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다양한 그 의미를 되새기고, 일본과의 관계를 점검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미 여러 방면에서 일본을 넘어섰다고 우쭐대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다. 독도, 위안부, 강제징용, 친일파 논쟁, 문화재 반환처럼 겉으로 드러난 문제들 외에도 정신적 문화적 문제들이 대단히 많다. 광복 80년 사이에 일제가 남긴 쓰레기를 열심히 치웠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결정적인 갈등이 잔뜩 남아 있다. 이런 문제들을 들여다보면, 8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정말 제대로 광복이 된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 지경이다. 정치나 사회, 외교적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능력은 없지만, 우리 정신에 깔려있는 문화적 정신적 앙금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은 것이 많다. 다른 것은 접어두고, 말과 글의 현실만 살펴봐도 일제 잔재가 아프게 드러난다. 자세히 볼수록 참담해진다. 다른 분야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서글퍼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자어의 77%는 일본 사람들이 만든 것을 그대로 받아쓰고 있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한숨을 내쉰다. 본디 우리말인 줄로 알고 사용하고 있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얼마 전 한국 정부는 ‘문화재(文化財)’를 ‘국가유산(國家遺産)’으로 바꿔 부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문화재청장이 국가유산청장으로 바뀌었다. ‘문화재’라는 용어를 일본에서 들여와 공식적으로 쓴 지 62년 만이라고 한다. 이유는 재화적 성격보다 국가적 정체성을 앞세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처럼 일본말 쓰레기를 치우고 그 자리를 우리말로 채우는 노력이 끈질기게 이어져 왔지만, 아직도 쓰레기가 산더미다. 현대화 과정에서 서구 문명도 일본을 통해서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일본 사람들이 번역한 외래어를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회, 민주주의, 대통령, 개혁, 법률, 정의… 철학, 예술, 문학, 낭만 등… 모두 그렇다. 거기에다 아직도 버젓이 쓰이고 있는 일본말도 무척 많다. 각 분야의 전문용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에서도 흔하게 쓰이고 있다. 일본말인지 모르고 쓰는 경우도 많다. 젊은 세대들은 멋부리기로 일본말을 쓰기도 한다. ‘간지’ ‘야마’ 등등…. 이런 잘못을 지적하면 “영어는 괜찮은데 일본말은 왜 안 된다는 거냐?”라고 항변한다. 어처구니없다. 낱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언어구조나 말법, 문법에도 일본 잔재가 잔뜩 남아있다. 그 덕에 한국 사람들은 일본말을 쉽게 배운다. 사고방식이나 문법의 구조가 같고, 한자어의 77%가 같으니 배우기 쉬울 수밖에 없다. “아무려면 어떠냐? 지금 이렇게 잘 먹고 잘살게 되었으면 그만이지, 뭐가 문제라는 거냐? 까짓 일본놈들 뛰어넘어버리면 되지!” 이렇게 큰소리치며 인스턴트 라면을 예로 들기도 한다. 일본인이 처음 만든 것이지만, 지금은 우리 라면이 일본 것을 깔아뭉개고 세계인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다른 분야도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글쎄, 그럴까?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아무튼,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역사적 정신적 문화적으로 근본적인 갈등과 매듭이 가로놓여있다. 반드시 통찰하고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우리 자신을 냉철하게 점검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도 많다. 지나친 민족주의, 피해자 관점의 일방적 반일감정, 친일파 논쟁에서 드러난 이분법 등등…. 광복 80주년에 즈음하여, 우리 자신을 냉철하게 짚어보고 반성하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두 손 모아 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일본 우리말 논쟁 문화재 정신적 문화적 문화적 정신적
2025.08.14.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