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마라나 타
사오십 년 전 어른들은 자주 ‘말세’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그 말을 들으며 자란 우리 세대는, 우리가 늙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실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을 함께 품고 살았다. 놀라운 사건이나 충격적인 사고가 터질 때마다 진단은 단순했다. 패륜 범죄도, 강도 사건도, 성범죄나 대형 사기 사건도, 세상이 말세이기 때문이었다. 옆집 큰아이가 가출해도, 젊은이가 특이한 옷차림을 해도, “말세야, 말세.”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전쟁과 기근은 말세의 징조로 여겨졌고, 우리는 늘 종말을 이야기하며 살았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지 않으셨다. 20세기 말, 사람들은 지구의 종말을 심각하게 이야기했지만, 세상은 변함이 없었다. 우리는 ‘끝나지 않은 말세’의 시간 위에서 막연한 두려움과 희미한 기대를 안고 살아간다. 자연은 점점 이상 현상을 보이고, 세상은 더 교묘하고 거대하게 악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은 더 큰 고통과 절망 상태에 놓이고, 그 절망은 오히려 다시 오실 주님을 더욱 간절히 기다리는 믿음으로 바뀌었다. 아이티의 고아들을 돕는 일을 해오며 지켜본 세상은 말 그대로 ‘말세’이다. 지난 17년 동안, 특히 대지진 이후 15년의 세월 속에서 아이티는 점점 더 혼돈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2017년, 유엔 평화유지군이 각종 논란 가운데 완전히 철수한 뒤 나라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두 번의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2021년에 암살되자, 갱단의 세력은 급속히 커졌다. 결국 아이티는 수도조차 안전하지 않아 국제선 비행기도 다닐 수 없는 위험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폭력과 억압이 일상이 되었고, 방화와 약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수백만에 이른다. 어린 여자아이들을 향한 성폭행,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는 납치 사건은 듣는 이들마저 공포에 떨게 한다. 나라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굴러가고, 일자리를 제공하던 기업들도 문을 닫거나 축소되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재앙적인 기아 상태에 놓여 있고,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자라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기도한다.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 기도가 허공에 메아리치는 듯 느껴질 때마다, 질병으로 어린 생명이 스러질 때마다, 우리는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또 기도한다. “마라나 타.” 아람어로 “주님, 어서 오십시오”라는 뜻이다. 주님의 임재와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성도의 기도다. 모든 아픔과 눈물이 씻겨지고,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 받으시며, 구원의 기쁨으로 온 백성이 춤추는 그 나라, 부활의 소망으로 가득 찬 그 나라 -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셔서 이룰 그 나라를 기다린다. 아이들을 돕기 위해 애쓰지만, 여전히 다가올 한 끼를 걱정해야 할 때가 있다. 가벼운 병이지만 값싼 약조차 없어 숨을 거두는 아이를 마주할 때가 있다. 후원이 끊겨 꿈을 포기해야 할 때, 꿈을 미뤄야 할 때, 멈추지 않는 자연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을 때마다 우리는 다시 기도한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주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서, 아이들이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그 나라를 소망하며, 우리는 무릎 꿇고 기도한다. “마라나 타. 우리 주님, 오십시오.” (고린도전서 16장 22절 하, 새번역)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국제선 비행기도 나라 부활 절망 상태
2025.11.13.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