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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남가주 자목련처럼

LA에 사는 큰딸이 아들을 낳았다. 손자도 보고 큰딸의 산후조리를 도와줄 겸 LA로 왔다.     우리가 사는 오렌지카운티는 물론 LA 역시 주위를 둘러보니 다양한 꽃들이 만발하고 있다. 장미나 제라늄은 말할 것도 없고 나무들도 꽃을 달고 있다. 하얀 꽃잎을 분분히 날리는 돌배나무나 요염하게 얼굴을 디밀고 있는 동백꽃들이 도처에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만발한 자목련에 눈길이 간다.     한국의 겨울은 길고 춥다. 입춘 절기에도 칼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목련은 2월까지도 사색하는 나무의 자세로 눈바람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러다 우수경칩이 지나 삼월 중반이 넘어서야 긴 동면에서 깨어난다.     목련은 부지런한 봄의 전령사다. 뼈가 시린 듯한 북풍 한파에 나무는 숨을 죽이고 주검처럼 자리를 유지한다. 입춘이 지나며 봄기운이 살며시 불어오면 잠에서 깨어난 꽃눈은 천천히 꽃망울을 맺는다. 그래서 목련은 봄을 인지하자마자 잎도 나오기 전에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을 피워낸다.     이곳 남가주에서는 동지섣달 내내 자목련 꽃봉오리가 화사하게 피어있다. 반원형의 커다란 자주색 화관이 곳곳에 만들어져 꽃말 그대로 고귀함이 넘쳐난다. 한국의 목련이 고귀함을 자랑하는 기간은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십여 일이 지나면 속절없이 떨어진다.   남가주의 자목련을 한국의 내 고향 선산에 심어보는 상상을 해보았다. 눈에 덮여있는 선산에 있다면 아직도 흑갈색 나무줄기로 꽃도 잎도 피우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을 것이다. 스산하게 부는 솔바람 소리에 놀라 함께 파르르 떨다가 소나무의 푸른 잎을 보고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남가주의 자목련은 출퇴근 시간을 정해놓고 일하는 사람들과 다르다. 시간이 되어야 일하는 것이 아니고, 여건이 닿으면 일을 하는 것이다. 원래는 삼월이 되어서야 꽃을 피우지만, 날씨가 따뜻하다면 동짓달이라도 꽃을 피우는 것이다. 피울 수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남가주의 자목련 나무는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나는 퇴직한 후에 이제 쉬어도 좋다고 스스로 게으름을 부리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시간에 밀려 뒷방으로 밀려나는 골동품이 된 듯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퇴직을 한 사람이라도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맞으면 새로운 일을 찾을 수도 있다. 꼭 급여를 받는 일이 아니라도 둘러보면 보람이 있는 일이 많이 있을 법하다. 내가 하고 싶어했던 목공처럼 소소한 취미생활에 빠져 보고도 싶다. 체육관에도 부지런히 나가 건강을 관리하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봉사활동에 참여하여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도 주고 싶다.     남가주의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일인가. 행복을 누리는 만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보람 있는 일을 하라는 듯이 자목련 꽃잎이 나에게 내려온다. 이효종 / 수필가이 아침에 남가주 자목련 남가주 자목련 자목련 나무 자목련 꽃잎

2026.02.09.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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