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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동료 A에게 사춘기 시절 방황했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크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 역시 아니었기에 괜한 말을 한 것은 아닌지 후회가 없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동료 B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한국을 떠난 지 제법 오래되었기 때문에, 동료 A는 동료 B와 내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했어야 했나, 아쉬움이 남았다.     불교 계문의 약 3분의 1은 말에 관한 것이다. 말과 관련된 속담과 격언을 접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구시화문(口是禍門·입은 재앙이 들어오는 문) 모두 경솔한 말, 험담, 과장된 말, 감정적인 발언이 재앙과 불행을 불러올 수 있으니, 말을 삼가라는 뜻이다.   불가에서도 말 한 번 한 것이라도 그 업인(業因)이 허공에 심어져서, 제 각기 선악의 연(緣)을 따라 지은 대로 과보가 나타난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곳이라 하여 어찌 사람을 속이고 하늘을 속이겠는가.   반대의 경우도 있다. 최근에 작은 상을 받았다. 가끔 안부를 여쭙는 스승님께서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해 주셨다.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한 가까운 동료가 자신의 형에게 말을 했고, 그 형이 마침 스승님의 애제자 중 한 명이라 스승님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스승님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단지 게으름을 피우다 말씀을 못 드린 것뿐인데, 상에 대한 칭찬에 겸손함에 대한 칭찬까지 더해졌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하지 않았던가. 주머니 속의 송곳은 아무리 조심해도 튀어 나오기 마련이다. 말보다는 행실을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구시화문에 ’복(福)‘ 자를 더 해서 구시화복문(口是禍福門)이라 하기도 한다. 말은 화를 부르기도 하지만, 바르게 하면 복을 부르기도 한다는 말이다. 몇 년 전 과중한 업무에 원장 교무님에게 휴가라도 보내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그만둘 듯이 투정을 부린 적이 있었다. “그래, 최근에 많이 힘들었겠네.” 원장님의 이 한마디에 모든 불만이 한 순간에 얼음 녹든 사라진 경험을 했다. 말 그대로 ’말 한마디로 천냥 빛을 갚은‘ 셈이 되었다.     말과 글에 신중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공개 게시판 글은 말할 것도 없고, 간단한 이메일이나 메시지조차도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보내는 편이다. 불교적으로도 깨닫기 전에는 분별과 착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바르지 못할 말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깨달을 때까지는 입도 다물고 글도 쓰면 안 되는 것인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을 구시화문이 아닌 구시화복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첫째, 말과 글을 낼 때 편견과 착심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평소 착심을 놓는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둘째, 좋은 내용, 정확한 내용은 말과 글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 같으면 한 번 더 살펴야 한다. 편견과 공익의 정도에 따라 대중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경우도 있겠으나, 어떤 이유로든 대중이 불편해 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하기 어려운 경우가 없지 않다.     [email protected] 양은철 / 교무·Won Meditation Center삶의 향기 낮말 분별과 착심 재앙과 불행 불교 계문의

2026.02.0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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