‘독박골 산1번지’ 등이 있다.     첫 번째 장편 소설 ‘하늘에 별을 묻다’는 세종도서문학나눔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은영 기자신간 이민역사 이민사 공부 한국소설 4월호 신간 출간

2022.05.22. 19:00

[기고] 50년 전 ‘한인록’에 담긴 이민역사

 1972년 남가주 한인회에서 한인회 창립 후 처음으로 발간한 한인록이 있다. 50년 전 남가주 한인사회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이민역사의 소중한 자료다.     한인록은 남가주 한인회 역사를 간단히 서술하고 있다. 1962년 2월 김호, 김형순, 김원용, 송철 등 독립운동 원로들 중심으로 남가주 한인센터가 조직됐고 초대 위원장에 김호, 부위원장에 송철 선생이 임명됐다.     1963년 2월 24일에는 남가주 한인회관을 구입했는데 주소는 ‘2559 West Olympic Blvd’로 현재의 한인타운 중심지에서 동쪽에 위치했다. 그러나 재정난으로 1967년 건물을 매각하고 추후 건물 구입을 위해 4만 달러 원금을 적립했다.   1965년 신 이민자들이 들어오면서 가주 한인회를 발족했는데 1968년 1월 14일 두 단체가 통합하여 남가주 한인거류민회를 설립했다. 초대 회장에 조용삼 박사가 선출됐다.     한인록에는 4800명의 남가주 거주 한인 명단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이 적혀 있다.   체육회와 부인회 등 단체들이 이미 조직돼 있었고 특히 18개의 한국 고교 동문회, 15개 대학 동문회, 7개의 미국 대학 동문회가 활동하고 있었다. 가장 많은 단체는 교회로 당시 44개의 한인 교회가 남가주 지역에 설립돼 있었다.   한인록에는 한인이 운영하는 다양한 업종의 비즈니스들이 광고로 소개돼 있다. 광고를 게재한 업종은 여행사, 마켓, 보험회사, 꽃집, 부동산 중개인, 언론사, 식당 등다양하다.   당시 한인들이 가장 많이 종사한 업종은 단연 무역회사로 77개 업소에 달한다. 두 번째는 가발업으로 57개 업소가 한인록에 수록돼 있다. 주유소 42개, 식당 24개, 마켓 20개, 리커스토어 11개가 당시 영업을 하고 있었다. 또한 10개의 여행사, 7개의 미용실, 양복점 (6곳), 사진관(5곳), 자동차 수리업소(5곳), 꽃집(4곳), 인쇄소(4곳), 보석상과 공예품점(각 1곳)이 문을 열고 있었다.     전문직으로 7명의 의사와 3명의 치과의사가 환자들을 진료했고 6개의 한인 신문과 TV 방송국이 한인 사회의 소식을 전했다. 또한 11개의 회계 관련 업소가 있었다.   남가주 한인 사회는 1970년대부터 신규 이민자들이 급증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1972년 한인록은 초창기 남가주 한인 사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남가주 한인사회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엄청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초창기 남가주 한인사회를 이끌어준 ‘올드타이머’들의 노고와 희생 없이는 남가주 한인사회가 오늘날처럼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올해는 4.29폭동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지난 30년, 그리고 지난 50년 남가주 이민사를 돌아보면서 한인커뮤니티 미래의 50년 청사진을 새롭게 그려보자. 장태한 / UC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기고 이민역사 남가주 한인회관 남가주 한인사회 남가주 한인거류민회

2022.01.26. 18:17

“아시안 차별, 이민역사 교육 절실”

아시안 혐오를 막기 위해 공립학교 정규 교과과정에 아시안아메리칸 역사교육을 의무화하고, 세부 가이드라인 마련에 한인사회도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한인 단체를 통해 아시안 혐오가 사회구조적 차별임을 환기시키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인사회 내에서도 세대별 혐오현상 인식이 크게 다른 만큼, 세대별 접근이 달라야 한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민 1세대인 노인·자영업자는 혐오를 개인 일탈로 여긴 경우가 많지만, 청년층은 사회구조적 문제로 보고 다른 소수인종과 적극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민참여센터(KACE)는 18일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고 ‘반아시아인 혐오와 한인 사회: 뉴욕·뉴저지 대도시권 대책 마련을 위한 한인사회 실태 조사’ 결과를 공유했다. 사회복지·사회학 전공 연구진이 작년 10월부터 2개월간 총 26명을 심층면접한 내용을 질적 분석한 결과로, 해외동포재단 지원과 KACE 후원으로 진행됐다. 김동찬 KACE 대표는 “뉴저지주가 아시안아메리칸 역사문화 교육을 의무화할 예정이지만 실행방안은 아직 논의된 바 없다”며 “아시안이 사회에 기여한 점을 중심으로 교육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고, 커뮤니티별로 이 부분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시안에 대한 공교육이 절실하다고 본 세대는 이민 2세대, 즉 청년층이다. 분석결과 청년층은 흑인들의 투쟁에서 교훈을 찾고, 그들과 연대해 혐오범죄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1세대는 혐오범죄가 개인 일탈이라고 믿거나 운이 없어서 당했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정청세 빙햄턴 뉴욕주립대(SUNY) 한국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노인들은 피해자에게서 증오범죄 요인을 찾는 경우도 많았고, 자영업자 그룹도 타민족과 연대해 운동을 벌이는 것엔 회의적이었다”고 말했다. 한인들이 일차적으로 소속된 학생회·경로센터·교회 등과 시민·권익단체 연계를 강화해 아시안 혐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한 배경이다.    이외에도 연구진은 ▶혐오범죄 예방·처벌에 대한 입법운동 ▶혐오범죄 처리과정에 대한 감시 ▶피해자 보상 및 재발방지 제도 마련 ▶피해자 지원 법률조언활동 등을 향후 과제로 꼽았다. 김 대표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연구를 통해 아시안이 새로운 시기에 미국사회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체계적인 양적·질적 실증연구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은별 기자 [email protected]이민역사 아시안 아시안아메리칸 역사교육 아시안아메리칸 역사문화 아시안 혐오

2022.01.1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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