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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희망을 잃은 이들의 SOS 신호

최근 한인 사회에서 가장이 배우자와 자녀를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이 다시 불거졌다. 끔찍한 사건들을 접하며, 필자는 문득 모든 한인이 거주하는 지역의 상수도에 리튬을 풀고 싶은 극단적인 처방까지 생각하게 된다. 리튬이 함유된 물을 마신 지역 주민들의 자살률이 현저히 감소했다는 여러 연구 보고서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일부가 아닌 독립된 인격체인 자녀를 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한인 아버지들의 모습에서, 인간 대 인간의 존엄한 경계성을 존중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의 낡은 가치관을 본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자살은 전 세계 사망 원인 가운데 상위권을 차지한다. 특히 15~29세 연령층에서는 교통사고 다음으로 많은 사망 원인이 자살이다. 개별 사례를 들여다보면 자살로 이르는 길에는 공통된 병력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조현병, 알코올·약물 사용장애, 양극성장애, 불안장애, 섭식장애, 반사회적·경계성 인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과적 진단이 배경에 깔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린 시절 심각한 학대 경험이 있거나, 고령의 독신 노인·과도한 음주자·이민자·폭력 노출자 등은 위험도가 특히 높다.   주목할 점은 저개발 국가에서는 사회적 능력이 낮은 젊은이나 여성 노인이 자살 위험군인 반면, 선진국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 남성의 자살률이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온 힘을 다해 사회적 지위를 얻었지만 외로움과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더 이상 적응할 능력을 잃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 놓인 이들은 믿을 만한 친구나 종교인과 대화하며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언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인지 상태로 끌어올려 스스로를 이해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깨달아야 한다.     이때 음주는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알코올은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뇌의 전두엽 기능을 마비시킨다. ‘재판관’과 같은 역할을 하던 전두엽이 무력화되면, 인간은 감정뇌에 지배당하는 ‘포유동물’로 전락하고 만다.     대부분의 자살은 결국 개인 또는 가족 문제에서 비롯된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못할 것 같다는 절망감(Helplessness),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는 무력감(Hopelessness)을 느끼는 순간, 많은 이들이 병원을 찾아 불면증, 두통 등을 호소한다. 이때 환자를 잘 아는 의사나 상담사가 “최근 아침에 잠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만으로도 이들을 구해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제로 자살 시도자 대부분이 사망 몇 달 전 병원을 찾았던 기록이 있다.   누군가 “죽고 싶다”고 말할 때, 그 말을 막으려 하거나 심각성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죽고 싶을 만큼 아픈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필요하다. 아픈 마음을 듣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또, 가능하다면 빨리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도록 도와야 한다.   안타깝게도 극단적 선택을 막지 못했을 경우, 남은 가족, 친구, 치료사 등은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극단적 시도자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자살 유가족(suicide survivors)’을 위한 지원도 필수적이다. 애도 과정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고, 과도한 죄책감이나 수치심, 타인에 대한 비난을 완화하는 지원은 또 다른 비극을 막는 중요한 안전망이다. 한 명의 자살 사건 이면에는 27건의 자살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희망 신호 자살 위험군인 사회적 능력 극단적 선택

2025.10.0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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