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리포트] ‘AI 조직’의 습격, 머지 않았다
한국의 어떤 미디어 기업을 컨설팅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AI의 가공할 파워를 알고 있는 담당자는 “우리도 서서히 AI를 도입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어디에 어떻게 도입하실 건가요?” 라고 물으니 “이제 생각해 봐야죠”라고 대답합니다. 또 다른 곳을 방문하니, 서서히 조직 내에서 도입에 합의를 이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구성원들간의 대화를 통해 어떻게 도입할 것인지를 고민하겠다는 겁니다. 또 다른 곳을 방문해 봅니다. 대표이사는 AI 도입에 대한 열의가 매우 강한데, 회사 내에서 신망이 뛰어나다는 담당임원은 정작 어떻게 AI를 도입할 지에 대한 특별한 아이디어가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어쩌면 이 임원은 적당히 혼나지 않을만한, 그러나 생색은 날만한 일을 하면서 넘어갈 생각을 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만난 기업들이 시장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겠지만, 아마 각 조직들의 AI 도입 현황은 대략 이 세 가지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지 않을까 합니다. AI 도입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거나, 도입을 주도할 인재가 없거나, 사내에 걸림돌이 있는 상태. 이 모두는 조직 내의 비효율과 직결돼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도구에 불과한 기술을 소화흡수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조직입니다. AI는 분명 많은 것을 바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 내의 구조적 비효율은 AI가 아직 바꾸지 못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 비효율 때문에 AI는 자신의 영역을 빠르게 구축해 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겁니다. 조직 내부의 낡은 보고 체계, 바꾸기 어려운 권한 구조, 반복되는 회의, 애매한 책임 분배. AI 도입에 대한 기존 구성원들의 반발. 기존 조직들이 이런 것들과 싸우는 동안 밖에서는 새로운 조직이 등장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AI를 기반으로 설계된 AI 네이티브 조직입니다. 이 조직은 기본적으로 과거의 조직과 다를 겁니다. 사람보다 AI를 먼저 믿는 이 조직은 시스템 중심으로 운영되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최소화됩니다. 업무의 80% 이상이 자동화되어 있고, 인력은 50명 이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기존의 1000명짜리 조직이 하던 일을 능가하는 성과를 낼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조직들은 자본(투자자)의 선호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1000명이 1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와 50명이 1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 둘 중에서 누가 더 주주의 몫(배당)을 많이 줄 수 있는지는 답이 명백합니다. 조직이 작으면 의사결정도 빠르고 유연하고, 고정비가 크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투자를 받지 않아도 되므로 창업자와 초기인력의 지분 희석도 작아서 뛰어난 인재들이 더 많이 이런 회사에 참여하려 할 겁니다. 이미 이런 회사들은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생성 솔루션 회사인 ‘미드저니(Mid-Journey)’는 11명의 인력으로 2023년 연매출 약 2억 달러를 달성했었습니다. 러버블(Lovable)은 30명 미만의 인력으로 약 1000만 달러를, Aragon.ai는 단 11명이서 약 5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이제 AI를 중심으로 회사의 조직구조를 설계하여 제품 및 서비스 공급단가를 낮추는 회사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게 되면 기존 기업들에게는 큰 위협이 될 겁니다. 그리고 기존 기업들은 조직 내 비효율 때문에 인터넷, 모바일, 디지털전환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작은 기업들에게 파괴적혁신(Disrupt)을 당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많은 사람들이 AI를 도입하는데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AI를 도입하는 것이 마치 기업이 물건을 구매하듯이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AI를 활용해 기존 산업을 다 뒤집어 버리려는 사람들은 이런 현실에 쾌재를 부를 겁니다. 기존 기업들에게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결단이 부족하고 느리고 관성이 많기 때문에 AI 도입에 느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거꾸로 말하면, 그런 조직들은 AI를 처음부터 끌어안고 빠르게 도입해 나가는 조직문화를 가진 기업들에게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뜻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그런 AI 네이티브 기업들이 시장에 진출할 시기가 머지 않았습니다. 신현규 / 글리터컴퍼니 대표실리콘밸리 리포트 조직 습격 조직 내부 기존 조직들 ai 조직
2025.08.05. 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