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이하 케데헌)’의 매기 강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짧은 문장은 오늘날 한국문화(K-컬처)가 세계 문화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잘 보여준다. 케데헌은 미국에서 제작된 작품이지만 한국적 정체성이 깊숙이 배어 있다. 걸그룹 ‘헌트릭스’가 도깨비와 저승사자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한국 전통 신화와 현대 대중문화를 결합한 새로운 서사다. 공개 후 6주 만에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최다 시청 기록을 세우고 사운드트랙과 삽입곡이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한 성과는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콘텐트가 영어권에서 성장한 한인 2세 감독의 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컵라면, 김밥, 설렁탕을 먹고 목욕탕에 가는 장면처럼 한국인의 일상적 풍경은 세계 시청자에게 낯설지만 동시에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곧 미국 속에 뿌리내린 K컬처 DNA의 힘을 드러낸다. ▶‘이민자 거주지’에서 문화 허브로 LA 한인타운은 오랫동안 ‘이민자들의 생활 터전’이라는 이미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한류 콘텐트가 전 세계적 인기를 얻으면서 한인타운은 단순 거주지를 넘어 K컬처 확산의 실험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주말 오후 거리에는 한인 2세뿐만 아니라 비한인들이 모여들고 한국식 치킨과 카페, 디저트 가게는 방문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단순히 음식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K팝과 드라마에서 본 장면을 직접 체험하며 한국적 정체성을 생활 속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문화 허브의 대표적 사례는 케이콘 LA(KCON LA)다. 2012년 시작된 이 행사는 2025년 현재 음악 공연을 넘어 글로벌 문화 축제로 성장했다. ‘2025 KCON LA’에 12만5000명의 K팝 팬이 모였고 100여 개 기업과 수백 개 부스가 참여했다. 37팀의 아티스트가 공연과 체험 행사로 팬들과 소통했고 생중계를 통해 북미, 남미, 유럽 팬까지 연결하며 K팝으로 지역과 글로벌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만들었다. 특히 관람객의 40% 이상이 비한인이라는 점은 한인타운이 특정 커뮤니티를 넘어 다문화 교류의 장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한인 예술계의 확장 K컬처의 영향력은 대중문화에 그치지 않는다. 음악, 오페라, 시각 예술 등 주류 문화계에서도 한국적 예술 감각은 점점 더 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LA필하모닉 ‘서울 페스티벌’은 그 대표적인 문화 행사다. ‘서울 페스티벌’은 한국 동시대 작곡가와 연주자를 집중 조명한 첫 국가별 정규 시즌 시리즈로 주목받았다. 진은숙 작곡가가 예술감독을 맡아 배동진의 세계 초연과 김선욱의 협연, 노부스 콰르텟 실내악 공연 등이 이어졌다. 한국 음악은 더 이상 주변적 요소가 아니라 주류 무대 한가운데에서 다뤄졌다. LA 오페라 무대에서는 듀크 김, 김효나, 손형진 등 한인 성악가들이 활약하며 한국 오페라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고 도밍고 콜번 스타인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차세대 인재가 성장하고 있다. 미술계 역시 활발하다. LA아트쇼에서는 해마다 한인 작가들이 회화·조각·설치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30주년을 기념하는 아트쇼에 제이제이아트, 아트인동산, 아트월, 위드, 라포렛, 아트플러스, 월드, 투스톤스갤러리 등이 참여해 K아트의 진수를 선보였다. 특히 LA아트쇼는 산업 재료를 예술적 형태로 재탄생시키는 금속조각가 스틸 체(최영관)의 대형 철강 조각 ‘스팀 로봇’ 등을 집중 조명했다. 국제적 명성을 지닌 페로탕 갤러리 LA에서는 고 안영일 작가의 회고전을 열고 한국 전통 요소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며 주목을 받았다. 안작가는 2017년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LA한인타운 인근 아카데미영화박물관에서는 ‘디렉터스 인스퍼레이션: 봉준호’ 전시가 내년 1월 10일까지 진행 중이다.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은 오스카상을 받은 봉 감독의 창작 과정과 한국 영화 산업의 국제적 위상을 조명하며, 개인 소장품, 스토리보드, 콘셉트 아트, 촬영 소품 등을 통해 관람객에게 입체적 경험을 제공한다. ▶K컬쳐 위상 활용 방안 미주지역에서 K컬처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전략적 활용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K컬처 참여형 프로그램 확대, 교육과 인재 육성, 디지털 전략 강화, 브랜드화와 글로벌 협력, 연구 및 기록 활동 등이 핵심축이다. K푸드, K뷰티, K패션 투어 패키지, K공연 관람 등 K컬처 기반 상품을 개발해 LA 한인타운을 ‘문화 관광지’로 브랜딩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양한 K컬처 체험 부스를 연계한 축제, VR(가상현실) 및 AR(증강현실) 체험 등 참여형 프로그램은 관객과 문화 콘텐트 간 상호작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 특히 온라인 스트리밍과 SNS 플랫폼 활용은 해외 팬과 실시간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LA 한인타운을 K컬처의 글로벌 허브로 브랜딩하고 국제 문화기관과 협력해 장기적 브랜드화와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달 중순 LA 파우하우스(LA Pauhaus) 갤러리에서 열린 BTS RM 팬아트 전시회 ‘달의 빛과 그림자’는 대표적인 팬 참여형 콘텐트 행사였다. 아이돌그룹 BTS RM의 생일을 기념해 기획된 이번 전시는 아이돌의 화려한 모습뿐 아니라 스타덤으로 인한 내면의 불안과 우울까지 탐구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관람객은 설치 작품에 참여하며 팬과 스타, 팬과 팬 간 상호작용을 경험하도록 설계됐다. RM은 이를 ‘남준잉(Namjooning)’ 문화로 확장하며 글로벌 팬덤과 예술적 경험을 연결, K컬처의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였다. LA 한인타운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K컬처 세계화의 실험장이자 글로벌 문화 허브로 나아가고 있다. 전통과 현대, 지역성과 글로벌을 연결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한인 예술가들의 활약은 LA를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선도적 공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전략과 장기적 브랜드화를 통해 K컬처를 지역 사회 자산으로 전환하고, 한인사회 차세대 성장과 문화적 영향력 강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이은영 기자자양분 차세대 오늘날 한국문화 한국 문화 현대 대중문화
2025.09.21. 19:00
“사람들이 인공지능(AI) 시대를 겪으면서 느끼는 위기감 그 자체가 록 음악, 밴드 음악에는 자양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박할수록, 음악은 더 깊어집니다.” 데뷔 48년 차 뮤지션 김창완이 최근 K-팝에 이어 한국 록, 밴드 음악이 인기를 끄는 배경에 AI 시대의 불안감과 위기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창완은 6일 맨해튼 링컨센터에서 열릴 ‘K-뮤직 나이트’를 앞두고 뉴욕한국문화원에서 취재진과 만나 “AI 발전으로 많은 아티스트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데, 오히려 이럴 때 어떤 적응을 해 나가는지가 숙제”라며 “이런 면에서 밴드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겐 오히려 더 기회”라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 오르는 밴드 ‘터치드’(Touched) 보컬 윤민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합이나 시너지를 무대로 선보이는 것은 AI나 기계가 따라 할 수 없고, 요즘 시대 사람들이 더 목말라하는 부분”이라며 소위 말하는 ‘밴드 붐’이 온 것을 체감한다고 전했다. 김창완은 K-팝의 저변에는 세계를 재패한 영미권 음악이 있었고, 한국 음악이 그 반석 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며 커 나갔다고도 평가했다. 그는 “유행에만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자세, 그리고 철학적 기반을 갖춰나면 더 새로운 콘텐트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그 역시 항상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려 했다고도 회고했다. 김창완은 "오랜 시간 창작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 유목민으로서 늘 새로우려고 노력한 덕분"이라며 "가수로서 히트록이 있는 것은 영광이고 왕관인데, 낡은 옷을 벗어 버리면서 젊은 밴드들과 함께 활동하고 자극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K-팝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이미 발견했다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아직 모르기 때문에 여러 시도를 해봐야 하고 그게 우리에게 길을 열어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아티스트들은 최근 오징어게임 등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면서 ‘한국인의 정서’로도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도 말했다. 터치드의 존비 킴(베이스)은 “어떤 정서든 음악이라는 그릇에 잘 담아내면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창완은 “여러 예술이 이해와 설득을 목표로 하지만, 다른 문화와의 충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며 “기이함이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도 있고, 타민족과 충돌하는 경험도 필요하기 때문에 이번 뉴욕 공연이 더 의미있다”고 힘줘 말했다. 뉴욕한국문화원은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링컨센터, 한국콘텐츠진흥원 뉴욕센터와 공동으로 6일 저녁 맨해튼 링컨센터 댐로쉬파크에서 ‘K-뮤직 나이트’ 콘서트를 열었다. 김창완이 리더인 김창완밴드는 터치드, 먼데이필링 등 최근 록 음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국내 밴드들과 함께 이날 콘서트 무대에서 뉴요커들에게 한국 록 밴드 음악의 진수를 선사했다. 김은별 기자 [email protected]위기감 자양분 한국 음악 영미권 음악 음악 밴드 뉴욕한국문화원 밴드 밴드붐은온다 뉴욕 NEWYORK 문화원 김창완 김창완밴드
2025.08.06. 2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