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침에] 난 ‘내 곁에’ 있을게
화사가 2025년에 발표한 신곡 ‘Good Goodbye’의 가사는 통렬하다. “나를 그냥 짓밟고 가/ 괜찮아 돌아보지 마/ 내가 아파봤자 너만 하겠니/ 이젠 너를 헤아려 봐”로 시작하는 노래는 “내 편이 돼 줄 사람 하나 없어도/ Don’t worry, It’s okay/ 난 내 곁에 있을게/ I’ll be on my side instead of you”로 확장된다. ‘난 내 곁에 있을게’ 라는 문장이 심장을 찌른다. 한때 유행했던 자기구조(Self Rescue)의 문장, ‘괜찮아. 나에겐 내가 있잖아!’가 쌓아놓은 옹벽을 덮치며 자기 위로의 슬픔을 배가시킨다. 가슴에 총 맞은 표정으로 “구멍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 넘쳐”, 라고 울먹이는 백지영 노래 버전이 발전하여 자기구제(自己救濟)에 이른 후렴구 같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연인과 헤어지고 돌아온 날 밤, 명시 한편이 탄생한다.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다(Tonight I Can Write the Saddest Lines)’. 사랑은 너무 짧고, 잊는 것은 너무 길다고 한탄하는 이 시는 이별의 선언이 아니라, 이별을 받아들이기 위한 숨 고르기였다. 시작은 그에게 이별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별을 견디기 위한 방식이었다. 이별 후에야 비로소 깨닫는 감정이 있다. 연인과의 이별이 슬픈 이유는 이미 떠난 사람을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떠난 뒤에도 그 감정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사라진 사람보다 내 안에 남은 기억이 더 완고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울림은 함께 있을 때보다 떠난 뒤에 더 크다. 네루다는 그 울림을 기록했고, 그 울림은 여러 사람의 가슴속에서 되살아나 명시가 되었다. 오래전, 두 번 연속으로 보았던 영화가 ‘리틀 포레스트’다. 연인과의 이별을 결심한 주인공이 고향을 찾은 표면적인 동기는 배고픔이다. 하얗게 오르는 김 속에 식향까지 배어있는 듯한 요리 시리즈는 육신의 배고픔이 아니라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는 메타포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서울 사는 딸이 7년간의 사랑을 접고 제주도 고향집에 들어서면서 지친 영혼이 풀썩 주저앉듯 내지르는 첫 일성도 “엄마, 나, 밥, 나 배고파”다.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마음이 고픈 거다. 그대여, 외로움과 배고픔을 관장하는 뇌신경이 근접해 있기 때문이라고 따지지 말라. 스타일이 본질을 앞서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외롭다. 직간접적으로 하루에 3000 개의 광고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는 욕망의 절제로 속이 늘 불편하다. 내 친구와 이웃은 자기 외로움에 갇혀 내 외로움을 눈치채지 못한다. ‘내가 네 곁에 있어줄게’가 ‘난 내 곁에 있을게’로 변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세상이다.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미소로 다독여주어야 한다. “괜찮아. 나는 항상 네 편이야. 오늘 하루,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친구를 슬프게 한 너를 나는 여전히 사랑한단다.” 어떤 순간에도 나는 내 곁에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외로운 나를 배신하면 안 된다. 하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자기 외로움 백지영 노래 good goodbye
2025.12.02.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