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 눈찢기에 대응하는 법
영주권자인 남편은 지금 미국과 한국을 오간다. 영주권자는 6개월 이상 해외에 나가 있을 경우 재입국에 리스크가 크다. 하지만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허가를 받아 최장 2년간 해외에 머물 수가 있다. 최근에 남편이 재입국 허가서를 발급받기 위해 생체 정보 확인차 이민국에 가서 얼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이민국 직원이 남편의 눈이 작아 동공이 안 보인다며 눈을 크게 뜨라고 했단다. 남편은 크게 떴는데도 몇 번이나 크게 뜨라고 해서 민망했다고 한다. 남편의 눈 크기는 보통 한국 사람과 비슷하다. 나이가 먹으니 눈이 처져서, 그 직원의 눈에는 눈을 뜨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가 악의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웃고 말았다. 서양 사람들에게 동양인의 얼굴은 어떻게 보일까. 동양인이 처음 서양인 얼굴을 보면 차이를 못 느낀다. 마찬가지로 서양 사람들은 동양인의 얼굴을 모두 비슷하게 보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일본 인인지 구별을 못 하고 심지어는 갑과 을을 구별하지 못하기도 한단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 눈에 동양 사람들 눈은 찢어진 것처럼 보이나 보다. 서구 사회에서는 동양인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표현으로 눈을 찢는 제스처를 한다. 손흥민 선수가 토트넘 시절 인종차별 논란을 겪었다. 관중석의 한 팬이 손흥민을 향해 자신의 눈을 양 옆으로 찢는 제스처를 취했다. 중계화면에 이 모습이 포착돼 영국 소셜미디어에 퍼졌다. 이 관객은 인종차별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3년간 경기장 출입 금지 처분을 받았다. 다음해, 손흥민이 토트넘의 주장으로 있을 때도 인종차별 논란이 있었다. 그가 방송에 출연했을 때였다. 진행자가 ‘손흥민의 유니폼을 구해달라’는 요청을 누구로부터 받았다고 하자 팀동료이자 절친인 벤탄쿠르가 “손흥민 사촌 유니폼을 가져다 줘도 모를 것이다. 손흥민이나 그의 사촌이나 똑같이 생겼다”고 말했다. 동양인은 모두 똑같이 생겼다는, 개성도 매력도 없다는, 인종차별적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발언이었다. 벤탄쿠르는 아차 했는지 즉각 사과했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쏘니, 일어난 모든 일에 미안하다. 그건 나쁜 농담이었다. 절대 널 무시하거나 다치게 하려 한 게 아니라는 걸 알지 않나”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벤탄쿠르에게 7경기 출전 정지에 벌금 10만 파운드의 중징계를 내렸다. 얼마 전 아침에 뉴스를 보다가 멈춰 서게 한 사진 한 장이 있었다. 핀란드 미인대회 우승자 사라 자프체가 '중국인과 식사 중'이라는 설명과 함께 SNS에 올린 '눈찢기' 사진 때문이었다. 논란이 일자 현지 정치인들이 그녀를 옹호했다. “내가 자프체다”라며 눈찢기 챌린지를 하는 사진을 올려 논란을 더 키웠다. 자프체는 이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녁 식사 중 두통과 눈의 압박감 때문에 무심코 한 행동이었다”며 변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자프체는 인종차별 논란 끝에 왕관을 박탈당했다. 자프체는 사과문을 통해 “이번 일로 상처받은 모든 분께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뉴스는 짧았지만, 그 사진은 오래 내 마음에 남았다. 아무렇지 않게 올린 웃고 있는 자프체의 사진은, 장난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정치인들도 무심코 따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웃음이 아니라 큰 상처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서양사회에서는 인종차별을 개인의 실수로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인종차별이 나쁘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배우며 자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안 인종자별은 여전히 사소한 장난처럼 넘겨버린다. 이솝우화에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무심히 장난삼아 던지는 말이 당사자에게는 뼈저린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돌이 아닌 말과 글로 누군가를 단죄하고 심한 경우 죽음에 이르게 한다. 악성 댓글로 극단적 선택을 한 배우 최진실이 한 예이다. 항상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야겠다. 아시안 인종차별은 전부터 있어 오긴 했지만, 2020년대 초반 '우한'이 코로나 발생지로 알려지자, 중국에 대한 혐오로 더욱 심해졌다. 그 혐오가 중국을 넘어 차츰 아시안 전반에 퍼졌다. 미국에 사는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아는 듯 모르는 듯 미묘한 차별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대놓고 미워하지는 않지만 상대를 하나의 개인이 아니라 아시안이라는 틀 속에 넣어 버린다. 어떤 차별은 칭찬의 옷을 입고 다가온다. 예를 들면 “아시안들은 다 공부를 잘하잖아”라는 말 속에는 개인의 노력은 배제한 채, 은근한 비꼼과 거리 두기가 담겨 있다. 인종차별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콤플렉스로 확대해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프체와 벤탄쿠르, 두 사람의 경우를 보고 독자들은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그 두 사람이 저지른 단순한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런 정도는 그냥 흘려버리는 관용이랄까, 너그러움이랄까 그런 마음 가짐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해프닝이 생길 때 인종차별 운운하면서 발끈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차별 공격 의도에 우리가 넘어가는 것은 아닐까. 두순자 사건에서 보듯 흑인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이 엄청난 비극을 낳았다는 기억을 갖고 있다. 로드니 킹 사건에서 한인 커뮤니티가 크게 피해를 입은 것도 그런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리의 인종차별도 백인들에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인사회에서 라티노에 대한 하대도 마찬가지다. 그들에 대한 반말은 일상적인 말투가 됐다. 하다못해 같은 동양인이면서 동남아인에 대한 멸시는 또 어떤가. 이런 인종차별 의식을 극복함으로써 우리에 대한 인종차별적 대우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제 누가 우리를 향해서 눈찢기 제스처를 하면, 우리도 당당히 눈찢기로 응대하는 여유를 갖자.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대응 수필 인종차별 논란 인종차별적 표현 인종차별적 인식
2026.01.15. 1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