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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현대차 급습, 예고된 참사였다

지난 4일 연방 합동수사단이 조지아주 현대차 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했다. 불법체류자 체포는 마치 대규모 대테러 작전처럼 진행됐다. 장갑차와 헬기가 동원됐고, 500여 명의 연방 요원들이 중무장한 채 투입됐다. 한국인 300여 명을 포함해 직원 475명이 붙잡혔다.     HSI는 ‘역사상 단일 현장 최대 규모 작전’이라며 범죄조직원들처럼 수갑에 쇠사슬까지 채운 한인 직원들의 현장 영상을 공개하며 급습 성공을 홍보했다.     이번 작전은 트럼프 행정부의 불체 단속의 결정판이나 마찬가지다. 언제, 어디든, 누구나 잡아가는 강경 대응은 동맹국 최대 투자 기업의 심장부까지 겨눴다. 이번 단속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불법 체류자였고, ICE는 제 임무를 다한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이번 단속은 시기와 방법 면에서 미숙했고 부적절했다.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짓게 하더니 군사작전을 하듯 들이닥쳐 수백 명을 붙잡아가는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 블룸버그 등 주류 언론들도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적 손실은 더 크다. 당장 현대차 공장 건설 차질은 피하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공장 준공 안정화 과정이 지연되면 매일 120만 달러의 이익 기회가 사라진다고 추산한다. 한 달만 늦어도 3600만 달러가 증발하는 셈이다.   단속 여파는 투자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지아주에 5400만 달러를 투자해 생산공장을 짓고 있는 CJ푸드빌은 초비상이다. 또 텍사스에 1억6000만 달러를 들여 제빵공장 건설을 추진중인 SPC그룹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유례없는 단속 강도에 사회적인 반감도 거세다. 민주당 내 아시아계 의원들은 “가족을 찢어놓고 경제에 피해를 주며 글로벌 파트너의 신뢰를 약화시키는 무분별한 행동”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급습 전날 LA 한인타운 세차장에서도 단속이 벌어지면서 한인 사회의 불안과 공포도 더 커지고 있다.   연방 정부의 단속 방식부터 석방 지연까지 일련의 과정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 현대차와 협력사들이 그간 반복해 온 불법과 편법의 관행이다. 이번 단속은 예고된 참사였다. 지난 수년간 공사 현장에서는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잇따랐고, 임금 체불, 부당 대우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본지도 이런 문제점을 수차례 보도한 바 있다. 올해 들어서만 2건의 사망사고가 이어졌다. 한인 유선복씨(45)는 지난 3월 공사 현장에서 지게차에 치여 사망했다. 앨런 코왈스키씨(27)는 지난 5월 지게차에 실린 철근을 내리던 중 짐에 깔려 숨졌다.     공사 현장에서 현재까지 공식 집계된 안전사고만 50건이 넘는다. 이런 안전 불감증과 비용 절감을 위한 ‘빨리빨리’ 문화가 불법체류자 고용이라는 손쉬운 편법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번 사태의 결정적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불법·편법 기용의 기저에는 꽉 막힌 비자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첨단 기술 이전을 위해 숙련된 본국 인력 파견이 필수적이지만, 현행 전문직 취업비자(H-1B)는 추첨 확률이 10%대에 불과한 ‘하늘의 별 따기’다. 호주, 싱가포르 등 다른 동맹국들은 보장된 쿼터를 받지만, 최대 투자국 중 하나인 한국은 10년 넘게 찬밥 신세다. 이런 불합리한 구조가 결국 기업들을 전자여행허가(ESTA)나 단기 상용 비자를 이용한 ‘불법 취업’의 유혹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문제 해결의 급선무는 10년 넘게 숙원 사업으로 남아있는 ‘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비자(E-4)’ 신설이다. 연간 1만 5000개의 비자를 보장하는 이 법안이야말로 기업들이 편법에 기댈 필요 없이 합법적으로 숙련 인력을 운용하고, 미국은 양질의 일자리와 기술 이전을 보장받는 ‘윈윈(win-win)’ 해법이다.   이제는 양국 정치권이 당파를 떠나 한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한인 정치인들은 이번 사태를 구조적 문제 해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국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뒤통수 맞았다”는 야당의 비판에 여당은 “뒤통수 때린 사람 잘못”이라고 설전만 벌이고 있다. ‘돈 대고 뺨 맞는’ 사태는 이번으로 족하다. 한미 양국 상호 존중에 기반한 제도적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한 초당적 노력이 절실하다.사설 현대차 급습 불법체류자 체포 급습 성공 제빵공장 건설

2025.09.10.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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