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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수첩] 고객에게도 “저쪽에 알아보라” 할텐가

“저희는 아는 게 없습니다. 구글링해보니 대한항공 LA지점장을 하셨네요. 대한항공에 연락해 보세요.”(아시아나항공 LA지점)   “그분은 더 이상 우리 직원이 아닙니다. 아시아나 인사지 대한항공이 아닙니다. 아시아나에 요청하세요.”(대한항공 미주 사무소)   아시아나 미주지역 본부장 인사에 대한 취재 문의에 합병을 마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각각 보인 반응이다. 한 마디로 핑퐁이다. 나는 모르니 저쪽에 알아보라는 식이다.   대한항공 상무(강기택) 출신이 미주 본부장으로 부임하는 데 대해 아시아나측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런데 자기네 사람을 보내는 대한항공의 태도는 의외다. 아시아나 인사이므로 아시아나에 알아보라며, 무슨 공무원처럼 선을 긋다니. 게다가 강 본부장은 대한항공 LA지점에서 두 번이나 근무한 적이 있으니, 모를 리가 없다.   사진을 주지 못하겠다는 이유로는 초상권 문제를 들었다. 인사 홍보자료에 초상권이 무서워 사진을 못 주겠다는 기업은 대한항공이 처음이다. 대한항공은 또 아시아나 본부장 인사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면 반독점 제재에 걸린다는 식의 설명도 했다. 이미 합병 수순이 시작됐는데, 본부장 사진 한장으로 제재를 받는다는 말에 누가 수긍하겠나.   어쨌든, 마지막으로 아시아나 LA지점에 한 번 더 전화해 대한항공측 반응을 전하고, 강 본부장 사진을 요청했다. 갑자기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정말 없다니까요”라는 격앙된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퍼져나갔다. 회사 본부장 인사 기사를 자세히 써주겠다는데, 이게 화낼 일인가.   항공사 미주지역 신임 본부장이 LA에 부임하면 한인 언론사들은 인사 기사는 물론 인터뷰까지 곁들여 보도하곤 했다. 한인들이 애용하는 국적 항공사의 현지 책임자에 대한 고객의 관심과 독자들의 알 권리를 반영해서다.       강 본부장은 LA지점 경력이 있기에, 본지 데이터베이스에 얼굴 사진이 있었다. 다만 10년 전의 사진이어서 가장 최근 사진을 넣기 위해 양측에 문의했던 것이다. 양측의 떠넘기기 탓에 항공사 신임 본부장 부임 기사가 최초로 사진 없이 게재됐다.     사소하게 넘길 수도 있는 이 에피소드는 합병 후 두 회사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를 2년간 독립된 자회사로 운영하면서 통합 수순을 순차적으로 밟는다고 발표했다. 두 회사 사이에 본격적인 정보 공유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하지만 정보공유는커녕 신임 본부장 얼굴 사진 한장도 서로에게 떠넘기기 바빴다. 칸막이는 여전히 남의 회사처럼 높았다. 이게 현실이다.     융합이 늦어질수록 불거지는 게 파벌 문제다. 누구는 대한항공 출신, 누구는 아시아나 출신, 하며 인사 때마다 구설이 오갈 가능성이 있다. 공정한 인사에 대한 조직원들의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쳐져 탄생한 KB금융에서 직원들이 서로 채널1(국민은행 출신), 채널2(주택은행 출신)로 나눠 호칭했던 사례가 유명하다.   그게 조직의 융합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나아가 고객 서비스에 무슨 기여를 하겠나. 언론사에 인사 자료 하나 줄 수 없다는 꽉 막힌 태도로 고객은 제대로 모실 수 있겠나. 아시아나 고객이 대한항공에 전화하거나, 대한항공 고객이 아시아나에 문의하면 “저쪽에 알아보라”며 퉁명스럽게 끊을 텐가. 가뜩이나 항공권 가격 인상, 불리한 마일리지 통합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직원들의 구조조정 불안감도 무시할 수 없다.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은 양사 통합에 대해 “한 회사에 다른 회사가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물과 기름은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지 못한다. 둥둥 떠다닐 뿐이다. 두 항공사 미주본부가 지금 그렇다.   이은영 기자취재 수첩 저쪽 고객 아시아나항공 la지점 대한항공 la지점장 대한항공 미주

2025.01.2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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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 사이의 벽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흥미롭게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무라카미의 전작들에 비해 그다지 돋보이는 작품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폭넓은 세계관과 자유로운 상상력, 끈질긴 신념 등은 매우 부러웠다.   이 소설의 주요 얼개는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 사이의 벽과 양쪽 세상을 오가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가 오랫동안 가져온 우주관을 집약한 상징적 설정이다. 또한 사람들 사이에 세워져 있는 불확실하지만 완고한 벽의 존재와 그 벽을 넘어 진짜 나를 찾아 헤매는 여정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이 작품은 40여 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이 작품은 1980년 문예지 ‘문학계’에 발표했던 중편소설을 장편으로 다시 쓴 것이다.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있는 인기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발표한 글은 거의 모두 책으로 공식 출간되었다. 휴지에 끄적거린 낙서마저도 책으로 출간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 작품은 유일하게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않아 오랜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작가가 30대 청년 시절에 그렸던 세계를 줄곧 마음에 품고 있다가 40년이 지난 70대에 이르러 마침내 새로 다듬어 완성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벽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2020년부터 3년간의 집필 끝에 장편소설로 완성했다고 한다. 존경스러운 집념이다.   “어쨌거나 이 작품을 이렇게 다시 한번, 새로운 형태로 다듬어 쓸 수 있어서(혹은 완성할 수 있어서) 솔직히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 나에게 이 작품은 줄곧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신경 쓰이는 존재였으므로. (…) 그것은 역시 나에게(나라는 작가에게, 나라는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가시였다. 사십 년 만에 새로 쓰면서 다시 한번 ‘그 도시’에 돌아가 보고, 그 사실을 새삼 통감했다.” 작가 후기의 한 구절이다.   4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작가 무라카미의 작가적 집념과 끈기가 부럽다. 배우고 싶다. 이런 믿음과 끈기 없이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무라카미는“이 작품에는 무언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처음부터 그렇게 느껴왔다.”고 고백했다. 사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시 고쳐 쓰고 싶은 작품, 고치고 또 다듬어도 아쉬운 작품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시 쓸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더구나 40년이나 지나서….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줄곧 ‘디아스포라의 숙명’ 같은 것을 떠올렸다. 내 멋대로의 해석이고 엉뚱한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니까, 이민 오기 전 한국에서의 삶을 저쪽 세상, 이민 후의 타향살이를 이쪽 세상으로 상정하고 읽으니 참으로 많은 것이 선명해지고 이런저런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새로운 상상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한다.   영화 ‘전생(Past Lives)’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는 셀린 송 감독도 한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12살 때 캐나다로 이민 간 그는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던 시기도 일종의 전생이라고 생각한다. (이민자로서) 어디에 무엇을 두고 오면 그것을 전생이라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을 그렇게 해석하다니, 신선하기도 하고 공감도 가는 말이다.   전생과 현생을 이어주는 인연…. 이 짧은 말 안에 이른바 ‘디아스포라 예술’의 중요한 핵심이 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무라카미 소설에 빗대자면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인 셈이다. 두 세상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근본적 숙제…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는 명언이 떠오른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이쪽 저쪽 저쪽 세상인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소설

2024.01.18.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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