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당] 광복 80년, 아버지의 기적
요즘은 세월이 더 빨리 달리고 있는 것 같다. 어느덧 8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됐다. 매년 8월 15일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그날의 기억 속으로 돌아간다. 눈 감으면 아련해지는 아버지의 얼굴, 그리고 그날의 기적. 80여 년 전의 그 시간을 홀로 걷노라면, 그리움에 목이 메고 소리없이 눈물이 흘렀다. 얼마 전,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이전에는 본 적 없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깨어나 보니 꿈이었지만, 그 꿈을 이어가고 싶어 한참을 눈 감고 누워 있었다. 그리고 문득 달력을 보았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날은 바로 아버지의 58주기 기일이었다. 꿈이 현실에 닿아있다는 사실에 신비로움을 느꼈다. 일제강점기, 우리는 신사참배를 강요당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신사참배가 우상숭배임을 철저히 가르쳤다. 학교에 끌려가 억지로 참배해야 했던 순간에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그 힘겨웠던 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한글을 익히게 했다. 덕분에 나는 해방 후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학생이 될 수 있었다. 일제의 박해는 점점 더 심해졌고, 아버지는 감옥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결국 사형 집행일이 8월 18일로 정해졌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사형 집행을 불과 3일 앞둔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왔다. 모진 고문으로 앙상하게 마른 몸이었지만, 해방의 기쁨에 행복해하시던 그 모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 만약 그날이 3일만 늦었더라면.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를 ‘살아계신 순교자’라고 부르며 마음속 깊이 존경을 표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신앙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역사의 엄중함과 자유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날의 기적과 아버지의 삶은, 80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 영원한 빛으로 남아 있었다. 이영순·샌타클라리타독자 마당 아버지 광복 사형 집행일 일제강점기 우리 우리 형제들
2025.09.02.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