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언론에서 활약하며 한인 사회에 큰 족적을 남긴 이경원(사진) 대기자가 지난 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고인은 지난 1928년 개성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직후인 1950년 도미했다. 웨스트버지니아대에서 언론학을 전공하고, 지난 1955년 일리노이대에서는 언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고인은 같은 해 테네시주에 있는 킹스포트 타임스 앤 뉴스(Kingsport Times and News)에 기자로 입사하면서 아시아계 이민자 최초의 주류 일간지 기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탐사보도 전문 기자였던 그는 애팔래치아 광부들의 진폐증 문제와 짐 크로우 시대 남부 지역의 인권 운동 상황 등 여러 사회 이슈를 다뤘다. 이후 1970년 새크라멘토 유니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197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갱단 살인사건의 억울한 누명을 쓰고 복역중이던 이철수씨 스토리를 처음 보도했다. 이후 그는 5년간 이철수씨 관련 기사 100편 이상을 작성하며 그의 재심과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 데 기여했다. 고인은 지난 1979년 한인 사회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미국 최초의 한인 영어 신문인 ‘코리아타운 위클리(Koreatown Weekly)’를 창간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션 이씨와 딸 2명, 손자·손녀 6명이 있다. 장례는 비공개로 치러질 예정이다. 이경원리더십센터(소장 김도형)는 이달 중 LA에서 추모식을 열 계획이다. 김경준 기자이경원 이철수 한인 기자 김경준 미국 캘리포니아 가주 엘에이 로스앤젤레스 LA뉴스 한인 뉴스 미주 한인 한인 LA중앙일보 미주중앙일보
2025.03.10. 20:26
1973년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갱단 살인사건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복역하던 한인 이철수 석방운동을 다룬 영화 ‘이철수에게 자유를(Free Chol Soo Lee·사진)’이 에미상 최우수 다큐멘터리 후보에 올랐다. 25일 에미상을 주관하는 TV예술과학아카데미(NATAS)에 따르면 제45회 뉴스&다큐멘터리 에미상 후보에 ‘이철수에게 자유를’은 ‘최우수 다큐멘터리(Best Documentary)’ 후보 외에 ‘뛰어난 역사적 다큐멘터리(Outstanding Historical Documentary)’ 부문과 ‘뛰어난 홍보 공지(Outstanding Promotional Announcement)’ 부문에도 각각 이름을 올렸다. ‘뛰어난 홍보 공지’ 부문은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티저가 뽑혔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줄리 하 감독은 2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최우수 다큐멘터리 후보에 이름이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던 건 한인 커뮤니티의 덕분이었다”며 “소장했던 사진이나 필름 등을 기꺼이 공유하고 이야기를 들려준 한인 커뮤니티에 공을 돌린다”고 말했다. ‘이철수에게 자유를(Free CholSoo Lee)’은 당시 북가주의 유일한 한인 기자였던 이경원씨의 끈질긴 취재로 사건이 보도된 후 아시안 커뮤니티가 뭉쳐 이철수씨의 석방을 촉구하는 사회운동을 벌여 약 1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현재 아마존 프라임, 애플TV, 무비닷컴에서 볼 수 있다. 시상식은 오는 9월 26일 뉴욕 팔라디움 타임스퀘어에서 열린다. NATAS에 따르면 올해 총 2200개 이상의 작품이 접수됐으며 980명이 넘는 심사위원들이 심사에 참여했다. 장연화 기자 [email protected]이철수 에미상 다큐멘터리 에미상 에미상 최우수 최우수 다큐멘터리
2024.07.28. 19:33
이철수 사건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이철수에게 자유를(Free Chol Soo Lee)’ 커뮤니티 시사회 및 공개 토론회가 오늘(22일)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버몬트가에 있는 LA커뮤니티칼리지(LACC) 홈스홀 6(855 N. Vermont Ave.)에서 진행된다. 한인 이민 12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날 행사는 LACC와 LA총영사관이 후원하며 줄리 하 감독과 유진 이 감독, 이경원리더십센터의 김도형 대표가 패널로 참석해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눈다. 관람을 원하는 한인들은 4번 주차장에 무료로 주차하면 된다. ▶예약: tinyurl.com/2023-free 장연화 기자 [email protected]이철수 스크린 이철수 영화 다큐멘터리 이철수 이철수 사건
2023.03.21. 13:59
남가주 한인사회 올드타이머이자 한국 국회의원 3선 출신인 유재건(왼쪽 사진) 변호사가 한국시간으로 1일 오전 9시 서울에서 별세했다. 85세. ‘평화·인권·복지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모토로 삼았던 고인은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이민법 세미나를 개최하고 무료법률 상담을 진행하는 등 힘들고 어려운 한인들을 돕는데 앞장섰던 법조인이자 리더였다.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도중 기자였던 아버지가 납북되면서 졸지에 소년가장이 됐다. 생계를 위해 새벽엔 신문 배달을, 밤이면 모친이 만든 찹쌀떡을 팔러 다녔지만, 경기중·고교를 거쳐 연세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특차입학했을 만큼 학업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졸업 후 정치외교학 석사학위를 받고 공군 장교로 4년간 복무한 후 한국 유네스코위원회에서 3년간 근무한 고인은 1969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왔다. 워싱턴 주립대에서 평범하게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던 그는 미국 판사의 권유에 따라 법대에 진학하고 무려 9번의 고배 끝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 이야기는 유명하다. 모친의 비자 연장을 거부하고 추방 절차를 밟는 이민법원에 출두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설명하는 그를 지켜본 담당 판사가 법대에 진학하라고 추천한 게 계기가 됐다. ‘이철수 사건’은 고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다. 1977년 신문기사를 통해 살인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이철수(당시 25세) 사건을 접한 그는 구명운동에 앞장섰고 결국 사건 발생 10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10년 만에 감옥에서 석방된 이철수 재판은 법대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소수계 인권 변호에 한 획을 그은 케이스로 남았다. 지난 2017년 5월 페퍼다인대 교환 교수로 부임했을 때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고인은 당시 심정을 “아내가 생계를 책임지고 나는 한 푼도 벌지 못하는 무능력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분명 정의는 승리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힘겨운 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본지 2017년 5월 8일자 A-14〉 1990년 한국으로 귀국해 MBC 시사 토론 프로그램과 KBS 심야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로 이름을 알렸던 고인은 고 김대중 대통령의 추천으로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직을 맡고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출마한 성북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3선 의원을 물리쳐 스포트라이트를 뜨겁게 받은 그는 이곳에서 내리 3선을 기록했다. 1997년 대선에선 김대중 후보의 비서실장으로,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 특보단장을 맡아 킹메이커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국회의원 재임 시절 한미의원외교협의회의 회장, 국회 국방위원장 등을 역임하는 등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간판 외교통·미국통으로 활약했던 고인은 2008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자유선진당 창당을 도운 걸 마지막으로 정계를 은퇴했다. 은퇴후 한국유스호스텔연맹 총재, 제3대 CGN TV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성수씨와 2남 1녀가 있다. 고인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5일. ▶연락: (02)3410-6917 장연화 기자삶과 추억 사형수 이철수 이철수 재판 이철수 사건 한국 국회의원
2022.12.01. 19:28
미국 유학 중 살인 누명을 쓴 재미교포 이철수씨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끌어낸 혜천(惠泉) 유재건(柳在乾) 전 의원이 한국시간으로 1일 오전 9시24분께 삼성서울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85세.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 연세대 정외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77년 캘리포니아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1989년 연방정부 지역사회변호사로 일했고, 1982∼1990년 LA에서 법률사무소를 경영했다. 고인이 이철수씨 사건에 뛰어든 것은 변호사 시험 공부를 하던 1977년. 이씨는 1973년 6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갱단 간부 피살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체포된 뒤 1973년 6월 1급 살인죄로 종신형이 선고됐고, 교도소 복역 중이던 1977년 자신을 살해하려는 백인 갱단을 정당방위로 맞서다 살해했다며 제2의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한국인 청년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청소년그룹이 무죄 운동을 펼치는 것과 때를 같이해 '새크라멘토 유니언지' 기자였던 이경원씨가 당시 고인과 함께 사건을 파헤치면서 전기를 맞았다. 고인은 이씨를 면담한 뒤 1차 사건이 잘못됐음을 확신하고 1977년 '이철수 구명위원회'를 결성했고, 이때부터 재판 서류 등을 샅샅이 뒤져 이씨가 7가지 위헌적 재판 절차의 희생양이었음을 밝혀냈다. 이 사건은 이경원씨의 폭로 보도가 이어지고 일본인 3세 야마다 란코씨 등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커뮤니티가 대대적으로 가세한데다 유명한 인권변호사 레너드 와인글래스씨가 무료 변론을 맡았고 이씨와 비슷한 처지에서 어렵게 살아가던 한인들이 성금 20만 달러를 모으는 등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다. 1982년 9월 3일 무죄 평결이 내려지고 제2의 사건도 1983년 사형판결을 무효화함으로써 이씨는 교도소에서 풀려났고,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소수민족 연대 승리로 기록됐다. 고인은 2009년 사건 기록을 담은 책 '함께 부르는 노래'를 펴냈다. 고인은 1990년 귀국한 뒤 1993년까지는 'MBC 시사토론', 1993∼1995년에는 'KBS 1TV 심야토론'을 진행했다. 1995년 경기고 동기생인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의 권유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고, 원외 부총재로 임명됐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전국구 출마가 유력했지만, 지역구(서울 성북갑) 출마를 선언해 1997∼1999년 총재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김대중 총재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도 지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선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2003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3선 의원이 됐다. 2006년초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된 정세균 의원의 뒤를 이어 열린우리당 임시의장을 맡기도 했다. 2009년 한국유스호스텔연맹 총재, 이후 세계유네스코협회연맹 회장을 지냈다. 연세대 1학년 때인 1956년 소련군이 헝가리를 침공하자 대학교 친구인 이만섭(1932∼2015) 전 국회의장과 함께 학도의용군을 결성한 공로로 2006년 헝가리 십자중훈장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김성수씨와 사이에 2남1녀(유승영·유수화·유대현)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다. 5일 오전 발인을 거쳐 미국 서부에 있는 추모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 02-3410-6917이철수 유재건 이철수 구명위원회 무죄 평결 무죄 판결
2022.12.01. 9:30
뉴욕한인회가 다큐멘터리 영화 '이철수에게 자유를(Free Chol Soo Lee)' 상영회를 후원한다. 뉴욕한인회는 오는 13일 오후 3시 40분 맨해튼 IFC센터(323 6애비뉴)에서 열리는 '이철수에게 자유를' 상영회를 후원하며, 관심있는 사람은 뉴욕한인회 웹사이트(kaagny.org)를 통해 예약할 경우 17달러의 티켓을 구매하지 않고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영화 '이철수에게 자유를'은 1970~1980년대 아시안 최대 인권운동으로 불리는 이철수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살인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고 이철수 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올해 제38회 선댄스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에 상영돼 호평을 받았다. 상영회에는 이 영화를 공동으로 연출한 한인 2세 줄리 하 감독과 유진 이 감독이 참석해 관객들의 잘문에 답변할 예정이다. 찰스 윤 뉴욕한인회장은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지금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미국 내 아시안 아메리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은주 기자뉴욕한인회 이철수 뉴욕한인회 이철수 상영회 후원 뉴욕한인회 웹사이트
2022.08.10. 20:19
살인 누명을 썼던 이철수씨는 늘 자유를 원했다. 그 갈망이 필름 속에 담겼다. 세계 최대 독립영화 축제인 선댄스 영화제에서 이철수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Free Chol Soo Lee(이철수에게 자유를)’가 방영된다. 이철수 씨는 70~80년대 한인사회를 비롯한 전국에서 민권 운동의 상징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선댄스 영화제측은 이번에 한인 감독 줄리 하, 유진 이씨가 이철수 씨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을 다큐멘터리 부문에 초청했다. 이씨는 지난 1973년 6월 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중국인 갱단원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었다. 당시 한 백인 관광객의 잘못된 진술이 그의 삶을 옭아맸다. 당시 여자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무고하게 체포된 20대 청년의 이씨는 어떠한 물증도 제시되지 않은 재판에서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삶은 그 지점에서 다시 한번 꼬인다.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이씨는 1977년 10월 8일 함께 수감중이던 백인 나치주의자 갱단원 모리스 니드햄을 죽이게 된다. 이씨를 죽이기 위해 모리스가 칼을 휘둘렀고 이씨는 살아남기 위해 그를 죽인 것이었다. 그러나 정당방위였음에도 이씨는 또 재판을 받았고 이번엔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당시 일본인 친구(야마다 란코)가 이씨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구명운동을 벌였고 이후 새크라멘토유니언지에서 활동했던 이경원 기자가 이씨의 사연을 보도하면서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이후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구명운동의 물결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전국에서 ‘이철수에게 정의를 찾아주자’라는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결국, 1983년 3월 28일 이씨는 억울한 살인누명으로 체포당한 지 10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이후 청소년 선도 등 강연 활동 등을 해오다가 지난 2014년 혈관폐색으로 숨을 거뒀다. 이 사건은 미국 내 소수계 민권운동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선댄스 영화제는 팬데믹 사태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이 작품은 선댄스 영화제 웹사이트(https://festival.sundance.org/#)를 통해 볼 수 있다. 티켓을 구입(20달러)하면 23~24일 사이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관람이 가능하다. 한편, 이번 다큐멘터리 영화를 공동 제작한 줄리 하씨는 UCLA 졸업 후 미주 영문 한인 잡지였던 코리암 저널의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유진 이씨는 브라운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타임스에서 비디오 저널리스트로 활동해 왔다. 장열 기자이철수 살인누명 선댄스 영화제측 살인누명 이철수 이철수 사건
2022.01.23. 1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