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들 경험+2세들 전문성, 새로운 성장 동력
오랜 시간 1세대 한인들이 주도해온 LA 지역 한인 단체들이 2.3세대의 가세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세대교체는 단순한 리더십 전환이 아닌, 1세대와 차세대가 함께 공존하며 한인 사회의 정체성을 지키고 주류 사회 속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올해부터 LA 한인회를 이끄는 로버트 안 회장은 미국에서 나고 자란 2세대다.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익숙하지만 누구보다 한인 정체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한인 사회가 미국 내에서 목소리를 내고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면 정치력 신장이 반드시 필요한데, 첫 단계가 바로 한인으로서 뿌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회장은 한인회의 세대교체를 시도하는 동시에 세대 간 단절을 피하기 위해 1세대 한인들과의 교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한인회 수석부회장을 맡은 김용호 부회장이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다. 안 회장은 “한인회 활동을 오래 해 온 김 부회장은 1세대 어른으로서의 경험을 나누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25명으로 구성된 한인회 이사회는 1세대와 차세대가 5:5 비율로 참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 회장은 “전문성과 다양성을 높이는 동시에 1세대 어른들의 노하우를 배우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균형”이라고 강조했다. 한미연합회(KAC)도 이 같은 흐름에 함께 하고 있다. KAC는 지난 1983년 설립된 전통 있는 단체지만, 사무국과 이사회 평균 나이는 40대로 젊은 축에 속한다. 유니스 송 대표는 “이사회는 점차 1.5세와 2세대 리더들이 중심이 되고 있지만, 여전히 1세대 리더들이 자문위원으로 함께 하며 지혜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또 KAC는 매년 주최하는 전국 대학 리더십 콘퍼런스(NCLC)에 한인 대학생들뿐 아니라 1세대 이사진을 초청해 젊은 세대 교육에 1세대의 경험과 시각을 통합하고 있다. 송 대표는 “열린 대화와 멘토링, 존중을 통해 세대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며 “특히 1세대 리더들이 젊은 세대에게서도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있다는 점이 큰 힘”이라고 강조했다. LA 한인 시니어 커뮤니티의 중심축인 코리아타운 시니어 & 커뮤니티 센터(이하 시니어센터)에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지난 7월 1일 취임한 이현옥 회장은 선배 이사장들에 비해 젊은 리더다. 한 관계자는 “센터가 20년은 젊어졌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선대 이사장들이 쌓아놓은 기반을 토대로 조직의 구조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사회 정원을 50명으로 확대하고 젊은 세대 이사의 비중을 늘린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가장 젊은 이사는 30대로, 과거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다. 그는 “이사회 구성원들의 마인드가 젊어지고 있으며, 이번에 30대 이사가 합류하면서 평균 연령이 50대로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선대 이사장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그들의 노하우를 경청하며,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운영하겠다”며 세대 공존형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세대교체 흐름에 맞춰 한인 청소년들이 중심이 된 단체들도 부상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출범한 청소년 봉사단체 헬프온더고(Help On The Go·대표 줄리아 정)는 현재 100여 명의 학생이 활동 중이다. 대부분은 한인이지만 일부 타인종 학생들도 참여해 단체의 다양성을 더하고 있다. 이 단체는 클래식 음악 연주회, 튜터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1세대 한인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줄리아 정 대표는 “학생들이 직접 시니어들의 생신 잔치를 준비해 함께 축하하고, 클래식 악기 연주로 뜻깊은 시간을 만든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학생들이 직접 시니어들을 위한 튜터링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사이버 튜터링을 통해 시니어들이 컴퓨터 사용에 더 익숙해지도록 도왔다”고 소개했다. 또한 헬프온더고는 LA 전역의 사회 문제 해결에도 앞장서고 있다. 단체의 벽화 그리기팀 ‘프로젝트 뮤즈’는 범죄율이 높은 사우스 LA 지역의 구세군 센터 외벽에 벽화를 그려 지역 분위기를 밝히고, 노숙자들과 함께 에코파크 타일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해 자립과 재활을 돕는 성과도 거뒀다. 모든 단체가 원활하게 세대교체를 이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은 현재 세대교체를 고심 중이다. 클라라 원 이사장은 “젊은 한인들이 재단을 찾고, 또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단체에 대한 인식 제고가 중요하다”며 “재단이 1세대와 차세대 간 가교 구실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이사회는 50대부터 80대 후반까지 다양하지만, 앞으로는 더 젊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1세대 단체만으로는 추진이 벅차 정체됐던 가주 지역 독립 유공자 묘소 찾기 프로젝트가 그런 노력의 하나다. 올해는 미주중앙일보와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그리고 차세대가 주축된 화랑청소년재단이 공동 주관하고 뱅크오브호프가 후원하면서 큰 성과를 거뒀다. 특히 화랑청소년재단의 2.3세대 청소년들이 직접 독립 유공자 묘소 정비와 이름 찾기에 나서 로즈데일에 안장된 묘소 34기의 위치를 모두 확인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세대가 힘을 모아야만 가능한 성취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세대교체는 단순한 명예직 승계나 조직 운영 방식의 변화가 아니다. 오랜 시간 뿌리를 지켜온 1세대의 헌신과 경험 위에, 2.3세의 전문성과 새로운 감각이 더해져야만 한인 사회가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 특히 주요 단체들이 2·3세를 주체적으로 참여시키고 목소리를 키워나갈 때, 한인 사회는 내부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주류 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더욱 확장할 수 있다. 1세대 중심의 한인 단체들이 차세대와 손잡고 성공적으로 세대교체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한인 사회 존속과 발전의 열쇠라 할 수 있다. 김경준 기자전문성 동력 한인회 이사회 한인회 활동 이사회 구성원들
2025.09.21.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