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 대자연의 위엄
누구나 장엄한 대자연 앞에 서면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한계를 느낀다. 인간이 얼마나 작고 무력한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그래서 겸손해지고,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침묵 속에 숨겨진 위엄은 눈부신 햇살마저 그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하물며 인간이랴! 대자연 앞에선 나를 지키기 위해 높이 쌓아 올린 마음의 벽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오랜 상처들이 조용히 흘러나온다. 자연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큰 존재이며, 어떤 판단이나 충고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품어 주기 때문이다. 최근에 KBS2에서 방영된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배우 박원숙을 비롯해 홍진희, 윤다훈과 가수 혜은이가 한집에서 친 남매처럼 ‘같이살이’를 하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연예인들이다. 평균 나이 67세로 각자 아픈 상처를 지니고 혼자 사는 싱글들이다. 지난 6월, 그들 4남매는 스위스에서 일주일 간 해외여행을 했다. ‘가장 스위스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루체른에 도착한 그들은 아름다운 호수를 품은 역대급 뷰를 가진 숙소에 감탄했다. 유럽의 숲속 산장 같은 안락한 공간과 알프스산맥으로 둘러싸인 탁 트인 자연 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들은 호반의 도시 루체른의 다양한 명소를 돌아보며 유럽의 정취를 만끽했다. 스위스를 떠나기 전 날에는 ‘산의 여왕’이라 불리는 ‘리기산’을 향했다. 리기산은 초록빛 풍경으로 가득 찼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열차가 산을 오를수록 드넓은 초원과 형형색색 꽃밭, 탁 트인 풍광이 순차적으로 펼쳐지며 4남매의 눈과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리기산 정상에 도착한 일행은 알프스산맥과 푸른 호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장엄한 풍경 앞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먼저 혜은이가 입을 열었다. “여기 오니까 내가 개미보다도 작은 거 같아.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보잘 것 없게 느껴져.” “아직 풀지 못한 미움들이 남아있고, 한없이 커보였던 번뇌도 있지만, 발 아래 펼쳐진 경이로운 풍경 앞에 서니 그저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여. 이제는 그런 것들 다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어.” 박은숙이 뒤를 이었다. “그래, 건강하게 지내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너무 감사해. 따사로운 햇볕, 시원한 공기, 맑은 물, 아름다운 새소리까지, 모든 것에 감사해. 새삼스럽게 남은 시간을 잘 살고 싶어졌어.” 혜은이가 홍진희와 윤다훈을 보며 물었다. “너희도 이곳에서 많은 생각이 들지?” 홍진희는 한동안 조용히 생각에 잠겨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어떤 마음인 걸까. 그녀가 흘린 눈물의 의미는? 한참을 말없이 울고 있던 홍진희가 “그냥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서 우는 거예요. 그동안 저는 약한 내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 오랜 세월 날 포장하며 살았어요. 수십 년을 홀로 버텨오면서 내 주변이나 남에게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채, 그렇게 견디면서 살았던 거 같아요. 이 순간,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은 ‘나’를 발견하며 조금씩 벽을 허물고 있는 중에 감정이 격해졌어요. 겹겹으로 쌌던 포장이 스르르 풀리면서 너무 자유롭고 감사해서 우는 거예요.” 홍진희는 그동안 강해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인생을 돌아보며 계속 눈물을 흠쳤다. 지난날에 대한 회한이 눈물보를 터지게 한 것이다. 박원숙도 진희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 “발 아래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니 ‘나’라는 사람이 보였어. 눈앞에 닥친 현실에 발버둥쳤던 지난 날들, 고통스러웠던 과거들, 그 과정에서 단단해진 마음의 껍질, 그 껍질 안에 있는 ‘나’라는 사람이 보였어. 세상에 알려졌던 나의 아픔, 사고로 인한 외아들의 죽음이나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상처들을 충분히 위로받고 치료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속마음을 드러내며 치료받을 여유가 없었지. 그래서 트라우마로 남았어. 누가 힘들어 할 땐 그냥 옆에서 손만 잡아줘도 힘이 돼.” 박원숙이 이어서 말했다. “남들이 어쩌구 저쩌구 할 때, 거기에 가세해서 비판하면 안 돼.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을 비판하지 말아야 돼”라며 지난날의 아픔이 되살아난 듯 눈물을 흘렸다. 혜은이가 문득 생각난 듯, 7년 전 처음 이 프로그램에 합류했을 당시 불편했던 일을 털어 놓았다. 엄청난 빚더미에 시달리고, 이혼 등, 심적으로 너무 힘든 상황이었는데, 웃는 얼굴로 포즈 취할 상황이 아닌데, 박은숙이 자꾸 사진을 찍어줘서 싫었다고 고백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게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자연이었다. 박은숙은 뜻밖의 그 말을 듣고 몹시 충격을 받았다. 예쁜 순간을 남겨주고 싶어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이 오히려 힘들게 했다니!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어려웠던 혜은이의 과거를 알기에 헤은이를 부둥켜 안고 함께 울었다. 사남매는 대자연이 만든 절경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았다. 박원숙이 말했다. “우리가 스위스에 온 게 그냥 관광이 아니었어. 자신을 돌아보고, 뒤를 돌아보는 ‘내면여행’이야!” 사남매는 자연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이 열리는 경험을 했다. 시청자인 나까지도 같은 경험을 했다. 서로를 토닥이며 단단해진 4남매는 노란 들꽃이 만발한 리기산 언덕에서, 꽃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에겐 그토록 멀게만 느껴졌던 꽃길이었다. 윤다훈이 말했다. “우리가 각자 인생의 어둡고 긴 터널을 잘 통과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행복한 거예요.” 혜은이도 “말로만 꽃길을 걷자고 하다가 진짜 꽃길을 걷는 순간을 맞았군.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던 인생의 꽃길을 이제야 걷는다”고 했다. 리기산의 정기를 받은 그들이 앞으론 꽃길만 걷기 바란다. 사남매가 그동안 말 못했던 자신들의 아픈 상처를 터놓는 모습은 자연이 주는 위로와 감정의 해방이었다. 상처난 감정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진심의 순간이었다. 그들의 치유과정을 보며 큰 울림을 받았다. 대자연은 인간에게 경외심, 치유, 내면의 평화를 선사한다. 지극히 작은 존재임을 깨닫고 겸손함을 배우게 만든다. 대자연은 침묵 속에서 진심을 끌어내는 가장 진한 힐링 공간이다. 그동안 눌러왔던 감정이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사남매는 스위스 리기산에서 오래된 침묵을 깼다. 모든 것이 눈물로 흘려 내렸다. 대자연은 언제나 말이 없다. 묵묵히 우리 곁에서 우리를 품어준다. 그렇다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연을 파괴하면, 자연은 언젠가 등을 돌릴 것이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대자연 위엄 순간 대자연 홍진희 윤다훈 자연 경관
2025.09.18.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