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언제나 분주하다. 사람들은 달력을 넘기며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말하며, 더 빠르고 더 멀리 가야 할 이유를 찾는다. 그러나 새해의 첫 문턱에서 문득 조선의 르네상스 인물로 외교관이면서 문인이었던 최립(1539~1612)이 말한 ‘정관(靜觀·조용히 바라봄)’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움직이지 않고 바라보는 일,’ ‘말보다 먼저 침묵으로 사유하는 태도’ 말이다. 정관은 결코 멈춤이 아니다. 오히려 성급한 판단과 요란한 감정에서 한걸음 물러나 사물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지적인 자세다. 최립에게 있어 세상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깊이 바라볼수록 스스로 의미를 드러내는 존재였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고, 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다만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 깊게 조용히, 오래, 그리고 정확히 보았다. 새해를 맞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어쩌면 더 많은 결심이 아니라 더 깊은 관찰일지 모른다. 지난해의 성공과 실패를 즉각 평가하기보다, 그것들이 어떤 맥락에서 일어났는지 차분히 바라보는 일. 타인의 말과 세상의 소음에 그저 휩쓸리기보다, 내 안에서 무엇이 흔들리고 무엇이 굳건했는지를 혼자서 조용히 살피는 일이다. 정관의 시선은 판단을 유예한다. 그래서 미워할 이유도, 조급해질 이유도 줄어든다. 대신 ‘사물의 결’을 이해하게 되고, ‘사람의 사정’을 헤아리게 된다. 최립의 글에서 느껴지는 고요함은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바로 사유의 밀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새해는 새로움보다 ‘새로운 방식의 바라봄’에서 시작된다. 빠르게 반응하는 대신 천천히 응시하고, 즉각 말하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하며, 결과를 재촉하기보다 과정을 이해하려는 태도. 이것이 바로 정관의 미덕이다. 올해가 우리에게 더 바쁘고 복잡한 해가 되더라도, 하루의 어딘가에 ‘정관의 시간’이 꼭 있기를 바란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일 수도 있고, 하루를 마감하며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짧은 침묵일 수도 있다. 그 짧은 고요가 생각을 바로 세우고, 삶의 방향을 조정해 줄 것이다. 최립은 우리에게 조용히 보여주었다. 깊이 보는 사람은 결코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조용히 사유하는 사람은 오래간다는 것을. 이 새해가, 더 빨라지는 해가 아니라 ‘더 깊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우리 모두가 정관의 눈으로 세상을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걸어가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최영배 / 리전트대학 교수열린광장 정관 새해 한걸음 한걸음 고요가 생각 르네상스 인물
2026.01.15. 19:30
최근 오렌지카운티 한인사회를 뒤흔든 이슈는 단연 OC한인회관 매각 추진이다. OC한인회(회장 조봉남)는 카운티 북부 지역의 부에나파크로 옮기기 위해 매물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가든그로브에 있는 한인회관 매각 에스크로를 열었다. 한인회에 따르면 한인회 이사들은 지난해 12월 18일 잇따라 열린 이사회와 총회에서 ‘한인회관을 OC북부로 이전하는 안’을 가결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회장단에 위임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연말 에스크로가 열렸다. 기존 한인회관을 팔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중요한 결정이 이뤄졌지만, 이 사실은 공표된 바 없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한인회 이사 중엔 에스크로 오픈을 포함한 이후 상황 전개에 관해 몰랐다는 이들도 있다. 에스크로 오픈 사실이 본지를 포함한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한인회 전직 회장, 이사장, 여타 단체 관계자 등은 큰 충격을 받았다. 9명의 전, 현직 단체장들은 긴급 모임을 갖고 한인회 측에 매각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한인회관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중요한 결정을 공청회를 포함한 의견 수렴 과정 없이 한인회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매각 철회를 요구했다. 또 에스크로를 취소하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를 포함한 강경 대응에 나설 것을 천명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은 조봉남 한인회장이 회관을 매각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림에 따라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많은 이들은 “다행이다”, “잘 됐다”란 반응을 보였다. 조 회장은 회관 시가를 알아보고 바이어를 물색하던 차에 3개의 오퍼가 들어왔고, 부에나파크에 적당한 매물을 싼 가격에 살 기회가 생겼으며 가장 높은 구매 가격을 제시한 바이어 측이 에스크로를 열어야 가격에 관한 최종 협상에 응하겠다고 해 서둘러 에스크로를 열었다고 해명했다. 또 일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 모든 것을 공개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한인회 나름의 이유와 입장은 있겠지만, 수십 년 동안 오렌지카운티는 물론 타주 한인들의 기부금에 한국 정부 지원금, 가주 정부 지원금이 합쳐져 마련된 회관 매각을 공개적인 발표와 토론 등의 절차 없이 에스크로부터 여는 방식으로 추진했다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일이며 한인들의 공감을 얻기도 어렵다. 회관 매각과 관련해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보면 한인회 정관 개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정관의 총회 관련 조항은 지난 2019년 개정됐다. 당시 개정에 따라 정기, 임시 총회 성원은 이전의 71명 이상에서 ‘당대 한인회 이사 3분의 2 이상’으로 변경됐다. 임시 총회 소집 요청에 필요한 ‘71명의 서명’ 조항도 ‘한인회 이사 3분의 2 이상 서명’으로 바뀌었다. 총회 정족수는 이사 3분의 2 이상 참석이며, 이엔 서면 위임자도 포함된다. 위임한 이사의 의결권은 없다. 임시 총회는 이사회 결정 외에 임원회 결정으로 회장이 소집하는 것도 가능하다. 과거엔 총회를 열기 전, 이사회에서 총회에 회부할 안건을 가결하고 총회 소집 공고를 일간지에 내도록 돼 있었다. 이 과정에서 총회의 중요 안건은 사전에 기사로 게재됐다. 총회에서 어떤 안건을 다룰지 한인들이 미리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정관 개정으로 총회 소집 공고 관련 규정은 사라졌고 한날 한자리에서 이사회와 총회를 잇달아 개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인회는 OC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단체다. 시간과 비용 절약을 위해 이사회와 총회를 잇달아 여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회관 매각과 같은 중요한 안건은 사전에 공지하고, 회의 결과도 즉각 공표하도록 정관에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회관 매각과 이전, 회관을 담보로 한 융자 등 주요 사안 등을 어떤 절차에 따라 공개적으로 처리해야 하는지도 정관에 반영해야 한다. 현 정관엔 한인회관에 관한 상세한 규정이 없다. 평소 ‘모범적’이란 평을 들어온 OC 한인사회는 큰 파열음 없이 회관 매각 철회란 결과를 끌어냈다. 한인회가 여론을 받아들여 에스크로를 철회한 것도 잘 된 결정이다. 이젠 한인회가 한인사회의 지혜를 모아 정관 개정에 나설 것을 제언한다.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한인회 정관 oc한인회관 매각 기존 한인회관 조봉남 한인회장
2024.02.11. 18:00
오렌지카운티 한인회(이하 한인회, 회장 권석대) 차기(28대) 회장 선거를 앞두고 한인회 정관을 3년 전으로 돌려 놓으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OC한인축제재단(이하 재단, 회장 정철승) 측은 지난달 29일~이달 2일까지 열린 아리랑축제 기간 중 이 같은 주장을 담은 유인물을 배포했다. OC한인회정상화추진위원회 명의로 제작된 이 유인물에 위원장과 위원 등의 이름은 없었지만, 본지 취재 결과 글을 쓴 이는 한명수 재단 부회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 부회장은 이 유인물에서 한인회가 정관을 개정한 이유가 조봉남 현 이사장을 차기 회장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 정관의 한인회장 입후보자 자격은 ▶만 30세 이상 ▶OC거주 한인으로 미 영주권 또는 시민권 소지자 ▶만 3년 이상을 OC 내에서 거주한 자 또는 현재 OC에 거주하고 있으며 만 5년 이상을 OC 내에 거주했던 자 ▶OC에서 비영리단체장 및 OC한인회 이사로 2년 이상 봉사한 자 등이다. 한 부회장은 ‘만 3년 이상 OC 거주’ 조항이면 될 것을 ‘현재 OC에 거주하고 있으며 만 5년 이상을 OC 내에 거주했던 자’로 바꾼 이유가 조 이사장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항은 현 27대 한인회가 2020년 12월 30일 개정했다. 개정 전엔 ‘만 3년 이상 OC 내에서 계속하여 거주한 자’란 조항만 있었다. 한 부회장은 또 한인회가 회장 후보 공탁금을 기존 5만 달러에서 1만 달러로 내렸다가, 다시 2만5000달러로 올린 것도 문제라며 한인회 빚(회관 리모델링 관련 론)은 도대체 언제 다 갚을 것이냐고 물었다. 한 부회장은 왜 꼭 조 이사장을 차기 회장으로 만들어야 하느냐며 현 한인회 정관을 김종대 회장(25·26대) 재임 당시 개정하기 전 상태로 돌려 놓으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원로들이 나서서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적었다. 정철승 재단 회장은 “한인회 정관을 예전으로 돌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정상화추진위원회에 참여하는 이들의 명단도 곧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유인물과 관련, 권석대 회장은 “오렌지카운티를 위해 정화 운동을 하겠다면 숨어서 하지 말고 한인회에 이사로 들어온 후에 고칠 것을 요청하라”고 말했다. 권 회장은 “부족한 것을 지적하면 감사히 여기고 고쳐나가고 있다. 공탁금도 1만 달러는 적으니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 다시 올리지 않았는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가 작성한 유인물을 배포하는 건 커뮤니티에 불신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또 “김종대 전 회장 시절부터 정관을 잘못 만들었다고 하는데 악법도 법이다. 그 안에서 돌파구를 찾아야지 무시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권 회장과 정 회장은 축제 개막일인 지난달 29일 대화 중 한인회 정관 등에 관해 언쟁을 벌였고, 그로 인해 권 회장의 개막식 참석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이사장은 4일 본지와 통화에서 “과거 약 40년 간 OC에서 살았고 LA카운티에 비즈니스가 있어 토런스 집과 풀러턴에 사는 네 자녀의 집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토런스 집은 정리했고 OC로 이사 오기 위해 집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밝혔다. 차기 한인회장 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정관 논란과 관련, 전직 한인회 회장과 이사장들의 모임인 OC한우회(회장 박만순)는 오는 7일(금) 가든그로브의 장모집 식당에서 긴급 회의를 갖는다. 한인회 측에 따르면 차기 회장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김도영)는 곧 선거 공고를 낼 예정이다. 한인회는 지난달 8일 임시 총회에서 12월 6일께 간접 선거로 차기 회장을 선출하기로 의결했다. 임상환 기자한인회 정관 한인회장 입후보자 차기 한인회장 한인회 정관
2022.10.04.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