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이민 사료 1세기만에 빛 보다
빛 바랜 문서들이 세월 속에 묻혀 있던 역사를 드러냈다. 본지가 광복 80주년을 맞아 진행한 ‘독립유공자 묘소 찾기 프로젝트’를 통해 후손이 확인된 호시한(1885~1956) 지사의 다양한 유품들이 공개돼 관심을 모은다. 호 지사의 후손이 본지에 처음 공개한 이 유품들은 한인 독립운동사, 이민자의 삶, 그리고 시대의 굴곡을 증언하는 생생한 사료다. 공개된 유품에는 1940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복사본과 기부금 영수증, 194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발급 여권, 1922년 중국에서 받은 신분증과 개명 진술서, 1953년 미 이민서비스국 문서, 당시 미국 언론 기사 등이 포함돼 있다. 종이는 바랬지만, 그 속에 담긴 목소리는 여전히 선명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다. 호 지사는 편지와 함께 100달러(현재 가치 약 2000달러)를 미국 국방기금에 기부했다. 그는 편지에 “비록 시민권은 없지만 언제나 좋은 시민으로 살고자 했다”며 “이 나라를 지키는 일에 모든 한인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썼다. 또 “100달러는 크지 않지만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전부이며, 다른 이들도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시민권조차 없는 이민자가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미국 방위를 위해 돈을 기부한 사실은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신문에는 “호시한, 미국 국방 위해 100달러 기부(Si Han Ho Gives $100 for U.S. Defense)”, “호시한, 애국심으로 ‘가디니아 상’ 수상(Si Han Ho Wins Gardenia for Patriotism)”이라는 제목이 실렸다. 부제에는 “비록 시민권은 없어도 진정한 애국자(Real Patriot Even If Not Citizen)”라는 문구가 달렸다. 임시정부 발급 여권은 해방 직후에도 임시정부가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실질적 대표성을 이어갔음을 보여주는 사료다. 여권에는 호 지사의 사진과 함께 임병직 외교위원장의 서명이 남아 있다. 호 지사가 중국 체류 시절 사용한 가명 ‘장해령(Chang Hai-Ling)’에 관한 진술서도 눈길을 끈다. 그는 “중국 당국 권고로 가명을 쓰게 됐으며, 1922년 상하이에서 출발해 샌프란시스코로 오는 27일간 항해 내내 중국 이름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기록했다. 일본의 감시를 피해 국적과 이름까지 숨겨야 했던 독립운동가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호 지사의 손자 호윤진(77)씨는 “이 자료들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라며 “한국 정부가 원한다면 독립기념관이나 역사박물관에 기증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LA총영사관 권민 보훈담당 영사는 “관련 내용을 국가보훈부에 전달했고, 후손이 보훈 당국과 직접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낡은 종이에 남은 이름과 기록은 이제 후손의 손을 거쳐 다시 역사 앞에 섰다. 사라질 뻔한 한인의 독립운동 이야기가 유물과 함께 부활하며, 시대와 역사의 결을 오늘에 전하고 있다. 관련기사 선조 독립운동 사실 이제라도 인정 받아 기뻐 강한길 기자대한민국 임시정부 장해령 chang 시민권 신청
2025.09.22. 2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