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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전환점

며칠 전 모 한국 신문에서 눈길을 끈 프로이트(1856~1939)에 대한 기사를 다시 읽는다. 엄격한 표정으로 손에 시가를 들고 있는 그의 흑백사진을 모니터에 확대한다. 1939년 9월 23일, 83세에 구강암으로 아까운 삶을 마친 정신분석 창시자의 수척한 얼굴을.   기사는 ‘고민의 상징’이라는 용어를 쓴다. ‘Symbolism of Neurosis’를 고풍스러운 우리말로 번역한 것 같다. ‘neurosis, 신경증’을 같은 뜻의 독일어, ‘Neurose’ 발음을 따서 우리는 ‘노이로제’라 한다.   정신과를 신경정신과라고도 한다. 정신은 실체가 없는 ‘추상명사’이지만, 신경은 혈관처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명사’이기에 더 구체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당신과 내가 유심론보다 유물론을 더 애호한다는 방증이다.   같은 이유에서였으리라. 한국 최초의 정신병원 이름이 1945년에 개원된 ‘청량리뇌병원’이었다는 사실이. 1980년에 ‘청량리정신병원’으로 개칭됐다.     ‘뇌’라는 물질이 ‘정신’이라는 추상으로 변한 것이다. 2018년 3월, 개원 73년 만에 청량리정신병원은 폐쇄됐다. 경영난과 지역 주민들의 ‘혐오시설 논란’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혐오’는 물질이건 추상이건 개의치 않고 미움의 표적을 ‘out of business, 폐업’시키는 법. 화가 이중섭, 시인 천상병이 입원했던, 짠한 향수심을 자아내는 청량리정신병원이 그렇게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고민(苦悶)이라는 한자어에 집중한다. 쓸 苦, 답답할 悶. 마음이 쓰고 답답한 정황이다. 마음(心)이 문(門)에 갇혀 있는 모양새. 마음이 두문불출한다고? 유사어로 번민(煩悶)이 있다. 고민에 비하여 광범위하고 번잡한 마음가짐이다. [번거로울 煩: ①번잡하다 ②문란하다, ③시끄럽고 떠들썩하다]   고민이 구체적인 현실적 문제에 대한 괴로움이라면, 번민은 어렵고 추상적인 문제에 당면한 심각하고 고질적인 고통이다. 고민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쓰는 과정이라면, 번민은 큰 난관이 미해결로 오래 남아있는 속수무책의 아픔이다.   옛날 흑백영화 청춘물이 생각난다. -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 둘 사이에 어떤 갈등이 일어난다. 그들은 고민한다. 화해는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자는 노이로제 상태. 남자는 밤늦게 주점에 홀로 앉아 술을 잔뜩 마시고 도로를 비틀비틀 횡단한다. 끼익, 하는 급브레이크 소리.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다음날 여자가 병원에 뛰어와서 상처투성이의 남친에게 울며불며 사랑을 다짐한다. 영화는 그들의 결혼식 장면으로 우리의 세속적 염원,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프로이트가 인류의 집단심리를 예리하게 파악해서 창시한 정신분석의 핵심은 ‘무의식’의 발견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의식과 문명이 일으키는 괴리현상, 정치적 투쟁의식 같은 갈등에 대해서 어떤 태세를 취했던가.   문(門) 속에 갇혀 있는 답답한 마음(悶)은 어떤 외출을 꿈꾸고 있을까. 성난 파도처럼 출렁이는 정치적 폭풍에 시달리는 당신과 나의 현세기를 횡행하는 이 끝없는 번민의 ‘전환점, Turning Point’은 어디에 있는가.   양극화 현상의 두 극단이 더없이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발시킬 즈음, 옛날 흑백영화처럼 제3의 현상이 일어나는 변곡점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아닌 말로 또 심리적 교통사고라도 일어나야 하는가. 아이러니컬하게도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이루어 낸 힘은 소정방이라는 제3의 세력이 아니었는지. 어떤가. 당신 눈에 그런 조짐이 보이는가.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전환점 전환점 turning 정신분석 창시자 물질이건 추상이건

2025.09.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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