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리고 보니, 세상은 이미 인공지능(AI)의 시대로 변해 버렸다. 우리 삶의 각 분야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거부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고 한다. 잔혹한 전쟁의 배후에도 인공지능이 도사리고 있고, 인공지능 예수 아바타나 로봇 부처 등 종교계에도 AI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고 한다. ‘2달러 내면 예수님과 대화’ 같은 어처구니없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면서 이런저런 부작용도 걱정되는 모양인데, 마땅한 대책은 아직 없다니 두렵다. 인공지능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물론 저마다 다르다. 충실한 조수가 생겼다고 긍정적으로 반기는 사람도 있고, 근심 걱정 어린 눈길로 경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찌 되었거나 ‘에이아이’라는 낱말이 ‘옆집 아이’ 이름처럼 일반화되었고, 에이아이를 모르면 낙오자가 될 것 같은 위기감이 날카롭다. 가장 현실적 위협은 인간의 밥그릇을 빼앗아 가는 일이다. 이미 많은 일자리가 에이아이에 넘어갔고,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난이 문제로 떠오르는 판이다. 구체적 예를 들면, 현대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의 생산 현장 투입에 대해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입장을 밝혔고,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로봇 막으면 공장이 사라진다”고 경고하며 맞서고 있다. 앞으로 생산 현장에서 로봇 투입이 본격화하면 노조와 갈등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예술 쪽에서도 갈등이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이미 인공지능이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하고,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런 세상이 되었다. 하나하나 예를 늘어놓을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 인공지능은 예술 각 분야에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신문기사나 보고서, 논문 같은 실용적 글쓰기는 말할 것도 없고, 문학 작품에서도 이런저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순수 문학 작품처럼 창조성과 예술성이 중심인 분야는 에이아이가 대신할 수 없으므로, 걱정 없을 것이라는 말도 다 헛말인 모양이다. 지적재산권 같은 현실적 문제부터 작가의 양심이나 윤리 문제에 이르기까지 민감한 사안이 자꾸 쌓여만 간다. 글로벌 대형 출판사 아셰트가 영국에서 출간된 소설 ‘샤이걸’을 서점에서 거둬들였는데, 이유는 작가가 인공지능으로 소설을 썼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대형 출판사가 AI 사용을 이유로 소설 판매를 중단한 최초 사례로 평가된다. 권위 있는 문학 전문지의 신인 작품 공모에서도 ‘AI 사용 또는 표절 작품은 심사에서 제외하며, 의혹 발생 시 수상을 취소한다’는 규정이 등장했다. 문학 작품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창작물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이른바 ‘딸깍 도서’ 논란도 뜨겁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한해에 수백, 수천종씩 책을 펴내는 출판 행위를 말하는데, 실제로 한국의 한 출판사는 1년간 9000여권의 책을 펴냈다고 한다. 이런 ‘딸깍 도서’에 맞서, 국내 한 출판사는 ‘인간 저술 출판물’ 보증제를 도입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결국은 작가의 양심과 자존심에 달린 일일 수밖에 없다. 문인들에게 당장 직면하고 있는 문제다. 글쓰기에서 인공지능의 활용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기준은 없다. 있을 수도 없다. 미술가가 조수를 쓰는 일과는 전혀 다른 쟁점이다. 인공지능을 얼마나 활용했는지를 검사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할 판이다. AI 분야의 석학 므리난크 샤르마라의 선택은 매우 상징적이다. 요즘 미국의 최대 화제 기업 중 하나인 앤트로픽의 AI 안전 책임자였던 그는 최근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영국으로 시를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다. 동료들에게 보낸 샤르마의 퇴사 편지 한 구절은 참 의미심장하다. “과학은 우리에게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주지만, 시는 세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문학작품과 인공지능 인공지능 예수 문학 작품 대형 출판사
2026.04.30. 18:56
제법 긴 세월 ‘생계형 글쟁이’로 살아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자료가 매우 중요하다.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풍부하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글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바르고 깊이 있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되도록 다양한 관점, 많은 정보를 모아서 꼼꼼하게 비교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세상 참 복잡하고 편해졌다. 예전처럼 자료수집을 위해 발품 팔고 땀 흘리며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컴퓨터에 부탁하면 너무 많은 관련 지식과 정보가 넘쳐흘러서 오히려 걱정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똑같은 정보를 손에 넣고 주무를 수 있어, 독창성을 발휘하기가 한층 어려워진다. 그래서 글이나 논문들이 비슷비슷하다. 새로운 관점이나 해석은 찾아보기 어렵고, 그저 교묘한 짜깁기 재주 경쟁만 남을 위험성이 크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는 연암 박지원의 말씀을 꺼내기도 쑥스럽다. 글 내용의 질이나 수준 평가 이전에, 표절 여부를 가리기만도 바쁘니 말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의 진위, 엉터리 자료를 가려내는 판단 능력이다. 수집한 정보가 얼마나 믿음직한가라는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건 결코 간단하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요즘처럼 가짜 뉴스, 불확실한 지식, 거짓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진위와 옥석을 가리기가 정말 어렵다. 악의적으로 조작된 정보를 걸러내고, 덫에 걸리지 않기는 더욱 힘든 일이다. 정치적 꼼수가 숨겨져 있는 주장, 이념 갈라치기에서 비롯된 진영논리, 돈이 걸려있는 사안들에서는 혼란이 한층 날카롭다. 목소리 큰놈이 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다수결이 진리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인공지능이 더 획기적으로 발달하고 대중화되면 어떤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지 궁금하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언론의 기사나 보고서, 논문 등 실용적 글쓰기의 많은 부분에 인공지능이 자리 잡고 일을 더 잘하고 있어, 인간들의 밥줄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담론을 만들고 화두를 제시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언론과 기자들의 역할에서는 문제가 한층 심각해진다. 인공지능은 이미 언론계 글쓰기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급기야 ‘기자들의 노벨상’ 퓰리처상도 인공지능에 대해 주목할 만한 언급을 하기에 이르렀다. 생성형 AI를 취재 수단의 하나로 인정하면서도, 보도 과정에 이를 활용했을 경우 그 사실을 밝히도록 한 것이다. 발품을 판 직접 취재를 으뜸으로 여기는 기존의 기자정신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부분이다. 천하의 퓰리처상도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최종 후보에 오른 45개 기사 가운데 생성형 AI를 활용한 기사가 5건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제 남은 숙제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조화로운 공존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 기계의 종이 되는 현상이다. 원론적으로는, 기계가 인간을 이길 수는 없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자나 언론인 개인이 인공지능을 이기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공지능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가려낼 재간조차 없다. 상상력이나 창조력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수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인공지능이 쓴 문학작품, 특히 공상과학소설 분야에서는 이미 상당한 수준이어서, 인간 작가들의 밥그릇을 위협하고 있다. 그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 예수, AI 붓다까지 이미 나와 있다고 하니 감히 종교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공지능이 살상무기가 될 날도 머지않다는 걱정도 나온다. 끔찍한 일이다. 전문가들의 경고는 매우 구체적이다. AI 도구가 편리한 건 분명하지만, 이를 무비판적으로 남용하다 보면, 사고 능력이 급속히 퇴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는 똑똑해지는데, 인간은 점점 멍청해지고 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인공지능 글쓰기 인공지능 예수 인공지능 시대 언론계 글쓰기
2025.07.21. 23:07
제법 긴 세월 ‘생계형 글쟁이’로 살아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자료가 매우 중요하다.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풍부하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글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바르고 깊이 있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되도록 다양한 관점, 많은 정보를 모아서 꼼꼼하게 비교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세상 참 복잡하고 편해졌다. 예전처럼 자료수집을 위해 발품 팔고 땀 흘리며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컴퓨터에 부탁하면 너무 많은 관련 지식과 정보가 넘쳐흘러서 오히려 걱정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똑같은 정보를 손에 넣고 주무를 수 있어, 독창성을 발휘하기가 한층 어려워진다. 그래서 글이나 논문들이 비슷비슷하다. 새로운 관점이나 해석은 찾아보기 어렵고, 그저 교묘한 짜깁기 재주 경쟁만 남을 위험성이 크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는 연암 박지원의 말씀을 꺼내기도 쑥스럽다. 글 내용의 질이나 수준 평가 이전에, 표절 여부를 가리기만도 바쁘니 말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의 진위, 엉터리 자료를 가려내는 판단 능력이다. 수집한 정보가 얼마나 믿음직한가라는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건 결코 간단하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요즘처럼 가짜 뉴스, 불확실한 지식, 거짓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진위와 옥석을 가리기가 정말 어렵다. 악의적으로 조작된 정보를 걸러내고, 덫에 걸리지 않기는 더욱 힘든 일이다. 정치적 꼼수가 숨겨져 있는 주장, 이념 갈라치기에서 비롯된 진영논리, 돈이 걸려있는 사안들에서는 혼란이 한층 날카롭다. 목소리 큰놈이 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다수결이 진리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인공지능이 더 획기적으로 발달하고 대중화되면 어떤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지 궁금하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언론의 기사나 보고서, 논문 등 실용적 글쓰기의 많은 부분에 인공지능이 자리 잡고 일을 더 잘하고 있어, 인간들의 밥줄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담론을 만들고 화두를 제시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언론과 기자들의 역할에서는 문제가 한층 심각해진다. 인공지능은 이미 언론계 글쓰기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급기야 ‘기자들의 노벨상’ 퓰리처상도 인공지능에 대해 주목할 만한 언급을 하기에 이르렀다. 생성형 AI를 취재 수단의 하나로 인정하면서도, 보도 과정에 이를 활용했을 경우 그 사실을 밝히도록 한 것이다. 발품을 판 직접 취재를 으뜸으로 여기는 기존의 기자정신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부분이다. 천하의 퓰리처상도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최종 후보에 오른 45개 기사 가운데 생성형 AI를 활용한 기사가 5건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제 남은 숙제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조화로운 공존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 기계의 종이 되는 현상이다. 원론적으로는, 기계가 인간을 이길 수는 없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자나 언론인 개인이 인공지능을 이기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공지능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가려낼 재간조차 없다. 상상력이나 창조력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수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인공지능이 쓴 문학작품, 특히 공상과학소설 분야에서는 이미 상당한 수준이어서, 인간 작가들의 밥그릇을 위협하고 있다. 그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 예수, AI 붓다까지 이미 나와 있다고 하니 감히 종교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공지능이 살상무기가 될 날도 머지않다는 걱정도 나온다. 끔찍한 일이다. 전문가들의 경고는 매우 구체적이다. AI 도구가 편리한 건 분명하지만, 이를 무비판적으로 남용하다 보면, 사고 능력이 급속히 퇴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는 똑똑해지는데, 인간은 점점 멍청해지고 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인공지능 글쓰기 인공지능 예수 인공지능 시대 언론계 글쓰기
2025.07.17. 2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