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삼사 년 전인가 보다. 어떤 총장이 65세에 은퇴했다. 그리고 이럭저럭 살다 보니 어느새 95세가 되었다. 은퇴 전에 총장은 인생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연구하고 일했다. 그래서 총장까지 되었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서, 아무 일도 뚜렷하게 해놓은 게 없이 95세가 되어버렸다. 지난 30년을 허송했다고 그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러면서, 우리더러는 은퇴하거든 즉시 무언가 목적을 세우라고 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번에, 10명 이상의 시니어 노인들이 시를 공부하겠다고, ‘뉴욕 중앙 시문학’에 참여했다. 장한 일이다. 여생을 허송하지 않고, 그 대신, 무언가 해보겠다는 의욕이 좋다. 대부분의 시인은 어렸을 때부터 즐겨 시를 읽었고 어려서부터 시를 써오고 있다. 하지만 늙은 나이에 시 공부를 시작해도 절대 늦지 않다. 우리가 시를 쓰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시로 표현하고 싶어서, 그리고 깊이 쌓인 원한과 분노를 시로 노출해 승화시키자는 것이다. 시를 써서 유명해지고 싶겠지만, 유명해지려고 일부러 애를 쓰면 좋은 시는 써지지 않을 것이다. 그냥 쓰고 싶어서, 좋아서, 시를 쓰다 보면 좋은 시가 저절로 써지는 것이다. 하지만, 늙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해서 유명해지지 않으란 법은 또한 없다. 일본의 ‘100세 시인’으로 유명한 시바타 도요(1911~2012)는, 아들의 권유로, 92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아들은 문학인이었다. 아들은 매주 토요일에 어머니를 방문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써놓은 시를 놓고, 둘이서 토론을 해가면서 시를 수정했다. 그녀가 죽으면 장례비용으로 쓸 그 돈으로, 98세에 첫 시집을 발간했다. 그게 일본에서 100만 권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라고 그녀는 힘차게 말했다. 나도 80세에 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85세에 첫 시집을 발간했다. 그래, “인생이란 지금부터야”라는 말은, 아무리 늙었어도, 지금이라도 시를 쓰겠다고 마음을 즐겁게 먹고 시를 쓰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좋은 결실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시 공부를 시작할 때, ‘왜 내가 시 공부를 해야 하나?’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목표가 뚜렷하면, 시를 쓰다가 괴로울 때 중단하지 않는다. 계속 시를 쓸 가능성이 크다. 시작부터 자기 마음에 드는 시를 쓴다는 게 쉽지는 않다. 자기 마음에 드는 시가 안 써질 때는 고민이고 고통이다. 어떻게 처음부터 좋은 시가 써지겠는가. 시간이 걸린다. 나부터도, 시가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그만둬버릴까’하고 여러 번 고민했다. 그러다가 며칠 지나면 내 생각이 달라진다. ‘이전에 내가 시를 썼지 않았나, 전에 내 마음에 드는 시를 썼으니까, 좀 기다리면 다시 쓸 수가 있겠지’하고 스스로 위안을 한다. 모든 창조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고통은 오래가지 않다. 하나의 시를 완성하고 나면 그만한 기쁨이 꼭 따라오게 마련이다. 조성내 / 전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열린광장 인생 인생 목표 자기 마음 원한과 분노
2025.10.22. 19:19
아마 삼사년 전인가 보다. 어떤 총장이 65세에 은퇴했다. 그리고 이럭저럭 살다 보니 어느새 95세가 되었다. 은퇴 전에 총장은, 무엇을 해야겠다 하고 인생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연구하고 일했다. 그래서 총장까지 되었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서, 아무 일도 뚜렷하게 해놓은 게 없이 그냥 95세가 되어버렸다. 지난 30년을 허송했다고 그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러면서, 우리더러는 은퇴하거든 즉시 무언가 목적을 세우라고 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번에, 10명 이상의 시니어 노인들이 시를 공부하겠다고, ‘뉴욕 중앙 시문학’에 참여했다. 장한 일이다. 여생을 허송하지 않고, 그 대신, 무언가 해보겠다는 의욕이 좋다. 대부분의 시인은 어렸을 때부터 즐겨 시를 읽었고 어려서부터 시를 써오고 있다. 하지만 늙은 나이에 시 공부를 시작해도 절대 늦지 않다. 우리가 시를 쓰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시로 표현하고 싶어서, 그리고 깊이 쌓인 원한과 분노를 시로 노출해 승화시키자는 것이다. 시를 써서 유명해지고 싶겠지만, 유명해지려고 일부러 애를 쓰면 좋은 시는 써지지 않을 것이다. 그냥 쓰고 싶어서, 좋아서, 시를 쓰다 보면 좋은 시가 저절로 써지는 것이다. 하지만, 늙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해서 유명해지지 않으란 법은 또한 없다. 일본의 시바타 도요(1911~2012)는, 아들의 권유로, 92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아들은 문학인이었다. 아들은 매주 토요일에 어머니를 방문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써놓은 시를 놓고, 둘이서 토론을 해가면서 시를 수정했다. 그녀가 죽으면 장례비용으로 쓸 그 돈으로, 98세에 첫 시집을 발간했다. 그게 일본에서 100만 권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라고 그녀는 힘차게 말했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라는 그녀의 말이 내 마음에 든다. 나도 80세에 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85세에 첫 시집을 발간했다. 그래, “인생이란 지금부터야”라는 말은, 아무리 늙었어도, 지금이라도 시를 쓰겠다고 마음을 즐겁게 먹고 시를 쓰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좋은 결실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시 공부를 시작할 때, 왜 내가 시 공부를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목표가 뚜렷하면, 시를 쓰다가 괴로울 때 중단하지 않는다. 계속 시를 쓸 가능성이 높다. 시작부터 자기 마음에 드는 시를 쓴다는 게 쉽지는 않다. 자기 마음에 드는 시가 안 써질 때는 고민이고 고통이다. 어떻게 처음부터 좋은 시가 써지겠는가. 시간이 걸린다. 나부터도, 시가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그만둬버릴까 하고 여러 번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다가 며칠 지나면 내 생각이 달라진다. 이전에 내가 시를 썼지 않았나, 전에 내 마음에 드는 시를 썼으니까, 좀 기다리면 다시 쓸 수가 있겠지 하고 스스로 위안을 한다. 모든 창조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고통 없이 어떻게 시를 창조해낼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고통은 오래가지 않는다. 하나의 시를 완성하고 나면 그만한 기쁨이 꼭 따라오기 마련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공부 인생 목표 자기 마음 원한과 분노
2025.10.08. 22:17
다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위안부로 일하게 된 어느 한국인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10대 후반에 위안부에 징집되어 몇 년간 성적 착취를 당했으며,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귀국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80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검은색 교복을 입은 10대 고등학생을 보게 되면 공포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검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과거 당신을 성폭행한 일본군을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저녁에 잠들기 전에 혹은 밤중에 깨어날 때, 아파트의 문에 잘 잠겨있나 몇 번이나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고 합니다. 60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왜 이것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 현실 생활에 큰 지장을 주는 것일까요? 나쁜 일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경우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은 대개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경우, 기억이 오래도록 남는 것은 바로 그것이 내 ‘마음밭’에 심어져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과거 어떤 사건이 ‘내 마음’이라는 밭에 씨앗처럼 심어져, 주변의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 반복적으로 다시 발아하는 것입니다.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이유는, 우리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마음의 자유를 얻기 위함입니다. 마음밭 자체가 없으면, 어떤 씨앗도 자라날 수 없습니다. 중국의 혜가는 젊은 시절, 많은 지식을 갖춘 학자였습니다. 박학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는 고승인 달마대사를 찾아갔습니다. 동굴에서 움직이지 않고 좌정한 달마 대사를 혜가는 동굴 밖에서 며칠간 기다렸다고 합니다. 마침내 달마대사가 동굴에서 나오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대사께서 제 마음을 평정케 하여 주시옵소서.” 달마대사는 “네 불안한 마음을 내게 가지고 오너라.” 말했습니다. 불안한 자기 마음을 어떻게 대사께 보여줄 수가 없어서 혜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안한 마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대사께서는 “그러면 네 불안한 마음을 내가 이미 평정시켰느니라.” 이 말에 혜가는 첫 번째 깨달음을 얻습니다. 개가 돌에 맞으면 개는 돌을 쫓아가지만, 사자가 돌에 맞으면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쫓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가(禪家)에서 많이 알려진 이 달마대사와 혜가의 이야기는, 내 마음이 ‘왜’ 불안한가가 주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불안한가, 즉 내 마음의 실체를 알라는 법문입니다. ‘가지’를 묻는 말이 아니라, ‘뿌리’ 질문을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희로애락이 일어나는 바탕이 되는 소위 ‘마음’의 실체를 알게 되면 고통의 근원적 뿌리가 없어진다는 것이 불교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마음의 실체를 안다는 것은 무아(無我)를 깨닫는 것, 공(空)도리를 확실히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많은 생각과 감정, 염려, 욕망, 근심 등은 근본적으로 자아 관념에서 비롯합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듯, 내 생각의 중심은 나의 ‘자아 관념’입니다. 공기가 사라지면 바람이 근원적으로 일어날 수 없듯, 수많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 작용의 바탕이 되는 소위 ‘마음’을 깨달으면, 즉 마음이란 단지 인연에 따라 일어나고 없어지는 수많은 상념에 대한 ‘이름’일 뿐, 실제로 고정된 본체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공(空) 도리를 깨닫게 되면 고통의 뿌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의 첫 구절이 바로 이 불교의 핵심을 말합니다. “조견오온 개공도 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즉 “나의 몸과 마음이 인연작용이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공(空)의 진리를 깨달은 후 모든 고통을 건너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가 과학 기술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불교에서 말하는 참 마음의 진리를 알게 되면 우리가 근원적으로 고통을 벗어날 수 있기는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모든 수행자는 경전 공부, 하나님 묵상, 화두 연구 등을 통해서 이 우주와 나의 실체가 되는 하나님 혹은 나의 참 마음을 모습을 연구하고 또 연구해야 합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진리연구 자유 마음밭 자체 고승인 달마대사 자기 마음
2025.09.18. 19:06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상담하면서 신앙적 언어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으로 인해 신앙생활을 즐거움이 아니라 짐으로 느끼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심지어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병적인 신앙관이 신자들을 병들게 하고 있어서 지면을 빌려 도움을 드릴까 한다. 회개인가, 연극인가 회개란 무엇인가? 교회에서는 회개하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외치면서 회개하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겁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구약시대에 회개하는 사람들은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옷을 찢는 등의 외적 행위로 자기가 회개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었다. 지금도 자기 몸을 때리는 등의 행위를 진정한 회개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외적인 회개 행위는 종교적 연출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과도하게 하는 경우일수록 그 기간은 더 짧아진다. 이들은 그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자기만족을 하기 위해 일회적이고 외적인 행위에 집착하기에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연극성 성격장애자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삶의 진실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학적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바다의 쓰레기를 다 없앨 수 있을까 회개는 개과천선하듯이 자기 마음을 완전히 정화하는 것,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종교인들도 많다. 이런 종교인들은 자기는 마음이 맑은 사람인 양 연출을 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항아리 물처럼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구의 바다는 오염물질과 쓰레기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이 버려서 바다가 오염된 것인데 이런 현상은 마음도 비슷하다. 인간의 마음은 의식, 그리고 바다와 같은 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부의 정보들은 일단 의식에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의식에서 버려진 것들이 가는 곳이 바로 무의식이라는 바다이다. 기도나 명상을 할 때나 중요한 순간에 불쾌하거나 불순한 잡스러운 생각들이 불현듯이 떠오르는 것은 바로 무의식에 버려진 쓰레기 같은 생각들이 떠올라서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다 없애겠다고 하는 것은 바다의 쓰레기를 혼자서 다 없애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일종의 유아적 전능감에서 비롯된 망상이다. 신자들에게 깨끗한 마음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종교인은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강박증 환자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심리적으로 결벽증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들이 보여주는 외적인 모습에 홀리지 말고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하다. 회개는 자기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종교인들도 많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 왜 아무 생각이 없느냐, 왜 달라지지 않느냐며 야단치는 종교인들. 이들은 사람들이 자기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가학성애자들이다. 마음 강제로 바꾸려다 걸린 강박증 사람의 마음은 기도하면 변화하는가? 산에 올라가서 도를 닦으면 달라지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몸은 열심히 노력하면 변화가 생기지만 마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과천선했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사람들이 후에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또한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강제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바뀌지 않는 자신을 미워하다가 종교적 우울증에 걸리거나, 다른 사람들은 다 구원받아도 자기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울어대는 구원 불안증에 시달린다. 심지어 지옥불에 던져지는 종교적 망상에 빠지기도 하고, 사이비 교주처럼 자기가 신이 되었다고 하면서 추종자들을 속이는 종교사기꾼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변화하라고 강압적으로 말하는 종교인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신자들에게 회개를 강요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더 가난하게 살 것을 요구하면서 주님께 헌금을 더 바치라고 강요하며, 삶에 쫓기는 이들에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겁박하는 종교인들. 이렇게 회개를 강요하는 종교인들을 종교적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이들은 교회 밖의 삶을 알지도 못하면서 종교적 갑질을 일삼는데, 가장 바람직한 삶을 사는 척하면서 선민의식을 가진다. 이들은 신자들을 회개 강박증이란 신경증적 증세에 시달리게 한다. 회개란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부끄러운 마음을 갖는 것, 딱 그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부끄러움이 지나쳐서 수치심, 심한 죄책감을 가지게 되면 자기가 자기를 처벌하는 자학적 신앙에 빠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화폐에도 양화와 악화가 있듯이 종교인들도 좋은 멘토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잘 식별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한다면서 병적인 삶으로 빠질지 모르니 주의해야 한다. 홍성남 /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속풀이처방 회개 부끄러움 회개 행위 마음 강제 자기 마음
2024.06.16. 1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