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필요가 채워지면 그것으로 최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시대다.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전쟁, 예측 불가능한 기후 변화로 인한 홍수와 화재는 일상적인 절망과 슬픔을 낳고 있다. 서머캠프에 참여했던 수십 명의 아이들이 갑작스러운 급류에 휩쓸려 희생당한 비극적인 소식은 우리 모두를 숨 막히는 애통함 속에 빠뜨렸다. 사회 전반에 걸쳐 이와 비슷한 실망감들이 표출되고 있다. 올해로 90주년을 맞은 미국의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는 앞으로 30년 안에 재정 고갈을 맞거나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받을 것이라는 전망에 놓여 있다. 현재 30대 이후 세대들이 미래 복지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의학계 또한 인류의 생명을 지키는 숭고한 사명에는 공감하면서도, 조만간 수십만 명의 의료 인력이 대체되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인류는 당장의 만족을 추구하며 영혼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미루는 듯 보인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중환자조차 몸과 마음, 영혼을 함께 돌보는 통합적인 치료가 중요하다고 여기건만,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는 ‘오늘의 필요’라는 환경에 의해 변질되고 있다. 하지만 결국, 각자의 영혼을 돌보는 최종 책임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상실과 아픔, 현대 사회의 상상할 수 없는 비극 속에서도 우리는 우선 나의 영혼을 돌봐야 한다. 삶의 여정이 느리고 순탄하다면 영혼을 돌볼 기회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부귀를 얻으면 남모르는 슬픔이 따르고, 명예를 얻으면 말 못할 아픔이 있다. 높은 연봉의 직장에서도 가정이 무너지기도 하고, 자녀가 성공해 이제 걱정이 없겠다 싶은 순간 예기치 못한 질병이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서 진정으로 ‘완전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현대 심리치료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빅터 프랭클은 3년간의 유대인 수용소 생활에서 얻은 실존적 경험을 통해 기존의 임상 지식을 뛰어넘었다. 당시 그와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한 1500명이 줄을 서서 첫 번 방으로 들어갔는데, 그 가운데 10% 가량은 오른쪽에 세우고 나머지는 왼쪽에 세워졌다. 그런데 왼쪽 줄에 있던 전원이 개스실로 보내진 것을 알게 된 것이 그의 실존임상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 극한의 상황에서, 그는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던 세 가지 의미를 제시한다. 바로 ‘삶의 목적, 신성한 사랑, 그리고 영혼의 존엄을 보는 용기’다. 그는 후에 생존한 임상 사례들을 “비극의 한가운데서 가진 낙관주의”라고 정의했다. 영혼의 돌봄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다. 삶의 목적과 의미가 더욱 요구되는 환경이다. 삶의 마지막을 앞둔 한 환자가 기도하기 전 “자신의 영혼에 의미를 불어넣는 찬미의 노래를 함께 올리고 싶다”고 부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멀리 언덕 위에 낡고 투박한 십자가가 서 있네. 고통과 수치의 상징일세(On a hill far away stood an old rugged cross, the emblem of suffering and shame)…” 찬미를 함께 불렀던 그 순간은, 삶의 마지막 여정에서 영혼의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주는 우리의 피난처 시로다.” 어느덧 여름의 끝자락을 보내며 다가오는 계절을 기다리는 모든 가정 위에 영혼의 찬미와 돌봄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김효남 / HCMA 원목협회 디렉터열린광장 절망 화두 화두 영혼 마음 영혼 현대 심리치료학
2025.08.12. 19:37
매일 나보다 앞서 출근하던 현관문은 간 곳이 없고 하루의 피곤을 아무 불평 없이 안아주던 소파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깔깔대며 아이들이 밟고 내리던 계단은 손잡이 끝만 남아 그을음을 토합니다. 기억이 많을수록 슬픔도 깊어집니다. 도시라는 삭막한 콘크리트 덩어리 속에서 쉼터가 되어주던 자리는 이제 주소지만 남은 아픔이 되었습니다. 놀란 가슴은 어찌해야 할지 불안해하며, 허탈한 마음은 분노에 신음합니다. 어둠이 우리를 덮고 절망이 노을빛조차 감추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늘이 어둠에 깊이 물들어 갈수록 별들도 하나 둘 나타납니다. 그리고 더 많이 더 깊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둠 속에 별이 반짝이며 버티는 것 같지만 실은 별들 속에서 어둠이 힘겹게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별들이 새벽 햇살을 마중 나갑니다. 서쪽 하늘에는 도무지 물러설 것 같지 않은 어둠이 버티고 있었지만, 푸른 하늘과 함께 동은 트고야 맙니다. 절망은 우리를 삼킬 수 없고 소망 앞에 겨우 버틸 뿐입니다. 소망은 절망보다 강하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쓰며, 쥐어짜기도 하고 심심하면 손목을 비틀었던 자연이 실은 얼마나 무서우며 그 앞에 우리가 참으로 연약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도 다시 생각합니다. 바람 속에 모든 것이 사그라질 때,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 것을 준비하고 살았는지도 묻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소망은 사랑을 먹고 자라며, 위로는 함께 흘리는 눈물과 기댈 곳을 주는 따뜻한 어깨와 말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재난에 온 힘을 다해 맞서주는 소방대원들의 수고와 용기가, 잠시라도 지친 몸과 마음을 위해 소파가 되어주려고 달려오는 이웃들의 사랑이, 힘든 이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우는 분들과 함께 우는 눈물이 되고, 버텨주는 위로가 됩니다. 그 속에 다시 일어서는 당신이 우리의 감사입니다. 다시 손을 모읍니다. 하나님이시여 그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에게 향하소서. 우리의 힘이시여 우리를 도우소서. 곤고한 자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며 외면하지 않으시니 우리의 곤고와 눈물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눈물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통 속에, 그 고통과 함께하시는 주님.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의 구원이시여.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절망 서쪽 하늘 콘크리트 덩어리 자의 고통
2025.01.20. 18:00
내가 나가고 있는 Y에 얼마 동안 공석이었던 요가 강사 자리에 샛별이 나타났다. 여느 직장에서처럼 일찍 정착해 오래 머무는 강사가 있지만, 2~3개월 만에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 첫 수업 시간에 그녀는 머리를 올백으로 단정하게 빗어 묶고 왼쪽 눈에 검은 안대를 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은 의구심으로 가득했으나 고도의 몰입으로 한 시간의 클래스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렇게 누구도 그녀의 검은 안대에 대해 질문도 설명도 없이 거의 일 년이 지나갔다. 그녀 클래스는 나날이 인기도가 높아 회원 수가 계속 늘어나 이제는 하루에 두세 시간씩 가르친다. 가끔 멘트 중에 전문용어가 나와 그녀의 전직이 물리치료사임을 알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요가 강사와 학생의 관계는 얼마나 성의 있게 가르치고 얼마나 열심히 따라 하는가이지 그 이상의 질문은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요가를 끝내고 그녀와 함께 주차장으로 걷고 있었다. 난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용기를 내서 “혹시 사고로 눈을 다치셨어요?”하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안대를 벗었고 왼쪽 눈은 하얀 피부로 덮여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큰 상처가 난 오른팔을 보여주며 여기 피부를 떼서 눈두덩을 덮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래 눈꺼풀에 악성 암이 생겨 안구 속으로 계속 침범해 들어가고 암의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 얼굴 전체로 전이되기 전에 안구 적출술이 최고의 선택이었단다. 너무도 솔직하고 덤덤하게 말하는 그녀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몸의 어느 한 부분도 소홀하게 다룰 수는 없지만 한쪽 눈을 잃는다는 사실은 어마어마한 상실이다. 아니 절망이다. 종종 시력을 잃어도 눈은 그대로 갖고 있지 않은가. 안구 적출 후 그 공간은 어떻게 되는가. 그녀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을 줬다. 인공눈 아니면 자신의 피부이식으로 그 공간을 덮는 경우, 그녀는 후자를 택했다. 평생을 물리치료사로 많은 환자의 재활을 도와주었던 그녀가 지난 일 년 동안 겪어야 했던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경험과 트라우마는 그녀를 아득하고 황망한 세계로 데려갔다. 처음에 시력을 잃고 눈을 잃고 격심한 통증에 신체적 이미지의 변화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내려가고 꺼져가고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멈춰버린 지점, 절망의 뿌리에 몸을 비벼대던 찰나, 한 줄기 희망의 빛이 피어났다. 어쩌면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그 임계점에서 가느다란 희망의 빛을 조우할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한 자아의 본능이 아닐까. 다행이야, 운이 좋은 거야, 그래도 나에게는 또 하나의 건강한 눈이 있잖아. 만약 우리 몸에 하나밖에 없는 장기에 큰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이 바로 절망인 거야. 희망과 긍정의 자세로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니 아픔도 희열로 변화되어 갔다. 본인 스스로 열심히 재활에 참여했다. 첫 번째 부딪힌 장애는 한 눈으로는 원근감이 없고 몸의 중심을 잡는 데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원근감이 중요한 구기 종목 같은 운동은 상당히 어렵다. 그녀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요가, 필라테스 같은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위해 운동 삼아 요가를 시작했으나 전직이 물리치료사였던 만큼 그녀는 신체를 단련해서 유연하게 만들고 녹슬지 않게 보존하는 그녀만의 클래스, 토탈 바디와 스트레치 클래스를 개발했다. 이 클래스는 가장 인기가 있다. 예약해야만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정도이다. 수술한 지 2년이 되어 가는 지금 그녀는 원근감도 재습득해 운전도 이제 익숙해졌고 평면의 세계에서 입체의 세계까지 한 눈으로 두 눈을 가진 사람과 동등한 능력으로 하루하루 감사하며 새로운 나날을 살고 있다. 그녀의 모든 클래스 마지막 5분은 항상 누워서 명상하게 한다. 각자 감사할 일을 찾아 스스로에게 고마움을 전달하도록 한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은 무한대이다. 역시 인간은 아름다운 존재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절망 희망 지점 절망 줄기 희망 스트레치 클래스
2024.12.30. 22:00
지난주는 나에게 아주 힘든 한 주였다. 직장에서 한꺼번에 3명의 죽음을 마주쳐야만 했다. 첫 번째 환자는 76세로 40년을 신경외과 중환자실(neurosurgery intensive care unit)에서 근무하다가 72세에 은퇴한 간호사였다. 은퇴하고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기 시작한 후 일 년 만에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항상 남편의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 병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지난주에는 그녀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뇌전증 발작(seizure)을 일으켜 앰뷸런스에서 응급실로,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왔다. CT 스캔 결과 평소에 고혈압이 있었던 그녀는 뇌혈관이 터졌고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 뇌부종과 뇌사로 판정이 났다. 평생 열심히 살아왔던 그녀는 그렇게 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거의 실성하다시피 환자의 남편은 계속 울다 웃기를 반복하며 그동안 제대로 못 해준 것에 대해 후회하며 사과했다. 보통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자주 보는 시나리오이다. 환자가 죽고 나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동안 잘해주었던 일은 다 잊고 못 해준 일, 서운하게 해주었던 일들을 후회한다. 두 번째 환자는 32세의 여자 환자로 백혈병 치료 과정 중에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러시아에서 의대를 마친 후 미국에서 수련의 과정을 밟고자 4년 전에 어렵게 비자를 받아 뉴욕에 왔다.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그녀는 올 7월부터 우리 병원에 수련의 자리를 따냈다. 준비 과정 중 신체검사에서 5월에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바로 항암 치료에 들어갔고 두 번째 사이클을 마친 후 항암 약 합병증의 하나인 심근병증(cadiomyopathy)을 겪게 되었다. 증상은 날로 악화하여 심부전의 결과로 호흡 곤란, 피로, 다리부종이 오고 심근의 수축력이 떨어져 펌프 기능을 잃게 되었다. 환자의 전 가족은 러시아에 있고 여기는 지난 4년 동안 사귀게 된 지인들이 전부였다. 의료진은 최선을 다해 심근 강화제와 혈관 수축제 6종류나 투여했지만 환자의 장기는 하나둘씩 기능을 잃어갔다. 마지막으로 호흡 곤란이 왔다. 이제 인공호흡기 꽂을 일만 남았다. 하지만 인공호흡기는 그녀의 폐 기능을 일시적으로 대신해줄 뿐 환자를 정상으로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다. 의사는 러시아에 있는 환자의 어머니와 화상통화를 한 후 더는 치료를 계속하지 않기로 했다. 환자는 점점 의식을 잃어서 우리는 날마다 화상통화로 러시아에 있는 가족들에게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환자는 결국 토요일에 숨이 멎었다. 토요일은 유대인의 안식일로 러시아 유대인인 그녀는 방문객 한 명 없이 홀로 쓸쓸히 떠났다. 임종이 임박하여 랍비와 지인들에게 전화 통화를 해도 누구 하나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 병원 규칙상 환자의 시신은 냉동실로 옮겨갔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안타까운 상황, 또 쓸쓸히 홀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지리적인 또한 종교적인 이유가 나를 혼미하게 했다. 세 번째 죽음은 현재 우리와 함께 중환자실에서 15년간 일해 왔던 주임 의사였다. 49세인 그녀는 토요일 아침 주거지인 맨해튼 자신의 콘도에서 발견되었다. 금요일 정상 근무를 마친 후 심한 두통으로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곧장 퇴근했다고 한다. 사인은 구형 뇌동맥류(Saccular Brain Aneurysm)으로 판명 났다. 결국 뇌동맥류가 터져 과다 출혈로 인한 사망이다. 그녀는 싱글이었고 의대 교수와 중환자실 주임 의를 겸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충격에 빠졌다. 정말 애석하고 믿기지 않았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이 이 경우가 아닌가 한다. 이 세 명의 죽음은 나를 가로막고 잠시 내 뒤를 돌아보게 했다.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고 있을까. 나에게 소중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 오늘 하지 않으면 분명 후회할 일을 뒤로 미루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절망 희망 신경외과 중환자실 여자 환자 보통 환자
2023.10.06. 21:19
날개 돋친 듯 마구 떨어져 날리는 붉은 꽃잎들 산등성이에 기나긴 그림자 드리우고 공허한 나무줄기 딱따구리 구멍 쪼는 소리 하늘을 메운다. 한 세상을 건너는 저 가을빛 “나처럼 떠나세요!” 단풍나무의 속삭임, 신음소리 야성의 바람, 풍화된 마른 줄기, 축축한 이끼 냄새, 땅에서 얻은 것들, 땅으로 되돌리는 장엄한 서사시 보이지 않는 날들을 위해 안으로 안으로만 삭이는 내 존재에 더 가까운 노래, 당신, 가을이여! 이춘희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절망 노래 속삭임 신음소리 딱따구리 구멍 이끼 냄새
2023.09.29. 21:36
“희망을 품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망도 할 수 없다.” 조지 버나드 쇼·아일랜드 극작가한마디 희망 절망 아일랜드 극작가 조지 버나드
2022.04.18. 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