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최신기사

[이아침에] 판단의 속도를 늦추는 책임

멕시코 칸쿤에 다녀왔다. 카리브해 연안에 있는 마야문명의 유적지 툴룸(Tulum)에서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진 오솔길을 걷다가 특이한 광경을 만났다. 일꾼들이 잡초를 제거하는데, 길고 날렵한 칼 같은 도구를 수평으로 눕혀 흙을 얇게 썰었다. 뿌리 잘린 풀 포기들이 땅 위로 흩어졌다.     잡초 제거의 기본은 발본색원, 뿌리제거 아닌가. 뜨거운 햇볕 아래 납작 엎드려 메마른 땅을 써는 모습이 비효율적이어서 답답했다. 호미를 사용하면 훨씬 수월할 텐데, 싶었다.   수천 년 역사를 지닌 마야문명의 유적지여서 작업 방식도 원시성을 고수하는 걸까? 아니면 이 고대 성읍 안에 있는 모든 존재를 자연의 일부분으로 귀속시켜 관광객에게 일관된 정서를 전달하려는 의도일까? 하지만 정밀한 과학으로 피라미드를 세운 마야인들 아닌가.     잠시 후에 진의를 알게 되었다. 툴룸이 위치한 유카탄 반도는 땅을 조금만 파도 단단한 석회암 지반이 드러난다고 한다. 호미나 곡괭이를 쓰면 도구의 날이 쉽게 손상되고, 사람의 손목과 허리도 다치기 쉬워서 베는 방식이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했다.   강풍을 동반한 스콜도 잦아 토양 유실이 빠르단다. 뿌리가 없는 땅은 침식이 더 심한데 땅속 깊이 잡초 뿌리가 남아 있는 곳은 뿌리가 토양을 붙잡아 주어 그 속도가 느리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들의 작업 방식은 무지가 아니라 의도된 토양 관리였다.     이 도구가 마체테다. 넓은 면적을 짧은 시간에 정리할 수 있고, 뱀이나 전갈 같은 독충을 만났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어 사람의 안전도 지켜준다고 했다. 바나나를 먹다가 냄새를 맡고 달려든 이구아나 두 마리에게 둘러싸여 혼비백산했던 기억이 떠올라, 즉각 이해되었다.     수년 전, 잉카 문명이 꽃피운 땅, 페루에서 만났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도 공원 일꾼들이 지표면 바로 아래에 마체테와 비슷한 도구를 눕혀서 풀을 베고 있었다. 그때는 무심히 지나쳤는데 이번에 그 이유를 더불어 알게 되었다.     안데스 고원이 가로지르는 페루의 토양도 흙이 얕고 돌이 많다. 곡괭이나 호미는 쉽게 망가질 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허리와 무릎을 먼저 해친다. 페루의 풀은 뿌리가 깊어 잘릴수록 밀도가 높아져서, 오히려 토양을 더 단단히 잡아준다니, 뿌리를 남기는 데는 깊은 뜻이 있었다. 툴룸처럼, 토양유지와 재생을 고려한 지혜였다.     마체테가 계속 생각났다. 유카탄 반도의 치첸이트사, 석회암 지반이 무너지며 드러난 깊은 지하수 캐노테, 스노클링을 즐겼던 이슬라 무헤레스 섬의 신비로운 바다 물빛까지, 일주일 동안 마야문명이 숨 쉬고 있는 칸쿤의 서정을 맘껏 누렸는데도 마음이 조용했다. 툴룸과 소급된 기억 속의 페루에서 만난 마체테가 주는 의미가 이 모든 아름다움을 덮고도 남을 만큼 인상적이었을까?     환경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하마터면 마야와 잉카 문명을 무지와 미개로 평가절하  할 뻔했다. 내게 익숙한 방식과 다른 장면 앞에서, 판단의 속도를 늦추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인지 오래 생각했다.     인생 공부는 끝이 없다.  하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속도 책임 발본색원 뿌리제거 잡초 뿌리 동안 마야문명

2026.02.03. 18:29

썸네일

[열린광장] 잡초같은 생각

손바닥만 한 우리 집 앞뒤 정원의 풀을 뽑고 비료를 뿌린 후 방울토마토, 고추, 상추, 가지, 호박, 파 등의 씨와 모종을 심었다. 심어 놓은 모종이 잘 자라 수확하면 우리가 먹기도 하고, 딸네,  교회 사람들과도 나누겠다는 생각에 혼자 흐뭇해하며 키우고 있다.  물을 주다 보니 아주 파랗고 작은 싹들이 여러 곳에서 땅을 헤집고 올라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땅에 떨어진 상추와 토마토 씨가 싹을 내며 자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갑다고 생각해 다른 채소와 같이 물을 주었다.     며칠이 지나, 다시 물을 주려고 살펴보는데, 엊그제 싹이 올라와 뾰족하게 잎을 키우던 파란 싹들이 벌써 다른 채소 모종들과 같은 크기로 너무 충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잎과 가지 모양이 채소와는 다른 것이 아닌가?     직감적으로 잡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세히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잡초들이 채소 옆에서 자라는 것이었다. 한 달 여 전에 두 시간 동안 잡초를 뽑고 흙을 고르고 비료를 함께 섞어가며 땅을 고르고 나서 채소 모종을 심었는데, 심지도 않은 잡초가 채소와 같이 자라는 것을 보니 좀 짜증이 났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는 내게 잡초와 채소, 그리고 유실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채소와 유실수 옆에 잡초가 자라는 것은 그 역할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잡초 뿌리가 채소와 유실수 뿌리 근처의 땅을 헤집고 크면서 공기 공급이 원활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시기까지는 잡초의 역활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에 예수님의 씨 뿌림과 가라지와 추수 때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잡초 같은 생각이 이곳저곳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하지만 늘 잡초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이를 모른 채 일상을 지내는 것이 내 삶의 단면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각자가 마음에 갖고 있는 생각은 알기 어렵다. 다만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알곡처럼 되고 싶고, 잘 자라서 열매를 맺고 싶어 한다.     예수님은 ‘밭은 세상이요,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날이요, 추수 꾼은 천사요, 천사-추수 꾼은 가라지를 거두어 풀무 불에 던질 것이요, 그때 의인들은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요’라고 비유하셨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3:43)   변성수 / 교도소사역 목사열린광장 생각 채소 모종들 잡초 뿌리 유실수 뿌리

2023.11.30. 21:14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