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우리나라의 민낯을 보면 마치 도떼기시장 같다. 좁은 땅덩어리에 붙어살면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보면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대며 삿대질하고, 극단적인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반으로 나뉜 나라가 다시 반으로 동강 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든다. 고학력 해외유학파 경제 사기범들은 서민들의 피 같은 돈을 날로 먹고 튀질 않나,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고 강 건너 불구경하던 마약에 우리 아이들이 손을 대질 않나. 도떼기시장도 이런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을 것이다. 정부는 법으로 다스리겠다고 큰소리치지만,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이다. 법으로 인성을 고치는 것은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법집행자들의 윤리성을 신뢰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는 법치란 말이 비아냥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아수라장 같은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법이 아니라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다. 사회의 존경을 받는 대상이 국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가정에 어른이 없으면 콩가루 집안이 되듯이 나라에 어른이 없어도 같은 현상이 생긴다.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판을 치고 그 틈새에 사이비 종교들이 기세를 부린다. 그래서 법보다 존경받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존경의 대상을 성인(Saint)이라고 부른다. 성인은 사람에 대한 최대 존칭어이다. 성인들은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 안에서도 아주 중요한 존재 의미를 갖는다. 성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성인들은 쓰러져가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등대 같은 존재들이었다. 중세 유럽의 많은 신자가 부패한 성직자들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하여 교회에 등을 돌리려 하다가 다시 신앙의 길로 들어선 것은 수많은 선행과 기적을 일으킨 성인들 덕분이었다. 성인들은 대부분수도자이었고, 이들은 신자들의 신앙을 고취했을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한 학자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를 교황들의 교회라 하지 않고 성인들의 교회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성인들을 머리 뒤에 후광을 두른, 세상과는 별개로 격리되어 사는 별종 인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가톨릭의 많은 성인은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뛰어든 사람들이다. 현대의 대표적인 성인을 소개하자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콜카타의 마더 테레사 수녀를 들 수 있다. 흙수저·금수저를 따지고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산다는 천민 철학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사는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어머니 역할을 한 것이 마더 테레사 수녀이다. 미국인 군종신부 에밀 카폰은 어린 동생 같은 미군들을 돌보려고 같이 포로로 잡히었고, 포로수용소에서 그들을 돌보다 병사한 신부이다. 그의 마음은 적군조차 감동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태석 신부는 의사의 신분으로 돈도 명예도 마다하고 내전 중인 남수단에서 그 사회의 가장 밑바닥인 나환자들과 함께하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눈물을 모른다는 남수단 아이들의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게 한 사람이다. 불자인 구수환 감독은 자신과 종교도 다른 가톨릭의 이태석 신부에게 매료되었다. 그는 정신적으로 오염된 한국사회의 치유를 위해 이태석 신부의 정신을 알리고자 오랫동안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에 많은 관객은 ‘울지 마 톤즈’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성인은 종교만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한 성인들은 세상의 희망이자 별이다. 이런 별들이 많을 때 암흑 속에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고 자기 삶을 살 수 있다. 중세 유럽 가톨릭 국가들이 정신적인 지주로 삼았던 성인들처럼 우리도 우리의 성인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살레시오회에서 비행 청소년들을 위한 강의를 하던 중 당혹감을 느꼈다. 아이들 중 절반은 잘 웃고 감정 표현도 잘하였는데, 나머지 아이들은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다. 수사들에게 물으니 무표정한 아이들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인데, 한 달 후면 다른 아이들처럼 건강한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법이 아니라 성인 같은 선한 사람들임을 그곳에서 보았다. 선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악한 자들이 발붙일 자리가 없는 세상이 진정한 민주사회이고, 진정한 의미의 하느님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개신교·불교·이슬람교 할 것 없이 모든 종교에서 성인들이 많이 나와서 오염된 세상을 정화하고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등대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홍성남 /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속풀이처방 성인 시기 이태석 신부 천민자본주의 사회 군종신부 에밀
2023.05.29. 15:54
대선 주자 중 한 사람이 손바닥에 왕(王)이란 글자를 새겼다가 곤욕을 치렀다. 본인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대가 어떤 때인데 왕이 될 생각이냐는 세간의 비난은 따가웠다.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남자들은 누구나 왕이 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선 주자 그 한 사람만의 욕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남편들이 아내에게 바라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집안이 늘 정갈하고, 집에 들어올 때는 가족들이 가장을 반갑게 맞아야 하고, 식사도 늘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바람. 이 세 가지 바람의 밑바닥 욕구가 왕이 되고 싶은 욕구라고 한다. 집안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남자들이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욕구는 대단하다. 그렇다면 그다음으로 중요한 화두는 어떤 왕을 뽑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세상은 지금 구약시대를 방불케 한다. 제국의 왕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시기에 우리가 새로 뽑는 ‘대통령’이라 불리는 왕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이는 민족의 생존이 걸린 중요한 화두다. 첫 번째 조건은 관대함이다. 인간의 역사를 뒤돌아보건대 왕중왕으로 칭송받는 사람들은 관대한 왕들이었다. 이란의 전신인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은 관대함으로 이름을 날린 왕으로서 구약에서도 언급이 될 정도로 다른 민족에게도 존경 받았다. 왕의 관대함 크기만큼 제국의 크기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만델라 대통령도 관대함으로 남아공의 분열을 막았고,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 장군도 유명하다. 그는 무자비한 학살자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항복한 남군 병사들에게 “전쟁은 끝났소. 그대들은 다시 우리 국민으로 돌아왔소”라고 하면서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배려까지 해 주었다. 우리는 아주 좁은 땅덩이에서 살고 있다. 삼면이 바다에 북쪽으로도 단절되어 사실상 아주 작은 섬에 사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서로를 증오하는 것은 모두의 자살행위와 같기에 관대한 사람이 왕이 되었으면 한다. 두 번째 조건은 좋은 측근들이다. 측근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이어야 한다. 즉 자기가 모시는 사람이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현실을 인식하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조언해야 한다. 역대 패망한 왕들은 아부꾼들을 측근으로 두어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대중심리와 거리가 먼 행동을 함으로써 스스로 몰락의 길을 갔다. 측근들은 왕이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왕을 통제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인류 역사를 보면 왕이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측근이 왕을 제거한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런 지혜로운 이들이 있어야 왕이 멍청한 짓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세 번째 조건, 왕은 국민의 삶의 현장에 가까워야 한다. 정치를 엉망으로 한 독재자들일수록 자신의 처소를 아방궁처럼 만들고 국민과 거리두기를 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유유자적하며 아부꾼들이 전해주는 달짝지근한 말에 중독돼 갔다. 현장에 가질 않는 데다가, 가더라도 아부꾼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현실을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이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다. 위정자가 집을 크고 화려하게 지으면 장기 독재할 가능성이 크지만, 집을 작고 검소하게 하면 국민을 위한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이런 의미에서 위정자들은 남수단의 이태석 신부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그는 언제라도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자신의 숙소를 환자 중심으로 만들었다. 자기 삶을 환자 중심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남수단인들에게 이태석 신부는 단순히 종교인이나 의사를 넘어 진정한 왕으로 인식된다. 우리나라는 관계가 불편한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다. 식민지 시절을 청산하지 못한 일본, 적으로서 전쟁을 치렀던 중국·러시아·북한 등 사방이 불편한 조건이다. 이런 열악한 생존조건을 가진 나라를 세상이 주목할 나라로 만들려면 그릇이 큰 왕이 필요하다. 한국인은 우수하다. 문제는 이런 우수한 민족을 이끌 왕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왕이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왕이 될 만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홍성남 /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열린 광장 남자 밑바닥 욕구 관대함 크기 이태석 신부
2021.11.26. 1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