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파면’이라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선고는 끝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은 맞는 것 같다. 다음 대통령이 정해질 때까지는 상당한 혼란과 대결, 반목, 질시의 거친 소용돌이가 그치지 않고, 한층 더 심해질 것이라는 염려가 매우 크다.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는 성장통치고는 너무 크고 아픈 고통이다. 정치적, 법적으로는 일단 결론 지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국민들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마땅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엉뚱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시(詩) 정신을 치유약으로 적극 활용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고 싶다. 좋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시를 비롯한 예술의 기능이라고 믿는 것이다. 시가 더럽고 살벌한 세상을 정화하는 일에 한몫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물론, 한국 정치판에는 이미 시가 들어와 있다. 실제로, 좋은 시(詩)들이 어지러운 정치판에 불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걱정스러운 소식도 들려온다. 뜬금없이 등장한 “호수에 뜬 달그림자를 쫓는 격”이라는 시 낭송이 화제가 되는가 싶더니, 지난 3.1절에는 정치인의 기념사에 민족시인 이육사의 시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꽃’, 홍준표 대구시장은 ‘절정’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고 한다. 다음 대통령 자리를 넘보는 이들의 일이라서 눈길을 끈다.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꽃’의 한 구절 ‘매운 계절(季節)의 챗죽(채찍)에 갈겨 / 마츰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 /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볼밖에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절정’의 한 구절 이 시들은 암울한 일본강점기의 절망적이고 극한적인 상황을 끝끝내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이육사 시인의 절창으로 3.1절에는 썩 잘 어울리는 시다. 이 시를 빌려다 쓴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상황을 시에 빗대어 호소하려 한 모양이다. 하지만, 평소에 시와는 별 관계없이 싸움질만 일삼던 사람이 뜬금없이 멋진 시 구절을 읊어대니, 영 생뚱맞다. 물론, 시나 문학이 정치에 건강하게 참여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문학이 정치 현실과 무관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 옛 벼슬아치들은 기본적인 시적,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갖춘 선비들이었다. 이방원과 정몽주처럼 시로 정치적 신념을 주고받는 멋을 알았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평화상이 아니라 문학상이다. 한국에서도 실제로 정치 무대에서 활약한 문인이 많다. ‘꽃’의 시인 김춘수, ‘겨울공화국’의 양성우 시인, ‘인간시장’으로 유명한 김홍신 소설가 등이 금배지를 달았고,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은 의원에 장관을 지냈다. 소설가 김한길은 국회의원, 당 대표, 장관 등 여러 개의 감투를 쓴 정치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식 등단한 수필가로 대접받았다. 결국 문제는, 현란한 미사여구나 겉치레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시, 문학, 예술의 긍정적 힘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달린 것이다. 즉, 절실한 진정성의 문제다. 시심(詩心)을 소중하게 받드는 정치지도자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희망사항이 너무 거창한가. 다 접어두고, 아주 작고 소박한 부탁 하나만 하고 싶다. 제발 막말, 험한 말, 헛소리, 욕지거리, 삿대질… 좀 그만하시라! 제발, 거짓말은 하지 마시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정치가 사랑 한국 정치판 정치적 상황 이육사 시인
2025.04.10. 18:44
TV 음악 프로그램 JTBC ‘팬텀싱어’시리즈가 시작한 2016년 이후 7년이 흐른 올해 ‘팬텀싱어4’를 최근 최종회까지 모두 시청했다. 남성 사중창단의 하모니를 들으며 형언할 수 없이 감동했다. 국민평가단과 함께 눈물 흘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정치는 왜 국민에게 이런 감동을 주지 못할까.” 한국의 정치 만족도는 지난 2000년 25%로 아시아 꼴찌였지만, 2006년엔 75%로 급등했다는 한 조사가 있었다. 그만큼 괄목할만한 정치발전을 이룬 경험이 있지만, 그 후 줄곧 후퇴해 오늘날 극단적 양극화에 빠졌다. 진영의 깃발은 거세게 나부끼지만, 총선을 9개월가량 앞둔 요즘 유권자의 40%는 찍을 정당이 없다고 한탄한다. 필자가 논평가로 데뷔한 2000년대 초만 해도 정치 양극화가 이렇게 심하진 않았다. 정치인은 정당을 대변했지만, 4~6명으로 구성된 TV토론에서 적어도 2명 이상은 당파와 무관하게 전문가적 식견으로 양당 사이에서 심판관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요즘은 아예 토론이 실종되다시피 했고,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는다. 진실인지 아닌지도 모를 일방적 주장이 유튜브를 가득 채운다. 양극단이 강화될수록 합리적 유권자들은 양당을 외면하고 정치 불신은 깊어진다. 우리 정치가 후퇴한 가장 큰 이유는 합리적 담론 형성의 장이 사라진 데 있다. ‘팬텀싱어’와 바람직한 정치는 한 가지 유사점이 있다. 어제의 경쟁자가 내일의 팀원이 된다는 점이다. ‘팬텀싱어’ 참가자들은 상대 팀보다 더 잘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는데 왜 정치인들은 상대를 적대시하고 악마화할까. 정치판은 ‘팬텀싱어’프로그램의 몇 가지 우수한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첫째, ‘팬텀싱어’에 출연한 경연자는 물론 시청자도 경연 과정에서 전문가의 즉각적이고 투명한 피드백을 받는다. 엄청난 학습을 통해 같이 발전한다. 하지만 정당은 민주주의 학습이 부족한 권리당원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흑백논리에 경도되고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둘째, ‘팬텀싱어’에서는 대학생과 기성 음악가가 평등하고 투명하게 실력으로 경쟁한다. 하지만 정당 공천은 권력자와의 친소 관계나 진영 논리의 포로가 된 권리당원이 좌우한다. 셋째, ‘팬텀싱어’는 각 팀의 하모니와 새로운 시도가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정치에선 청년들의 새로운 시도나 창의성이 억압된다. 가상의 적을 만들어 죽기 살기로 싸우고 무책임한 선동가들이 더 많은 표를 얻는다. ‘팬텀싱어’의 평가 기준과 방식을 그대로 차용해 새로운 토론·심의 경연 TV 프로그램이 탄생하면 좋겠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학습하고 그만큼 우리 정치도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새 토론 프로그램은 ‘팬텀싱어’처럼 여러 명의 심사위원과 참가자 1명이 토론하는 예심을 통해 선발한다. 사회적 갈등 쟁점과 정책에 대한 주제를 주고 일정 기간 준비한 뒤 1대1 토론, 2대2 토론, 3대3 토론에서 살아남은 최종 12명이 세 개의 파이널 팀을 만들어 경쟁하게 된다. 각 팀의 최종 멤버 4명은 반대 입장에서 2대2 토론을 하되 서로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는 심의 과정을 통해 4명이 협력한 단일 해법을 제시한다. 세 팀은 서로 다른 정책 대안을 갖고 토론하되, 심사위원과 국민평가단이 최종적으로 가장 훌륭한 결과를 도출한 팀을 선택한다. 꼼꼼한 심의를 거친 합리적 대안은 실제 정책에 반영될 수도 있고, 여기에서 훈련받고 선발된 참가자들은 정치인에게 꼭 필요한 의사소통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공정하고 투명한 정치의 등용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훈련을 거쳐 탄생한 정치인들은 생각과 이념이 다른 상대와도 협력·타협해 국민께 감동을 주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란 사실을 배운다. 지켜본 국민도 심의 과정과 협력을 통해 흑백논리가 얼마나 단세포적이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지 학습한다. 이렇게 키워진 정치인들은 정파를 뛰어넘어 우정을 쌓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공동의 어젠다를 만들고, 해법을 제시하는 선진국 정치를 실천하게 된다. 현역 국회의원들의 참여도 환영한다. 합리적인 담론 형성의 주체인 언론사들이 민주주의 학습의 장을 제공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 주기를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기숙 /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시론 팬텀싱어 정치가 토론 프로그램 정치 양극화 민주주의 학습
2023.07.23. 17:34
“국민을 비굴하게 만드는 정치가 최악의 정치다.” 마하트마 간디·인도 정치지도자한마디 정치가 국민 정치가 최악 인도 정치지도자 마하트마 간디
2021.12.27. 17:34
한국이나 프랑스나 대선 경쟁이 한창이다. 후보들은 저마다 큰소리로 힘차게 공략을 외치며 세상을 바꾸겠다 한다. 우렁차다 못해 공격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언어의 직접성에 살짝 마음이 놀라기도 한다. 20년 넘게 예술가들이 표현하는 간접적이고 시적이고 은유적인 언어에 익숙하게 살아온 나에게 정치인들의 언어는 참으로 직설적이고 단순하게 다가온다. 얼마 전에 중동 지역 알자지라 방송국에서는 두 명의 인물을 초대해서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현대미술 작가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와 아니쉬 카푸어가 나왔다. 마침 이 둘은 ‘예술은 정치적일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매우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파헤치고, 이를 예술 작품으로 고발해온 중국 출신 작가 아이웨이웨이는 고국인 중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럽으로 망명하여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인도 태생으로 영국에서 살면서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하는 아니쉬 카푸어는 공간을 압도하는 대형 설치와 조각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의 작품에서는 아이웨이웨이 작품과 달리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강한 정치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는 없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에 대한 시적이며 철학적인 사고를 공유하게 된다. 정치적으로 보다 적극적인 행동파 예술가인 아이웨이웨이에게 아니쉬 카푸어는 말한다. “나는 내 작품이 어떠한 정치적인 아이디어나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자 아이웨이웨이는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예술가가 소유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코멘트이다” 라고 답한다. 결국 예술가의 언어는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세상을 향한 예술가들이 지닌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결국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인 언어가 될 수 있다. 피카소가 “여러분 나의 그림은 단순히 거실의 벽에 걸린 장식품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쟁’입니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피카소가 말한 전쟁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개인의 삶의 음지와 양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신저로서의 예술가의 투쟁과 책임감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 언어는 소프트하고 느리고 굽이굽이 좁은 길을 돌아서 도달해야 하는 언어다. 아니쉬 카푸어는 자기가 태어난 인도에서는 자신의 코를 만지기 위해 머리 뒤편으로 손을 돌려서 어렵게 잡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 예술이 지니는 정치적 언어를 설명해준다고 한다. 예술은 항상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해왔다. 조용하게 혹은 저항하는 목소리로. 직설적인 목소리보다 오랫동안 조용히 세상을 바꾸는 간접적이지만 파워풀한 예술가의 언어로. 최선희 /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문화예술톡 언어 정치가 언어 예술가 정치적 언어 아이웨이웨이 작품
2021.12.26. 16:57
한국이나 프랑스나 대선 경쟁이 한창이다. 후보들은 저마다 큰소리로 힘차게 공약을 외치며 세상을 바꾸겠다 한다. 20년 넘게 예술가들이 표현하는 간접적이고 시적이고 은유적인 언어에 익숙하게 살아온 나에게 정치인들의 언어는 참으로 직설적이고 단순하게 다가온다. 얼마 전에 중동 지역 알자지라 방송국에서는 두 명의 인물을 초대해서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현대미술 작가인 아이웨이웨이와 아니쉬 카푸어가 나왔다. 마침 이 둘은 ‘예술은 정치적일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매우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파헤치고, 이를 예술 작품으로 고발해온 중국 출신 작가 아이웨이웨이는 고국인 중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럽으로 망명하여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인도 태생으로 영국에서 살면서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하는 아니쉬 카푸어는 공간을 압도하는 대형 설치와 조각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의 작품에서는 아이웨이웨이 작품과 달리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강한 정치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는 없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에 대한 시적이며 철학적인 사고를 공유하게 된다. 정치적으로 보다 적극적인 행동파 예술가인 아이웨이웨이에게 아니쉬 카푸어는 말한다. “나는 내 작품이 어떠한 정치적인 아이디어나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자 아이웨이웨이는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예술가가 소유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코멘트이다”라고 답한다. 결국 예술가의 언어는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세상을 향한 예술가들이 지닌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결국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인 언어가 될 수 있다. 피카소가 “여러분 나의 그림은 단순히 거실의 벽에 걸린 장식품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쟁’입니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피카소가 말한 전쟁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개인의 삶의 음지와 양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신저로서의 예술가의 투쟁과 책임감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 언어는 소프트하고 느리고 굽이굽이 좁은 길을 돌아서 도달해야 하는 언어다. 아니쉬 카푸어는 자기가 태어난 인도에서는 자신의 코를 만지기 위해 머리 뒤편으로 손을 돌려서 어렵게 잡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 예술이 지니는 정치적 언어를 설명해준다고 한다. 예술은 항상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해왔다. 조용하게 혹은 저항하는 목소리로. 직설적인 목소리보다 오랫동안 조용히 세상을 바꾸는 간접적이지만 파워풀한 예술가의 언어로. 최선희 /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기고 언어 정치가 언어 예술가 정치적 언어 아이웨이웨이 작품
2021.12.26. 1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