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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과 만나다] 잡초와 약초 사이

“인생의 의미가 뭐에요?” “의미는 없어.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져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다를 게 없다. 너를 지켜주는 어떤 존재도 없으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일곱살 소녀가 친아버지로부터 이 대답을 들은 지 20년 뒤, “우리는 다만, 점 위의 점 위의 점…”이라는 유명 천문학자 닐 타이슨의 말을 들었을 때, 폐부에서 회오리치던 차가운 충격을 옮길 단어는 그녀에게 없었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그 소녀, 룰루 밀러는, 곱슬머리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잠시 행복했지만, 자신의 실수로 그를 잃고 또다시 절망에 빠진다. 그러다가, 어떤 일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19세기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오래된 책에서 발견하고는, 그는 ‘왜 절망하지 않는가’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과학전문 기자인 룰루 밀러가 옛 과학자의 삶을 조망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이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넌픽션 에세이다.       저자,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의 업적도 업적이지만, 그의 초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궁금했다. 별들의 이름을 외우고, 꽃과 식물 수집, 지도 만드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던 평범한 데이비드가 강과 호수를 누비며, 세계 어류의 5분의 1을 당대 인류에게 알리는 혁혁한 공을 세운 점에서도 놀랬지만, 그가 스탠퍼드 대학 초대 학장으로 일하던 1906년, 30년 동안 모아왔던 유리병 속 물고기 표본들이 강도 7.9의 대지진으로 박살 났을 때, 망연자실,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바닥에 널브러진 물고기에 바늘로 이름표를 꿰매 붙이면서 다시 표본들을 하나하나 분류하던 그에게서 불굴의 기개, 아름다움마저 느꼈다. ‘혼돈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질서를 세우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할 운명’이라는, 지진이 전하는 명백한 메시지에 대차게 도전하는 그가 과연 나와 같은 ‘사람’인 것인가.     그러나, 그 불굴의 기개는 전혀 예기치 못한 폭력성으로 변질하여 나타난다. 그가 물고기들을 잡을 때 보여준 잔인성에서. 그리고, 당시 미국을 강타했던 우생학(인류의 쇠퇴를 예방할 유일한 방법은 ‘백치들을 몰살하는 것’이라는 학문)을 맹종했던 점에서. 그리고, 자신을 해고하려던 스탠퍼드 대학 설립자의 부인인 제인의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드러난 점에서까지. 저자는, 데이비드의 초긍정적 삶의 태도가 강박적 자기기만에서 나온 ‘독’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더군다나, 데이비드가 오매불망 몸 받쳐 분류했던 ‘어류’는 사실상 우리 인류가 붙여놓은 이름일 뿐, 본래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여러 검증으로부터 확인하게 된다.     구원인 줄 알았는데 폐악으로 드러나는 일은 도처에 비일비재하겠다. 그러나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혹은 약이 되기도 할 것이다.     두껍지도 않은 분량인데, 전에 만나본 적 없는 글 구성으로 방대한 양의 생각 거리를 주는 점에 말할 수 없이 매료되었으나, 특별히 두 가지 점에서 40대의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첫째, 데이비드가 범했던 우생학적 처벌로, 강제 불임수술을 받았으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어느 두 사람을 저자가 찾아내면서, 그냥 잡초인 듯 보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약초가 될 수 있다는 민들레 법칙을 긍정하게 되는 점. 둘째는,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경계선도, 사다리도 없다는 다윈의 말을 인용하면서 결국,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아버지의 철학이 ‘누구든 각자는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사실로 인생의 의미를 다시 세운다는 점이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는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저자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은 글이다. 박영숙 / 시인이 작품과 만나다 잡초 약초 과학자 데이비드 물고기 표본들 약초 사이

2025.03.25. 21:50

[이 아침에] 잡초

온 세상이 초록빛이다. 기다리던 봄비가 마음껏 와준 덕분이다. 우리 집 나무들이 싱그럽게 연한 잎을 뿜어내고 물기 머문 꽃들이 꽃망울을 품는다. 작년 겨울에 선물 받아 심은 개나리가 더욱 선명한 노란 빛을 드리운다. 추운 겨울을 견뎌 지나온 탓이리라.   은퇴 후 우리 집 한 모퉁이에 만들어진 텃밭은 우리 부부의 일터다. 텃밭을 돌보는 건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우리에게 수고 이상의 기쁨을 주는 곳이다. 생명의 성장을 눈으로 확인하며 결실의 희열을 몸 전체로 맛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도 초록빛으로 자라 젊어지는 듯하다.   거름을 주어 옥토를 조성했다. 잎의 성장에 좋은 것, 꽃을 피우게 하는 것,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 등 용도에 맞는 여러 가지 거름을 뿌렸다. 누렇던 떡잎이 짙푸르게 자라는 모습에 흐뭇해진다. 오이와 호박은 넝쿨을 내밀어 뻗어나려 한다. 고추는 흰 꽃, 가지는 보랏빛, 토마토는 노란 꽃을 맺는다. 그런데 불청객이 힘을 얻어 왕성하게 곁에서 같이 자란다.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바로 잡초다.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니?   하는 수 없이 군데군데 모종을 심고 가까이에 있는 잡초만 뽑아 주었다. 잡초를 하루 뽑고 나면 사흘 동안 팔다리가 아파 절절매는 형편이다. 아∽ 며칠이 지나면 여전히 잡초로 뒤덮이고 만다. 미처 뽑지 못한 잡초가 때를 만난 듯 마구 자란다. 노란 꽃까지 피워내 야생화 동산으로 변하는 걸 막을 수 없다. 텃밭이 유난히 넓어 보이는 건 무슨 이유일까.     생존하려는 질긴 근성을 막을 수 없어, 그냥 너도 같이 자라라고 어쩔 수 없는 아량을 베풀어야 할까? 지인의 조언대로 필요하지 않은 풀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검정 비닐로 덮어야 하나? 아니면 제초제를 뿌려야 할지? 우후죽순 올라오는 잡초만큼이나 나의 머릿속도 헝클어진다. 어지러운 혼돈 속에서 호미는 해결사로 한몫한다. 잡초는 날카로운 호미 날에 뽑히고 말 처지다.   소중히 여겼던 노란 민들레가 지천으로 흔하다. 초록 잔디밭 가운데 노란 꽃들이 수를 놓는다. 영토를 넓혀갈수록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필요와 수요에 의해 가치가 정해지는 건가? 어떤 게 들꽃이고 잡초인가? 기준이 모호해진다.   잡초는 이름 없이 향기도 없이 사랑받지 못한다. 생존했다는 것만으로 의미를 주지 못한다. 우리의 삶 역시 같은 비유가 되지 않을는지. 윤택하지 못한 환경에서 억세게 살아가는 사람이 뽑히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어려움을 극복해 사회의 일원으로 자기 몫을 다한다면 언젠가 꽃을 피울 것이다. 분명 소중한 가치를 지닐 테니까.     옥토가 아닌 곳에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성실한 생명체가 있다. 심고 거두는 자에게 기쁨을 나누게 해 준다. 이것이 잡초와 구분되는 경계라 생각한다. 목적에 맞게 이루어 가는 삶이리라. 이희숙 / 수필가이 아침에 잡초 보랏빛 토마토 초록 잔디밭 야생화 동산

2024.06.0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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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잡초 예찬

고생과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사람들은 흔히들 자신은 “잡초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말한다. 잡초가 얼마나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으면 이런 말이 나왔을까. 잡초는 인간이 재배하지도 않고 저절로 자라나는 잡다한 풀로 때와 장소에 적합하지 않은 식물로 취급되어 왔다.     한적한 시골 논밭을 걸어가노라면 초록 색으로  뒤덮인 풀 중에 잡초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지도 못하고 생활에 유용하지도 않은 풀로 천대를 받고 살아가고 있으니 잡초가 인간이라면  셋방살이의 서러움을  면치 못하며 살아가는 신세일 것 같다.     “건강은 제일의 재산이다”라고 말한 미국의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잡초는 그 가치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식물이라고 말하였다   일주일 동안 무덥던 더위가 가셨는지 제법 초가을 기분이 든다. 하늘을 쳐다보니 우중충하고 한판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이곳 라스베이거스는 너무 가뭄이 심하다 보니 질서 정연하게 우뚝우뚝 서 있는 가로수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비가 오기만을 고대하며 기도하는 모습들이다.     한국에서는 엄청난 비가 내려 야단법석이고, 히남도 태풍까지 휩쓸고 지나가 남해 일대는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났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곳은 빗방울이 떨어지기만 학수고대하고 있다. 참으로 세상은 공평하지도 못하다. 수십년간 콘도에서 살다 보니 빗자루로 마당을 쓸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오늘은 모처럼 딸네 집을 방문해 뒷마당을 깨끗이 쓸었다. 내가 사는 콘도는 아침마다 청소 담당자는 공기 청소기로  먼지를 날려 보낸다. 빗자루는 쓰레기를 쓸어모아 버리니 참으로 겸손한 존재이다.   그 겸손한 빗자루로 싹싹 쓸어도 악착같이 붙어 있는 녀석이 있다. 바로 잡초다. 콘크리트 사이에서 안간힘을 쓰고 솟아난 잡초다. 잡초란 녀석은 쓸고 쓸어도 쓸리지 않고 넘어졌다 고개를 들고, 숙였다가 솟아나고 도저히 빗자루 가지고는 속수무책이다. 잡초의 정신은 칠전팔기의 끈질긴 속성을 가지고 있는 식물인 것 같다. 잡초의 끈기와 인내만큼은 대단하다.     아쉽게도 내가 건강하던 젊은 시절에는 잡초의 속성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를 누가 바라보겠는가, ‘한 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 텐데, 이것 저것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잡초’를 누가  바라 보겠는가. 가수 나훈아는 잡초의 속성을 일찍이 깨달은 것 같다.     세월이 흘러흘러  내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할 만큼 살다 보니 잡초의 속성이 보이는 것 같다. 인간이란 노년이 되면 온몸의 기관이 고장이 나게 마련이다. 모든 것이 필요 없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건강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고 호소할 때 잡초의 특성인 강인한 생명력을 발견하게 되고 그의 끈질긴 위력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게 마련이다. 그때서야 잡초 같은 건강을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참으로 인간은 간사한 동물이다. 몸이 건강할 때 몸을 낮추고 잡초의 특성을 발견 못 한 아쉬움이 나를 에워싸고 괴롭히고 있다. 천한 것을 귀하게도 볼 줄 아는 아쉬움도 나를 깨워준다. 산과 들에 번식하는 쓸모없는 풀이  큰 교훈을 주고 있다.   틀림없이 잡초는 창조주로  하여금 특별한 역할을 하도록 창조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소·염소·산양 같은 동물을 키우는 중요한 역할이나, 그들의 배설물로 우리가 사는 토양이 더 기름진 땅으로 만들게 한다든가, 약재와 식용으로  사용되어 우리의 건강을 지켜 주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인간은 누구나 약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수치스럽다고 여겨지는 그 약점이 때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잡초, 너는 알고 있는가. 너의 약점이 기회가 되어 흔한 것이 귀하게 여겨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잡초 같은 인생이란 말이 사라질 것이다. 약점을 활용하면 성공의 촉매제가 된다는 것. 잡초 너도 빛을 볼 날이 있을 것이다.   백인호 / 수필가수필 잡초 예찬 잡초 예찬 공기 청소기 천덕꾸러기 대접

2022.09.22. 19:10

[이 아침에] 꽃처럼 우아하게, 잡초처럼 씩씩하게

우리 집 뒷마당은 잡초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푸르고 단정했던 잔디밭이 몇 해 사이 잡초 밭으로 변했다.   가뭄에도 잡초는 잘 자랐다. 며칠 물을 더디게 주면 잔디는 마르기 시작한다. 잡초는 아랑곳 않고 맹렬하게 세력을 확장했다. 잔디가 사라진 자리에 잡초가 푸르다. 셋방으로 들어와 주인을 밀어 내는 격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땡볕에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았다. 한참을 잡초와 씨름하고 나면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시큰거렸다. 잡초가 더 이상 뽑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자 잔디 깎는 기계로 밀었다.     키 큰 잡초는 서서히 사라졌다. 얼핏 보면 잔디처럼 보이는 게발잔디가 게 옆걸음질 치듯 뻗어 나갔다. 살아남기 위한 몸짓이 눈물겹다.   잡초도 꽃을 피웠다. 마당 한 켠을 차지한 괭이밥에 노란 꽃송이가 맺혔다. 토끼풀도 하얀 꽃을 총총 매달고 있다. 어디서 날아 왔는지도 모르는 씨가 뿌리를 내리고 붉은 꽃을 피웠다.     잡초라고 모두 보기 흉한 것은 아니다. 노란 괭이밥 꽃은 배시시 웃는 아기 웃음을 닮았다. 흐드러지게 피는 겨자꽃은 바람이 불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출렁인다.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피어나는 꽃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녀석들을 더 이상 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자르지 않고 두었더니 하늘하늘한 가지 끝에 연 보라색 꽃이 피었다.     노란 민들레도 지천으로 피었다. 약성을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약초가 될 터인데 그 가치를 모르니 우리 집에서는 잡초 취급을 받는다.     방송에 나오는 어떤 이는 산에서 나는 온갖 풀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나무뿌리를 말려서 약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잡초 사이에 숨어 있던 알뿌리 몇 개를 화분에 심어 베란다에 옮겨 놓았다. 잡초에서 화초로 신분이 바뀌었다. 잎이 나날이 푸르러지더니 튼실한 꽃대가 올라와 붉은 꽃을 피웠다. 어찌나 색이 요염한지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유혹하는 여인 같다.     수 년 전 담장을 따라 조그만 꽃밭을 만들었다. 담장에는 하얀 덩굴장미를 올렸다. 향기 좋은 재스민도 심었다. 무궁화와 칸나는 계절을 달리하여 피어났다. 화단 앞쪽에 백장미와 붉은 장미 두 그루를 심었다. 당당한 자태로 꼿꼿이 대를 세우고 꽃을 피우는 장미 아래로 잡초가 무성하다. 장미가 도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꽃은 다 예쁘다. 가꾸어 피어나는 꽃은 수고와 기다림이 있어서인지 더없이 사랑스럽다. 잔디밭을 차지한 잡초도 화사한 노란 괭이밥 꽃을 보면 용서가 된다.     5월이다. 가지에는 이파리가 너울거리고 잡초도 왕성하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뒤뜰에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지금 우리 마당은 잡초와 화초가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인종을 차별하고 서로 잘났다고 다투며 살아가는 인간을 비웃는 성싶다.     잡초는 꽃의 화려함을 질투하지 않는다. 꽃은 잡초의 강인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꽃처럼 우아하게, 잡초처럼 씩씩하게 살고 싶다. 박연실 / 수필가이 아침에 우아 잡초 잡초 취급 잡초 사이 사이 잡초

2022.05.11. 20:15

[이 아침에] 꽃처럼 우아하게, 잡초처럼 씩씩하게

우리 집 뒷마당은 잡초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푸르고 단정했던 잔디밭이 몇 해 사이 잡초 밭으로 변했다.   가뭄에도 잡초는 잘 자랐다. 며칠 물을 더디게 주면 잔디는 마르기 시작한다. 잡초는 아랑곳 않고 맹렬하게 세력을 확장했다. 잔디가 사라진 자리에 잡초가 푸르다. 셋방으로 들어와 주인을 밀어 내는 격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땡볕에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았다. 한참을 잡초와 씨름하고 나면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시큰거렸다. 잡초가 더 이상 뽑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자 잔디 깎는 기계로 밀었다.     키 큰 잡초는 서서히 사라졌다. 얼핏 보면 잔디처럼 보이는 게발잔디가 게 옆걸음질 치듯 뻗어 나갔다. 살아남기 위한 몸짓이 눈물겹다.   잡초도 꽃을 피웠다. 마당 한 켠을 차지한 괭이밥에 노란 꽃송이가 맺혔다. 토끼풀도 하얀 꽃을 총총 매달고 있다. 어디서 날아 왔는지도 모르는 씨가 뿌리를 내리고 붉은 꽃을 피웠다.     잡초라고 모두 보기 흉한 것은 아니다. 노란 괭이밥 꽃은 배시시 웃는 아기 웃음을 닮았다. 흐드러지게 피는 겨자꽃은 바람이 불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출렁인다.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피어나는 꽃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녀석들을 더 이상 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자르지 않고 두었더니 하늘하늘한 가지 끝에 연 보라색 꽃이 피었다.     노란 민들레도 지천으로 피었다. 약성을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약초가 될 터인데 그 가치를 모르니 우리 집에서는 잡초 취급을 받는다.     방송에 나오는 어떤 이는 산에서 나는 온갖 풀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나무뿌리를 말려서 약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잡초 사이에 숨어 있던 알뿌리 몇 개를 화분에 심어 베란다에 옮겨 놓았다. 잡초에서 화초로 신분이 바뀌었다. 잎이 나날이 푸르러지더니 튼실한 꽃대가 올라와 붉은 꽃을 피웠다. 어찌나 색이 요염한지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유혹하는 여인 같다.     수 년 전 담장을 따라 조그만 꽃밭을 만들었다. 담장에는 하얀 덩굴장미를 올렸다. 향기 좋은 재스민도 심었다. 무궁화와 칸나는 계절을 달리하여 피어났다. 화단 앞쪽에 백장미와 붉은 장미 두 그루를 심었다. 당당한 자태로 꼿꼿이 대를 세우고 꽃을 피우는 장미 아래로 잡초가 무성하다. 장미가 도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꽃은 다 예쁘다. 가꾸어 피어나는 꽃은 수고와 기다림이 있어서인지 더없이 사랑스럽다. 잔디밭을 차지한 잡초도 화사한 노란 괭이밥 꽃을 보면 용서가 된다.     5월이다. 가지에는 이파리가 너울거리고 잡초도 왕성하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뒤뜰에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지금 우리 마당은 잡초와 화초가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인종을 차별하고 서로 잘났다고 다투며 살아가는 인간을 비웃는 성싶다.     잡초는 꽃의 화려함을 질투하지 않는다. 꽃은 잡초의 강인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꽃처럼 우아하게, 잡초처럼 씩씩하게 살고 싶다.  박연실 / 수필가이 아침에 우아 잡초 잡초 취급 잡초 사이 사이 잡초

2022.05.0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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