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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을 허물어라!] 소니가 닌텐도에 뒤진 이유는?

1970년대 소니는 삼성전자가 넘보지 못할 만큼 대단한 회사였다. 경영서적 '소니의 국제화 전략'이 삼성전자 간부급의 필독서였을 정도다. 소니는 휴대용 카세트 레코더인 워커맨(Walkerman)을 개발해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에서 베타막스 방식을 개발해 VHS 방식과 일전을 치렀다. 베타막스 방식은 기술적으로 우수하고 화질도 뛰어났지만 대중성 면에서 뒤져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고화질 TV를 개발하고 고음질 오디오 기기를 계속 내놓으면서 가장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로 인정받았다. 휴대용 게임기 사업에도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닌텐도보다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플레이 스테이션(Play Station)을 개발했다. 소니가 만든 32비트 게임기는 1995년 시카고 가전제품박람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32비트 마이크로 프로세서에 680메가바이트까지 저장할 수 있어 기존 게임기보다 훨씬 더 뛰어난 품질을 보였다. 닌텐도는 2D게임이었으나 소니는 입체감이 풍부한 3D게임의 막을 열었던 것이다. 3D 그래픽으로 공룡 티라노사우루스가 움직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플레이 스테이션은 전세계에서 1억 대가 넘게 팔려나갔고 단숨에 게임기 시장에서 1위가 됐다. 변화에 둔감했던 소니 하지만 소니의 영광은 여기까지였다. 1990년 중반 이후부터는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아날로그 시대의 성공에 도취돼 가전제품의 디지털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워커맨의 성공은 기술자들에게 아날로그 기술에 강한 애착을 느끼게 했고 경영자들에게는 오디오 기기에서는 소니가 세계 최고라는 자만심을 갖게 했다. 성공 경험을 가진 관리자들은 효율을 올리기 위해 기능을 세분화하고 조직을 전문화했다. 전문화된 기술자들은 자신이 맡은 부분에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더욱 깊은 기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소니의 기술자들은 기술적으로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세상의 변화에는 둔감해지는 테크노 근시안(近視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들은 1990년대부터 불어 닥친 디지털화를 간과한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디지털 오디오 기기인 MP3 플레이어를 들고 나왔을 때도 소니의 엔지니어들은 음질이 조잡한 장난감처럼 생각했다. 그래도 소니의 일부 엔지니어가 MP3 플레이어를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매니저들은 이를 무시했다. 기능의 벽과 계층의 벽에 갇혀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된 것이다. 비슷한 현상이 게임기에서도 나타났다. 플레이 스테이션이 성공을 거두자 소니는 자꾸만 성능을 향상시켜 플레이 스테이션2를 내놓았다. 성능이 좋아진 만큼 소프트웨어도 대작(大作)이 돌아갈 수 있었다. 강력한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거기에 맞게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이 따로따로 이뤄진 것이다. 고성능 하드웨어에 대작 소프트웨어가 돌아가는 만큼 가격은 자꾸 상승했다. 게임이 어려워지고 가격이 상승하니 시장의 규모는 점점 작아졌지만 소니는 시장과의 벽에 휩싸여 이를 느끼지 못했다. 소니가 보지 못한 게임기의 새로운 시장을 발견한 회사는 닌텐도(任天堂)다. 닌텐도는 소니가 게임기 사업에 진출하자 2위로 밀리고 다시 마이크로소프트(MS)마저 게임기 사업을 시작하자 3위로 처졌다. 게임기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다가 갑자기 3위로 추락하자 닌텐도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게임기 시장을 다시 보니 고성능 게임기를 좋아하는 게임 매니어 시장은 그리 크지 않고 아직까지 게임을 하지 않는 비(非)게이머 시장이 더 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닌텐도는 시장과의 벽이 낮은 회사로서 새로운 시장의 발견과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42세의 젊은 나이에 닌텐도의 CEO가 된 이와타(岩田)는 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새로운 컨셉트의 게임기 개발에 몰입한다. 닌텐도는 120년 된 회사로서 보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회사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개발자 중심으로 된 조직은 작고 단순하다. 아메바 조직 닌텐도 내부에 기능이 세분화돼 있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단위별로 기획자와 개발자가 같이 일을 한다. 개발자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한 팀에서 일한다. 프로젝트 리더와 팀원들이 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바로 개발에 착수해 시제품을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드는 일을 빠르게 한다. 하나의 제품을 만들 때 하드웨어 따로 소프트웨어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하는 하프트(Ha-ft: Hard + Soft)적 사고로 일한다. 부문 간에 벽이 없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리더와 개발자들 간에 계급이나 계층이 거의 없어 40~50대 개발자가 즐비하다. 소니의 게임기 참여로 닌텐도는 위기를 맞지만 완전히 발상을 바꿔 '닌텐도DS'라는 새로운 게임기를 개발한다. 이와타 사장이 취임한 지 2년 만의 일로서 이른 시간 내에 전혀 새로운 컨셉트의 게임기를 개발했다. 이는 닌텐도가 시장과의 벽이 낮고 부문 간 기능 간의 벽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닌텐도DS는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1억 대 이상 판매됐다. 닌텐도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2년 후에 새로운 컨셉트의 스포츠 게임기인 위(Wii)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닌텐도DS와 위의 성공으로 소니를 게임기 1위에서 밀어내고 다시 1위로 등극하게 된다. 소니가 닌텐도에 게임기 1위 자리를 다시 내주게 된 것은 기술력이나 인력이 뒤져서가 아니라 시장과의 벽 부문과 기능의 벽 상하 간의 벽이 높아서일 것이다. 김영한 창조경영아카데미 대표

2009.04.23. 20:55

[장벽을 허물어라!] '칸막이 없애니 회사에 웃음이 늘었죠'

서울 서초구 소재 OB맥주 본사 5층 임원실. 개인 방은 물론 칸막이도 없다. 볼품 없는 책상 10개가 줄지어 놓여 있을 뿐이다. 한눈에 봐도 확 트인 공간이다. 임원실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는 팻말이 있는 것도 아니다. 탕비실.복사실이라고 적혀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이곳이 나온다. 사장실은 따로 있을까? 아니다. 이호림(49) 사장은 8명의 임원과 함께 일한다. 박희용 HR 상무와 짝꿍이고 이영상 F&A 전무와 마주 보고 있다. 책상 모서리가 개인 공간을 구분하는 유일한 분기점이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이 사장이 취임했던 2007년 4월 이곳은 꽉 막힌 공간이었다. 그럴듯하게 꾸며진 사장실.임원실이 가득했다. 이 사장의 회상이다. 사장 개인 비서도 없어 OB맥주(당시 동양맥주)는 주류업계의 상징이자 간판이었다. 하지만 1991년 발생한 낙동강 페놀사건 이후 하향세를 탔다. 위기 탈출을 위해 OB맥주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사명을 교체(1995년.동양맥주→OB맥주)하는 한편 M&A(1999년.진로쿠어스 인수)도 추진했다. 하지만 부진의 늪은 더욱 질퍽해졌다. 70%를 웃돌았던 시장점유율은 2000년에 45%로 떨어지더니 2006년엔 40%까지 추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임명된 사람이 바로 이 사장이었던 것이다. 그로선 대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다. 취임한 지 2개월이 흐른 2007년 6월 초. 이 사장은 임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임원실을 털어봅시다. 함께 근무해보자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OB맥주 부활 프로젝트는 '벽 허물기'부터 시작하는 게 어떻습니까?"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OB맥주의 부진을 비밀경영과 소통부족으로 분석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에 있는 칸막이를 빼보세요. 그럼 숱한 먼지와 쓰레기가 보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벽을 허물면 조직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비밀주의.부서이기주의 등 나쁜 풍토가 금세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벽털기를 제안한 이유도 여기에 있죠." 대부분의 임원은 손사래를 쳤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무언의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임원도 있었다. 최수만 정책홍보 전무의 말이다. "대학교 도서관에도 칸막이가 있지 않습니까? 상상이 안 되는 말이었죠. 벽을 턴다고 OB맥주가 부활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혁신과정에서 가장 금기시해야 하는 것은 타협이다. 리더의 결단이 관행에 부닥쳐 꺾이는 순간 혁신은 끝난다. 이 사장은 '벽털기론'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사장실.임원실의 높은 벽을 허물고 책상을 붙였다. 사원들과 똑같은 의자를 공동 구매했다. 당장 비용 절감 효과가 나타났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열린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사장과 임원 임원 간 거리가 좁혀졌다. 이전까지 등을 돌리기 일쑤였던 일부 임원의 입에선 '독설'이 아닌 '유머'가 흘러나왔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임원실의 벽이 허물어지자 팀장급도 줄줄이 칸막이를 뺐다. 폐쇄적 공간으로 유명했던 OB맥주 31개 영업점도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 사장의 '벽털기 경영법'이 OB맥주의 조직분위기를 바꿔놓은 셈이다. 팀장도 줄줄이 칸막이 빼 비단 본사와 영업점 뿐 아니다. 이 사장의 '벽털기론'은 주류유통사 등 협력업체에도 적용됐다. OB맥주는 2007년부터 '주류유통개선프로그램'을 도입해 주류 제조사와 유통사의 '상생성장'을 꾀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직원 관리 도매상 경영 거래처 관리 등 경영 전반에 관한 업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 역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주류유통사는 "술 더 팔기 위한 수작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7년 이 프로그램을 도입한 주류유통사가 1340여곳 중 36곳에 불과했을 정도다. 이 사장의 회상을 들어보자. "그럴 만도 했죠. 사실 주류 제조사에 대한 유통사의 감정은 좋지 않습니다. 자신들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죠. 전통적 갑을관계 때문입니다. 꽉 닫혀 있는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죠. 이를테면 주류유통개선프로그램을 도입하면 매출이 오른다 매출이 올라도 맥주 값을 올리지 않겠다 주류유통사가 잘돼야 제조사도 성장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현재 OB맥주의 주류유통개선프로그램을 도입한 업체는 64개사다. 올해는 100여 개사까지 늘어날 것으로 이 사장은 기대하고 있다. 주류 제조사와 유통사 사이에 존재하는 '철의 장막'을 걷어내겠다는 포부다. "주류유통사는 경영상황을 판단하고 점검할 능력이 없습니다. 실적이 추락해도 왜 그런지 모르죠. 주류유통개선프로그램은 이들의 실적을 높여주는 데 일조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주류 제조사와 유통사를 가로막고 있는 높은 불신의 벽도 무너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호림식 벽털기 경영법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별도의 임원실없이 한 공간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스피드 경영에 능해졌다는 것이다. 장벽이 무너지면서 마음의 벽도 함께 허물어졌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임직원들은 똘똘 뭉쳤다. 이 사장에게 하루 50~60통에 가까운 전자우편이 전달될 정도로 쌍방향 경영도 가능해졌다. 사장-임원-직원으로 이어지는 심리적 장벽이 무너지면서 소통이 원활해진 것이다. 이 사장 취임 전 45%에 불과했던 직원만족도가 75%를 넘어선 것도 이런 이유다. 본사뿐 아니라 생산공장도 하나로 뭉치고 있다. OB맥주 청원공장과 이천공장은 최근 생산부문 VPO(Voyager Plant Optimize)에서 각각 905점 900점을 기록해 세계 TOP3에 등극했다. 시장점유율 역시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카스의 시장점유율은 2006년 27%에서 2008년 33%로 껑충 뛰어올랐고 이에 따라 OB맥주 전체 점유율도 2006년 40%에서 2008년 42%로 상승했다. 매각 진행돼도 "괜찮아" 이 사장은 "경영자의 의무는 직원의 새로운 가치창출을 유인해 수익으로 연결하는 것"이라며 "열린 경영이 OB맥주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좋은 실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직 콘크리트가 마른 것은 아니다"며 "더 큰 성장을 위해 한눈팔지 않고 전진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OB맥주의 매각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OB맥주의 최대주주 AB인베브가 매각 관련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외부에선 OB맥주를 누가 인수하느냐를 둘러싸고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정작 OB맥주 임직원들은 별다른 동요가 없다. 자기 일 하느라 바쁘다. 벽까지 털어 위기를 극복했는데 무엇이 두렵겠느냐는 자신감의 발로다. 소통이 되는데 무엇이 무섭겠느냐는 것이다. 이 사장의 벽털기 경영법이 OB맥주를 위기에도 끄떡하지 않는 조직으로 탈바꿈시켰을지 모른다. 이윤찬 [email protected]

2009.04.16. 18:48

벽 없애 성공한 '열린 기업들'···불황탈출 비법은 '장벽을 허물어라'

◇HP: 빌 휼렛 & 데이브 패커드 '전설의 방'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위치한 HP 본사엔 창업주 빌 휼렛과 데이브 패커드가 1940년대 사용했던 '전설의 집무실'이 보존돼 있다. 170여 개국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기업 HP 창업주의 방은 어떤 모습일까? 흥미롭게도 이들은 방이 없었다. 직원들과 같은 공간을 사용했다. 창업주와 직원의 공간을 구분하는 것은 낮은 칸막이가 전부다. 열린 공간 이를테면 오픈 도어(Open door) 시스템이다. HP의 이념을 보면 이들에게 왜 방이 없는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HP에 회사란 모든 직원의 목소리를 듣는 곳 직원들의 말이 즉각 반영되고 해결되는 곳 사내 소통이 직급.성별에 관계 없이 이뤄지는 곳이다. 휼렛과 패커드에게 꽉 막힌 사무실은 소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을지 모른다. 오픈 도어에서 비롯되는 원활한 소통이 HP의 조직문화였다. 2008년 매출 330억 달러로 반도체 분야 세계 1위 컴퓨터.인터넷의 역사를 다시 만드는 회사…. 글로벌 반도체 기업 인텔을 잘 보여주는 수식어다. 전세계 45개국에서 8만5000명이 근무하는 인텔의 사장실은 어떨까? 어마어마한 규모를 한껏 뽐내진 않을까? 아니다. 인텔 본사엔 사장실이 따로 없다. 모든 직원에게 열려 있는 개인공간 '큐브'에서 일한다. 세계적 불황기다. 숱한 변수가 넘쳐나고 경제환경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모든 것이 불가측하다. 사방에서 들리는 경고음을 귀담아들어야 할 때다. 세상과 소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소리다. 소통하기 위해선 벽을 깨야 한다. 유형의 벽을 허무는 것보다 무형의 벽을 부수는 게 더욱 중요하다. 기껏 열린 공간을 만들어 놓고 마음의 벽을 허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 아니겠는가? 다음은 유.무형의 벽을 모두 허물어뜨린 기업 사례다. ◇인텔: 큐브의 미학 실리콘밸리에 있는 넷엡은 스토리지 전문업체다. 2008년 매출은 33억 달러.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지난해 하반기 10%(전년비)가 넘는 성장을 기록했다. 이 회사 역시 오픈 도어 업체다. 임원은 물론 사장도 직원들과 한 공간에서 일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일일 업무성과가 우수한 직원에게 CEO가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하는 문화도 있다. 경영진과 직원 사이에 놓여 있는 유.무형 장벽을 CEO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ADT캡스: "회장은 지금 48시간 대기 중" 보안업체 ADT캡스는 사내 커뮤니케이션 채널인 '닥터 캡스'를 가지고 있다. 이는 회장과 직원의 핫라인. 직원들은 이를 창구로 이혁병 회장에게 건의사항을 보낸다. 독특한 것은 이 회장이 48시간 안에 답변을 해준다는 점. 여기에 예외는 없다. 좋은 건의내용이 있으면 게시판에 올려 전 직원과 공유하기도 한다. 최근 대학원 수업을 듣는 직원을 위해 근무시간을 조정했는데 이는 닥터 캡스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이 회사 송지현 팀장은 "닥터 캡스는 임원.직원 간의 장벽을 깨주는 시스템"이라며 "상급자는 이를 통해 하급자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듣고 직원들은 의사전달 기회를 부여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열린 경영은 우리에겐 낯설다. 외국 CEO에겐 반대로 이런 문화가 낯설다. DHL코리아 30년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CEO 앨런 캐슬스 전 사장은 부임 첫날(2006년) 화들짝 놀랐다. 임원들이 늘 자기 방문을 잠그고 나와 줄줄이 서 있는데 문득 '여기가 군대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큰 걱정도 엄습했다. DHL 업무 특성상 스피드 있는 사내 소통은 필수. 그런데 이런 폐쇄적 구조에서 빠른 소통이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캐슬스 전 사장의 부임 후 첫번째 지시는 그래서 사무실 문을 모두 열어놓으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방은 물론 24시간 개방했다. 한국 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상하를 나눠놓는 벽이라는 일침이다. 하지만 벽은 또 있다. 부서간 소통을 저해하는 장벽도 많다. 송병무 MK C&I 대표는 이를 "기능의 벽"이라며 "상하관계의 벽도 문제지만 부서이기주의를 초래하는 기능의 벽은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경고했다. 다소 낯선 개념인 '기능의 벽'은 뭘까? 송병무 대표는 파산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1980년대 로저 스미스 전 CEO는 북미 사업부를 B-O-C(뷰익-올즈모빌-캐딜락) C-P-C(시보레-폰티악-캐나다) 트럭.버스로 개편했다. 기능을 중요시한 것이었지만 조직 간 소통을 단절함으로써 차량의 품질에 문제가 발생하고 사업부별로 인력이 늘어났다. 이때부터 GE의 위기는 시작됐다는 시각도 많다." 이런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본사와 생산공장이 구분돼 있다. 수도권에 공장을 건설하지 못하는 규제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기업에는 '한 지붕 두 가족'이 많다. 스태프와 생산조직이 이질적 문화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 적지 않다는 것. 이는 불통을 넘어 내부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는 "경제전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P&G그룹처럼 상하는 물론 수평(부서) 소통이 원활한 효율적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종합생활용품업체 P&G그룹은 실제로 '수직.수평' 소통이 가능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와 비슷한 국내 기업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삼성전자: 마케팅.개발팀 "수원으로 집합" 2007년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의 마케팅.상품기획팀 개발팀은 각각 서울과 수원에서 근무했다. '고속도로에서 버리는 시간이 더 많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로 두 팀의 소통은 어려웠다. 동시공학(생산.판매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 트렌드에도 맞지 않았다. 최지성 사장은 취임 직후 2007년 마케팅.상품기획팀의 수원 이전을 결정했다. 이 팀의 절반 이상이 "절대 반대"라고 맞섰지만 CEO의 영(令)은 이미 떨어진 상태. 2년여가 흐른 지금 수원에 집결한 두 팀은 이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회의를 연다. 만나는 것도 의사를 전달하는 것도 쉽다. 신속하고 유기적 의사결정도 가능해졌다. 거리 때문에 높아진 기능의 벽을 허물어뜨린 결과다. ◇LG전자:한지붕 두가족 "묶어" LG전자엔 DD(디지털 디스플레이)사업본부와 DM(디지털 미디어)사업본부가 따로 있었다. DD본부는 LCD.PDP TV 완제품과 PDP 모듈을 생산 판매한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15조843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인원은 2865명(한국내 기준). 반면 DM사업본부는 오디오.비디오.광스토리지.텔레매틱스.보안장비 등을 생산.판매하는 조직. 지난해 전세계에서 4조3477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인원은 국내 기준 2246명에 이른다. 모두 LG전자의 핵심 부서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TV와 오디오.비디오.저장장치는 통합구매 성향이 짙었다. 하지만 2개 사업본부로 분리돼 있는 탓에 디자인.연구개발.마케팅 활동이 개별적으로 수행됐다. 이런 이유로 고객 대응은 물론 부서 간 소통의 길도 막혔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최근 결단을 내렸다. DD사업본부와 DM사업본부를 하나로 합쳐 HE(Home Entertainment)사업본부로 만든 것이다. 기능의 벽을 깨고 소통의 기회를 모색했다는 얘기다. LG전자 조중권 부장은 "디지털TV와 주변기기의 컨버전스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 두 사업본부를 합쳤다"며 "디지털TV와 홈시어터 등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를 묶어 공동 개발.공동 마케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회사란? '오픈 도어 시스템' HP 교훈 ▷상사와 직원 간의 솔직 담백한 열린 커뮤니케이션이 매일 이뤄지는 곳 ▷직원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요구에 조언과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멘토링 문화가 존재하는 곳 ▷상사가 직원의 고충을 공유할 수 있는 상호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책임을 다하는 곳 이윤찬.한정연 기자

2009.04.1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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