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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파타고니아가 건네는 위로

“파타고니아에 한 번 가면 언젠가 반드시 다시 찾게 된다”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20대 초반 번민에 사로잡혀 남미의 끝으로 향했던 나는 그곳에서 마주한 산과 숲, 빙하와 바람, 호수와 하늘, 구름의 풍경 앞에서 내면의 전쟁이 무색해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 인연은 평생 이어질 연분이 됐다.   ▶마젤란, 남방에서 역사를 바꾸다   1519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항해 목적은 분명했다. 서쪽으로 항해해 말루쿠 제도로 가는 새로운 바닷길을 찾는 것. 폭풍을 피해 남쪽 해안을 따라 내려가던 그는 1520년 좁은 물길 하나를 발견한다. 처음엔 강 어귀로 여겼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수로 끝에서 또 다른 바다가 열렸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길, 오늘날의 마젤란 해협(Strait of Magellan)이다.   이 발견으로 당시 ‘세상의 끝’이라 불리던 남쪽 바다는 신대륙으로 향하는 관문이 됐다. 세계 지도는 다시 그려졌고, 인류의 항해사는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파타고니아   1520년 마젤란 일행이 남미 최남단에서 처음 목격한 것은 눈 위에 찍힌 커다란 발자국이었다. 거인의 흔적이라 여긴 선원들은 이 지역을 ‘Patagon(큰 발을 가진 사람)’에서 유래한 파타고니아(Patagonia)라 불렀고, 그 이름은 그대로 지명으로 남았다. 거대해 보였던 발자국의 실체는 혹한을 견디기 위해 원주민이 발에 여러 겹의 짐승가죽을 두른 흔적이었다. 칠레 파타고니아 최남단 도시 푼타아레나스(Punta Arenas) 곳곳에서는 지금도 ‘마젤란’이라는 이름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해협·거리·호텔·보호구역까지, 그의 흔적은 도시 곳곳에 스며 있다.   도심 중심부에는 마젤란 동상이 자리한다. 그러나 여행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그의 발 아래에 앉아 있는 파타고니아 원주민 상이다. 옛 항해자들은 무사 항해를 기원하며 원주민의 ‘큰 발’을 만졌고, 지금은 여행자의 행운을 빌며 사진을 남기는 명소가 됐다. 반짝이는 발 조각은 세월의 녹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티에라델푸에고   ‘티에라’는 땅, ‘푸에고’는 불을 뜻한다. 원주민이 늘 피워두던 모닥불의 연기를 본 마젤란이 ‘불의 땅’이라 부른 데서 비롯된 지명이다.   19세기 초, 영국은 미지의 남단 해역을 정밀하게 측량하기 위해 HMS 비글(Beagle)호를 파견했다. 탐험대는 1830년 마젤란 해협보다 더 남쪽에서 새로운 수로를 발견한다. 거친 드레이크 해역을 우회해 태평양으로 진입할 수 있는 생명줄, 오늘날의 비글 해협(Beagle Channel)이다.   ▶칠레 vs 아르헨티나, 긴 영토 싸움   티에라델푸에고 제도의 국경선은 1881년 조약으로 정해졌지만, 최남단의 작은 섬들과 비글·마젤란 해협은 이후 수십 년간 갈등의 불씨가 됐다. 1978년엔 양국이 함대와 병력을 배치하며 전면전 직전까지 치달았다. 상황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중재로 1984년 ‘평화와 우정 조약’이 체결되며 가까스로 봉합됐다.   남단 국경 분쟁은 단순한 영토 문제가 아니었다. 남극 접근권, 해양 자원, 석유 탐사, 어업권 등 국가의 자존심과 전략적 이익이 걸린 거였다. 지금의 비글 해협은 세계적 명성을 얻은 ‘파타고니아 킹크랩’의 산지다. 만약 양국의 갈등이 이어졌다면, 우리가 이 맛을 즐기는 일도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   ▶여행 팁   안데스산맥을 중심으로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는 파타고니아는 광대한 지역 특성상 지형·인프라·접근성이 크게 다르다. 일정 구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여행이 가능하며, 일정이 길수록 국경을 넘나드는 이동이 수월해진다. 8박부터 22박까지 여러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고, 개인 취향에 맞춘 맞춤 일정도 선택할 수 있다. 파타고니아는 ‘바람의 땅’으로 불릴 만큼 날씨 변수가 많은 지역이어서 전문 인솔자의 안내가 필수적이다.     출발 일정은 ▶2026년 1월 24일 ▶2월 10일 ▶3월 22일 ▶4월 2일(단풍 절정기) ▶11월 10일·19일 ▶12월 18일이다.   ▶문의: (213) 507-0020, www.ewsntour.com   ━       유니스 조 대표   남미 전문 여행사 동서남북투어의 유니스 조 대표는 17세부터 남미 전역을 누빈 베테랑 백패커 출신의 전문가다. 그는 40년 넘게 쌓아온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 상품을 직접 설계하고 디자인해 왔다. 모든 일정은 현지 인솔까지 책임지며 진행한다.파타고니아 인사이드 파타고니아 원주민 칠레 파타고니아 마젤란 해협

2025.12.0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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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2728명 임시숙소 이주에 3억4천만불 '허비'

LA시 캐런 배스 시장이 홈리스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도입한 ‘인사이드 세이프(Inside Safe)’ 정책에 3억4100만 달러나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배스 시장은 홈리스 사태 해결을 목적으로 홈리스에게 모텔과 호텔 등 임시숙소를 제공했지만, 이들 중 25%는 다시 거리로 돌아갔다.   최근 케네스 메히야 회계감사관은 웹사이트에 인사이드 세이프 예산집행 내용을 공개했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LA시는 지난 2022년 12월부터 5월 31일까지 총 3억4105만9057달러를 인사이드 세이프 정책 예산으로 지출했다. 이를 통해 홈리스 2728명이 모텔과 호텔 등 임시숙소와 조건부 임대주택을 이용했다.   예산 세부 사용 내용을 볼 때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산술적으로 계산할 때 인사이드 세이프 혜택을 누린 홈리스 1인당 약 12만5000달러 예산이 들어간 셈이다.     특히 2728명 중 19%만이 정부보조 등 주거시설(In Housing)에 들어갔다. 53%는 모텔과 호텔, 임시셸터, 브리지홈, 타이니홈 등을 이용했다. 25%에 달하는 686명은 거리생활로 돌아간 것으로 집계됐다.   3억4100만 달러 중 61%만이 홈리스 주거비용으로 쓰인 점도 논란이다. 시는 홈리스 임시주택 지원비로 1억1096만 달러(33%), 모텔과 호텔 숙박비로 9587만 달러(28%)를 썼다. LA시와 계약을 맺고 홈리스를 수용한 한 모텔은 적게는 4만 달러부터 많게는 164만 달러까지 수입을 얻었다.   반면 전체 예산 중 1억637만 달러(31%)는 홈리스 지원 인건비로 쓰였다. 홈리스 문제 해결책인 영구주택 확보에는 1910만 달러(5.6%)만 들어갔다.   그동안 LA시 인사이드 세이프 정책은 불투명한 운영 논란을     낳았다. 지난 4월 연방 판사와 LA시 감사관은 각각 해당 정책에 대한 감사에 나선 바 있다. LA시가 차량에서 지내는 홈리스를 위해 제공하는 ‘세이프 파킹(safe parking)’ 정책도 연간 650만 달러를 지출하고 있지만, 관련 데이터 부재로 예산낭비 지적을 받았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인사이드 세이프 인사이드 세이프 세이프 정책 세이프 파킹

2024.06.16. 19:18

"노숙자 인종 분류하고 수갑까지 채웠다"…'인사이드 세이프' 강압 이주 논란

캐런 배스 LA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노숙자 이주 정책인 ‘인사이드 세이프(Inside Safe)’가 폭력과 강압 등으로 얼룩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노숙자를 모텔, 셸터 등 임시 거주지로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법 집행기관 관계자들이 특정 인종을 분류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UCLA공공정책연구소 애난야 로이 교수가 지난 2일 캐런 배스 LA 시장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드러났다.   서한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달 12일 밴나이스 지역 애트나 스트리트에서 시행된 인사이드 세이프 텐트촌 정화작업 과정에서 발생했다.   로이 교수는 “이날 노숙자들은 인사이드 세이프 등록을 위해 텐트, 소지품 등 무엇을 포기했는지 카메라 앞에서 진술하도록 요구받았다”며 “게다가 UCLA 조사팀원들은 (법 집행기관에서) 라틴계 노숙자를 인종적으로 프로파일링하고 소지품을 압수하고 갱단과의 연계성까지 조사한 것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UCLA공공정책연구소 산하 조사팀은 지난 1~6월 애트나 스트리트 텐트촌을 중심으로 인사이드 프로그램의 정책, 실효성 등을 심층적으로 연구해왔다.   노숙자들은 지난 4월 인사이드 세이프 시행과 관련, 시장실에 서한을 보내 셸터 제공, 저소득층 주택 연결, 셸터 이주 거부 시 노숙 금지법 집행에 따른 단속 및 보복성 행위 금지 등의 사항을 서면으로 제공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 교수는 “그러나 지난달 12일에 시행된 정화작업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노숙자가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셸터에 머물 것인지 등 명확한 정보도 전달하지 않았다”며 “이는 모든 이주 과정이 자발적, 노숙자 중심적, 치료 제공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LA노숙자서비스국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LA경찰국, LA위생국 등이 나선 인사이드 프로그램 프로젝트는 이후에도 계속돼 지난 12일에는 한인타운에서 100명 이상을 셸터로 옮기는 28번째 정화작업으로까지 이어졌다.   특히 로이 교수는 이번 단속 등에 대해 관련이 없다고 밝힌 배스 시장실의 입장도 정면 반박했다.   그는 “당시 현장에는 배스 시장실의 보좌관이자 인사이드 세이프 책임자인 자넷 몬티온 등 시장실 직원들과 6지구의 이멜다 파디야 시의원까지 있었다”고 전했다.   로이 교수는 인사이드 세이프 프로그램이 사실상 노숙자를 처벌하고 단속하기 위한 작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지난달 29일에는 심장박동기를 달고 있는 한 노인 노숙자의 소지품을 압수하고 텐트를 철거해버렸다”며 “그들은 수갑까지 채웠고, 한 노숙자는 우리에게 ‘전 세계가 우리를 봤으면 좋겠다’며 사진 공유까지 부탁했다”고 적었다.   로이 교수는 배스 시장에게 ▶애트나 스트리트 인사이드 세이프 운영으로 발생한 비용 등을 구체적으로 공개 ▶시 감사실에 노숙자 이주 프로그램 감사 요청 ▶노숙자 텐트 철거 후 공공장소를 막고 있는 펜스 철거 ▶시장실 직원들이 단속 현장에 있었던 점 해명 ▶배스 시장실의 공식 성명 발표 등을 요구했다.   이어 그는 “이 모든 것을 냉소적인 상황으로 만든 건 결국 LA의 정치인들”이라며 “결국 노숙자에게 영구적인 거처를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결국 인사이드 세이프를 통한 노숙자들은 거리로 다시 내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스펙트럼뉴스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으로 인사이드 세이프에 참여한 노숙자 1531명 중 저소득층 아파트 등을 찾은 사례는 148명뿐이다. 대부분은 거리로 다시 돌아갔다. 장열 기자 [email protected]인사이드 세이프 인사이드 세이프 노숙자 이주 라틴계 노숙자

2023.10.17. 21:47

[잠망경] 인사이드 잡

병동에 환청 증세가 있는 환자들이 많다. 그들은 대체로 환청에 대하여 내게 소상하게 말하지 않는다.   50대 중반의 필립이 다른 병동에서 내 병동으로 꽤 오래 전에 후송돼 온 이유는 그곳 정신과 의사에게, “Stay away from me! 가까이 오지 마!” 하며 복도에서 음산하게 말하고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 속 마음을 남에게 쉽사리 털어 놓는 성격이 아니다. 내가 얘기를 하자 하면 낮은 목소리로 거부한다.   필립이 외로운 자세로 병동을 걸어간다. 뒷짐을 지는가 하면 양손을 위로 올리며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무슨 시그널을 보내는 동작을 취하기도 한다. 다른 환자들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 그를 회피하려는 눈치다.   그가 내 오피스 앞을 지나가며, “You don‘t understand, do you? 이해를 못하지요, 합니까?”라고 한 후 다른 말을 계속하면서 간호사실 쪽으로 걸어간다. 좀 괴로워하는 얼굴 표정의 그는 옛날에 유명 자동차 회사 간부급으로 일한 전력이 있다.   그룹테러피 시간. ‘internal stimulus, 내적자극(內的刺戟)’에 대하여 얘기하겠다고 환자들에게 토픽을 소개한다. 누구나 ‘외부적 자극’을 통하여 느끼는 감각은 뚜렷하지만, 주야장천 무엇인가 느끼는 우리의 ‘내부적 자극’은 잘 알지 못한다는 서론을 펼친다.   ‘internal stimulus’가 ‘inside stimulus’로 말이 바뀐다. 그리고 ‘inside stimulus’가 ‘inside job’으로 또 바뀐다. ‘인사이드 잡’은 범죄영화에 자주 나오는 슬랭으로서 ‘내부자 범행’를 뜻한다. 필립이 몰래 웃는다. 어쩌다 내적자극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이런 슬랭으로 전락했는가.   ‘인사이드 잡’에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feeling, anxiety, fear, anger, wish, love, desire - 느낌, 불안, 공포, 분노, 소망, 사랑, 욕망’, 등등이 있단다. ‘평화’는? 누가 ‘Peace is boring, 평화는 따분합니다’ 하고 일갈한다. 좋아, 그러면, ‘생각’은?“Are thoughts inside jobs? 생각도 인사이드 잡이냐? ” 한두 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은 어디에서 오느냐. “Thought is coming from mind! 생각은 마음에서 옵니다!”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생겨나지.   ‘thought, 생각’은 ‘think, 생각하다’의 과거형과 같은 말이다. 동사의 결과가 명사다. 생물체는 우선 먼저 행동하고 본다. ‘think’는 고대영어에서 ‘기억하다, 상상하다, 의도하다, 욕망하다’라는 의미였고 전인도 유럽어로는 ‘느끼다, 고마워하다’라는 뜻이었다. 다 얼추 어슷비슷하게 들리지 않는가.   ‘mind, 마음’은 고대 영어로 ‘기억, 목적, 의식, 지능, 지성’이라는 의미였다. 14세기에 ‘out of one’s mind, 미치다, 실성(失性)하다’라는 관용어가 생겨났다. 생각이 마음을 벗어나면 실성하는 법. 마음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서 튼튼하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보다 마음에 매달리는지도 모른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고?   필립은 환청증세를 다스리는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환청을 내부적 상황이 아닌 외부상황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약해진다. 꿈을 꾸면서, 꿈이라는 환상을 현실로 받아드리는 생각에 반응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당신과 나의 내적자극은 대충 ’인사이드 잡‘인 것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인사이드 inside stimulus thought 생각 internal stimulus

2023.07.1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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