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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STOP 사인이 건네는 정중한 안부

‘STOP’ 사인 앞에 멈췄다. 도로의 정지 표지는 잠시 숨을 고르는 자리다. 그러나 삶이 건네는 ‘STOP’ 사인은 때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절벽 앞 선고와 같다.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신호이며, 평온하던 일상을 침범하는 불청객이다.   며칠 전, 친구의 전화를 받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참을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데 가슴 저 밑에서부터 형언할 수 없는 통증이 차올랐다. 아직 인생의 꽃을 한창 피울, 동생 같은 60대 친구의 폐암 소식은 너무도 잔인한 정지 신호였다. 삶의 한 페이지가 날카로운 칼날에 베여 소리도 없이 잘려 버린 것만 같았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소명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그녀의 엔진이 강제로 꺼지는 순간,  암이라는 ‘STOP’ 사인은 그녀가 정성껏 설계해온 일상의 지도를 단숨에 지워버렸다.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16년 전 내 앞을 가로막았던 ‘STOP’ 사인을 떠올렸다. 대장암이었다. 그건 단순한 건강의 위기가 아니라, 삶의 방향과 속도를 모두 바꾸라는 엄중한 명령이었다. 가쁘게 달려오던 나는 그 자리에서 속수무책으로 멈췄다. 멈춤은 역설적으로 처음으로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한 처절하면서도 고귀한 성찰의 시간이었다.   투병하며 나는 ‘살아 있음’ 그 자체의 무게를 다시 배웠다. 당시 나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 사역인 ‘푸른 초장의 집’을 운영하며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현장에서 쓰고 있었다. 쉘터(Shelter)에 들어오는 이들이 넘쳐나 수용 시설이 부족해지면, 정원 외 인원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쉘터로 보내야 했다. 나는 한인 여성들을 찾아가 상담과 교육을 통역하며 그들의 부서진 삶을 보듬느라 내 몸 돌볼 겨를이 없었다.   쉘터의 일상은 늘 살얼음판 같았다. 입주한 가정 중에는 어린 아들이 아빠에게 보고 싶다며 연락하는 바람에 은신처가 노출돼 쫓겨나는 비극도 있었다. 어떤 가정은 안전을 위해 먼 곳의 쉘터로 연결해주었음에도 끈질기게 추적한 남편에게 결국 발각되기도 했다. 쉘터에서 쫓겨난 후 라스베이거스로 끌려가던 중 남편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소식이 신문에 크게 보도되던 날, 나는 차가운 활자 앞에서 한동안 숨을 쉴 수 없었다. 가해자의 집착은 늘 상상을 초월했다. 외부 연락을 철저히 금지하는 규칙을 세우고 엄격히 교육했음에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발생하는 불행한 사건들은 늘 영혼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그토록 치열한 생명의 전장 한복판에서 암이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었다.   “하나님, 알고 계시잖아요. 푸른 초장의 집은 어떻게 합니까. 폭력에 시달리는 그 가련한 여성들을 대신해 이 사람 저 사람, 이 기관 저 기관을 찾아다녀야 하잖아요. 구완와사까지 찾아온 이 초라한 얼굴로는 도저히 사람들 앞에 설 수가 없어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이었을까. 아니면 남겨진 이들에 대한 절박한 사랑이었을까. 사역의 정점에서 마주한 ‘STOP’ 사인 앞에서 나는 처절하게 고뇌했다. 내가 멈추면 그들의 울타리도 무너질 것만 같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나는 타인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사력을 다해 드나들던 사무실 앞에서 강제로 멈춰 서야 했다. 해결해야 할 산적한 일을 내려놓고 병실에 누웠을 때,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무심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갔다. 0.1초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는 신호등과 바삐 걸음을 옮기는 행인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위태로운 속도로 엔진을 과열하며 달려왔는지. 내가 없으면 무너질 것 같던 세상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습관처럼 이어오던 발걸음을 멈추고서야, 내가 서야 할 진짜 출발선을 가늠할 수 있었다. 지인들이 위로하며 건넨 말처럼 이것은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었다. 더 먼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거친 풍랑을 피해 잠시 항구에 머무는 정박의 시간이었다.   인생의 ‘STOP’ 사인은 반갑지 않다. 우리를 주저앉히고 깊은 절망의 수렁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그러나 멈춰 서서 가쁜 숨을 고르는 동안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명한 색채로 다가온다. 질병은 삶의 곁가지를 쳐내고 본질만을 남기게 한다. 실패와 좌절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면의 깊은 곳을 향해 청진기를 대게 한다.   도로 위의 차들이 멈춤으로써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고 사고를 예방하듯 삶의 정지 신호 역시 더 큰 파국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 보호 장치일지 모른다. 지금의 멈춤이 끝이 아니라 더 단단하고 견고한 마음으로 다시 출발하기 위한 ‘축적의 시간’임을 나는 투병의 고통을 통해 절절히 배웠다.   친구는 지금 붉은 신호등 앞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을 뿐이다. 신호가 바뀌고 초록불이 켜지는 순간, 우리는 이전과 전혀 다른 깊은 눈빛과 훨씬 단단한 걸음으로 다시 길을 나설 것이다. 완전히 멈추어 본 뒤에 다시 가속 페달을 밟을 때의 벅찬 감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등 떠밀려 가는 주행이 아니라 목적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조절하는 진정한 의미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제 길 위에서 마주치는 ‘STOP’ 사인이 예전처럼 차갑거나 밉지 않다. 오늘도 나는 그 앞에서 기꺼이, 그리고 아주 정중하게 멈춘다. 삶에 쌓인 조급함의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나아갈 내일의 에너지를 채운다. 멈춤은 끝이 아니라, 아름다운 주행을 위한 경건한 예식이다. 엄영아 / 수필가문예마당 stop 사인 stop 사인 정지 신호 여성 사역인

2026.05.0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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