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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종이 쪼가리’의 한

엄마는 학교에 가고 싶었다. 엄마가 11살 무렵, 1943년의 이야기이다. 충청도 산골 지름재에 사는 또래 여자아이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마곡사 계곡에 운암 간이 학교가 있었다. 집안의 장손인 엄마 큰 사촌 오빠 혼자만 다녔던 학교.     엄마는 학교에 다니는 꿈을 자주 꿨다. 그러나 거기까지. 그 꿈을 같이 이야기할 사람조차 없었다. 지름재에서 마곡사까지 산길 20리. 길이 멀고 험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집안에 항상 할 일이 많았다. 어린애 손이라고 놀릴 틈이 없었다. 그리고 당시 동네 어른들은 여자 아이에게 글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학교는 못 가더라도 ‘은문(=언문)’은 깨치고 싶었다. 그마저 배울 길이 없었다. 장화홍련전, 숙영낭자전, 조웅전, 유충열전…. 이런 얘기책을 읽고 싶었다. 그 때 시골에서는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는 것을 ‘깨친다’고 했다. 스님들이 도를 깨우치는 것과 맞먹는 큰일로 생각했다.     엄마에게 선생님이 나타났다. 큰 사촌 오빠의 새 각시. 그러나 대놓고 가르칠 수는 없었다. 삼대가 한 집에 사는 새 신부는 눈치를 보아야 할 일이 많았다. 우선 종이 쪼가리 (=쪽지)에 ‘가갸 거겨…’ 한글 샘플을 써서 엄마에게 몰래 주었다. 제사 때 지방 쓰는 종이에 몽당연필로 쓴 한글 자습서.   엄마에게는 유일한 교과서였다. 어른들 몰래 틈틈이 그 종이 쪼가리를 꺼내 공부를 하셨다. 한글의 원리가 머릿속에 그려지려고 할 때 즈음 외할머니한테 들켰다. 하필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때며 그 종이 쪼가리를 보고 있을 때였다. 외할머니는 그 종이를 낚아채서 엄마가 뭐라고 말도 하기 전에 불에 던져버렸다.     “지지배 (=계집애)가 글을 배워서 워따 (=어디에)  써먹을라고.”  외할머니의 무정한 말씀 한마디로 상황 끝.   외할머니 세대와는 달리 엄마 세대에게 글은 쓸데가 많았다. 살아오시면서 한글이 익숙치 않아서 불편을 겪을 때마다 엄마는 “그놈의 종이 쪼가리”사연을 되뇌셨다.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학교에서 오는 가정 통신문을 떠듬떠듬 읽어야 할  때, 보따리 장사를 하며 외상 장부 ‘치부책’ 정리가 너무 시간이 걸릴 때, 도매상에서 물건을 사 오고 그 목록을 점검할 때….   엄마가 한글을 겨우 읽게 된 것은 해방 이후 동네 야학 덕분이었다. 시집을 와서 지름재 보다는 덜 시골인 삼바실에 사실 때였다. 글을 읽을 줄 아는 동네 아저씨가 저녁에 동네 사람들을 사랑방에 모아놓고 글을 가르쳤다. “가자에 ㄱ 하면 각하고, 가자에 ㄴ 하면 간하고,….”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이렇게 배우셨단다.     엄마는 그때 그 상황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래도 사흘 만에 은문을 다 깨쳤지.”  삼일 밤 다니고 아이가 아파서 더는 야학에 가지 못했다. 엄마의 ‘학교’ 꿈은 이렇게 끝났다.   엄마는 겨우 문맹을 면한 한글 실력으로 남의 도움 없이 장사도 하시고, 아파트 관리비도 내시고, 은행 거래도 하셨다. 엄마 말씀대로 “손톱으로 바위를 긁듯” 살아오신 일생에 한글을 깨우친 ‘득도’가 작은 지팡이 노릇을 했다.   이제 90이 넘은 엄마는 그리도 어렵게 배운 글자도 하나하나 버리고 계시다. 엄마의 기억 속에는 이제 ‘ㄱ’자 정도 남아있을까?  ‘종이 쪼가리’의 한도 다 잊으셨기를.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쪼가리 종이 종이 쪼가리 엄마 말씀 장손인 엄마

2024.04.0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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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앤 테크놀로지] 종이로 만든 옷: 60년대 하이테크 패션

뮤지엄 오브 아트 앤 디자인의 특별전시장에 기획전으로 마련된 것은 ‘종이 세대: 60년대 패션 현상(Generation Paper: A Fashion Phenom of the 1960s)’이라는 신기한 패션 전시이다. 2023년 상반기에 아트와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전시가 많이 선보였지만 이처럼 특이한 기획은 없었다. 원래 애리조나의 피닉스 미술관에서 기획한 종이로 만든 드레스 전시는 1960년대 제지산업의 새로운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지금도 화장지 만드는 제조업체로 유명한 스콧 제지회사는 1966년 직조방식이 아닌 방수가 되는 페이퍼 소재의 섬유를 선보였다. 우주시대를 맞이한 신소재 개발을 홍보하기 위해 대중들을 위해서 에이 라인 스타일의 반소매 드레스, 비키니 수영복, 앞치마, 모자 등 홍보제품을 만들어서 배포하였다.     이들 소재는 지금 페덱스(Fedex) 등의 우편물 봉투 혹은 병원의 일회용 가운 등에서 보는 섬유와 비슷하다. 생분해성 의료용 가운(biodegradable medical gown)은 대부분 직조되지 않은 나무 펄프로 만들어진 옷이다. 한편 듀폰 화학회사의 터벡(Tyvek)이라고 불리는 펄프형 파이버는 사실상 플라스틱형 섬유로서 방수, 방염 등이 가능하여 봉투 등 수송 재료로 많이 활용된다.     이번 전시에 드레스들은 화려한 꽃무늬 혹은 기하학적 패턴이 강하게 들어간다. 이것은 1960년대 유행한 팝아트와 시각적 착시 효과에 주목한 옵아트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반전 운동의 시민적 저항 운동에서는 무기 대신에 꽃을 상징으로 도입하였다.     스콧 제지회사 및 여성 및 아동 생활 잡지는 이러한 홍보 물품의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서 쿠폰을 모아서 보내면 ‘종이’ 드레스를 사은품으로 선보이는 등 신소재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 이미지를 연속으로 인쇄한 드레스도 있다. 듀라 위브(DuraWeve)라는 상표명으로 출시된 스콧 제지회사의 신소재는 1958년 특허를 취득하고 1960년대 드레스로 만들어서 홍보하였는데 세븐틴매거진에 나온 스콧 회사 쿠폰 두 장과 1달러 25센트를 보내면 화려한 종이 드레스를 보내주었다.     청소년, 젊은 여성 등은 이러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8개월 동안 50만개의 드레스가 배송되었다. 스콧 제지회사가 홍보하는 일회용 냅킨처럼 입다가 버리는 패션은 간편해 보였지만 이것도 ‘종이’였기에 찢어지는 경우도 많았고 세탁은 불가능하였고 담뱃재라도 떨어지면 불붙기 쉬웠다. 노스캐롤라이나 애쉬빌에 위치한 마스 회사(Mars Manufacturing of Asheville)는 스콧 제지회사의 마케팅 캠페인에 힘입어 케이셀(Kaycel)이라고 하는 93% 셀룰로스와 7% 나일론으로 구성된 섬유로 만든 종이 드레스를 팔았다. 1969년 환경보호단체의 반대 등으로 종이 드레스는 유행에서 멀어지게 된다.     8월 27일까지 전시 중이라고 하니 시원한 여름 패션을 경험하는 기분으로 콜럼버스 서클에 있는 뮤지엄 오브 아트 앤 디자인을 방문해 보기 바란다. 전시에 합당한 교육적 설명문이 더 많았으면 아트와 테크놀로지의 접목을 이해하기가 더 쉬웠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하이테크 종이 스콧 제지회사 드레스 전시 패션 현상

2023.06.0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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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종이 경전과 산 경전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원불교에도 생사에 관한 많은 가르침이 있다.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그것보다는 올바른 삶의 태도와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생사 대사(生死大事, 나고 죽는 큰일)'를 해결해야 한다.   예비 교무시절부터 생사에 관해 무수히 많은 법문을 듣고, 때로는 단상에서 대중을 상대로 '생사의 이치'에 관한 설교를 해 왔지만, 막상 몇 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이러한 법문들이 완전한 내 것이 되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생사에 관한 성현들의 가르침이 당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힘이 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실제 생사 문제에 직면하면서 비로소 머릿속에 머물고 있던 많은 가르침이 가슴으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경전이라 하는 것은 일과 이치의 근본 원리를 밝혀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정당한 도리를 행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이나 사서삼경(四書三經), 팔만장경 같은 서적들만을 경전인 줄 알지만, 세상만사 어느 것 하나 경전 아닌 것이 없다. 우리네 인생사라는 것이 결국은 일과 이치를 현실에 그대로 펼쳐 놓은 것이라고 본다면 인생 자체가 바로 경전이고 진리이기 때문에, 많은 성현들이 일상의 '산 경전'을 통해 진리를 깨우쳐 갈 것을 당부한다.     세상의 모든 일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지만, 실제 경험은 성현의 가르침을 보다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어 준다. 경험만한 스승이 없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며, 필자가 한 사람의 인격을 평가하는데 나이를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 경전은 세상에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있지만, 이는 아무나 볼 수 있는 경전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글이 있다 하더라도 영어로 쓰여 있다면 영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휴지조각과 같은 것처럼, 산 경전을 보고자 하는 의지와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훌륭한 산 경전들도 그저 그런 일상일 뿐이다. 필자와 같이 자연과학에 관심이 없고 문외한인 사람은 떨어지는 사과를 수백 번 본다 한들 '중력'을 떠올릴 리가 만무하고, 인과와 은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면 본인에게 닥친 행불행에서 진리적 의미를 찾는 일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평소 수양을 통해 마음을 맑히고, 종이로 만들어진 경전을 통해 진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추어 가지 않는다면, 일상에서 인간과 우주에 대한 바르고 깊은 이해를 발견할 수 없다. 아무리 생사문제를 가까이서 경험했다 하더라도, 평소 수양과 생사 법문에 대한 이해 정도에 따라 깨달음의 깊이는 달라질 것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 진리는 말과 글에 있지 않다)가 지적하는 문자의 한계와 폐해에도 불가에서 여전히 종이로 된 경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부하는 이유이다.   실지 경계를 통한 단련이 아니면 참다운 실력을 기를 수 없듯이, 산 경전이 아닌 종이로 된 경전만으로는 진리의 궁극에 도달할 수 없다. 평소 꾸준한 신앙과 수행을 통해 산 경전을 볼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갖추어서 일상에 무궁하게 널려있는 진리의 소식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가자.     [email protected] 양은철 / 교무·원불교 미주서부훈련원삶의 향기 경전 종이 종이 경전 하나 경전 생사 문제

2023.02.20. 17:54

[중앙칼럼] 종이 입장권도 어색한 시대

“신문은 이제 더는 신문이 아니라 흘러간 정보를 종이에 모아둔 구문 자료집이야. 지면 내용의 절반 이상이 2~3일 전 것이야. 더 오래된 기사도 적지 않고.”   “웬만한 뉴스는 다 인터넷에서 봤잖아. 요즘은 오히려 광고를 보려고 신문을 뒤적인다니까.”   “탐사보도 중심으로 호흡이 긴 기사를 써서 독자의 흥미를 붙잡아야 한다고 일부 신문쟁이는 주장하는데 이마저도 해법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인터넷 매체들이 동영상까지 곁들여 더 흥미로운 이슈를 재미있게 만들고 있어요.”   “태어나면서부터 아이패드를 가지고 놀던 세대가 이제 청년들이 됐어요. 이들에게 종이로 된 것은 그게 책이든, 보고서든, 신문이든, 심지어 입장권이든 익숙하지 않아요. 디지털 세대에게 익숙한, 그들이 필요로하는 방식의 뉴스 전달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최근 선후배, 지인들과 신문에 관해 나눴던 대화의 일부다. 언론계 종사자로서 나 역시 신문을 포함한 언론사의 역할과 생존을 위한 변화를 끊임 없이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해답은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이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은 있다. 신문의 경제섹션 제작을 책임지고 있을 때까지는 크게 와 닿지 않았으나 디지털본부 뉴스랩을 맡으면서 하나둘 피부로 실감하거나 새롭게 깨닫는 부분들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신문 쪽에 있을 때는 지면을 어떻게 더 알차게 채울까를 고민했었는데 그 고민마저 과연 의미 있는 시간이었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우물 안에서 우물 만큼의 하늘만 본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미 젊은 층을 중심으로 뉴스 소비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뉴스를 찾아 소비하고 있다. 이들은 언론사들이 이미 재단해 내놓은 뉴스만이 뉴스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도 오래다. 단순 소비자나 의견 제시자 수준이었던 뉴스 소비자가 지금은 스스로 뉴스 생산자가 되고 뉴스 유통자로 활동하는 수준이다. 이런 결과는 기존의 종이 신문이나 고정된 방송국 채널을 통해서 충분했던 뉴스 전달 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함을 의미한다.     뉴스 소비자 입장에서도 적지 않은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틱톡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뉴스 브랜드가 생겨나고 있고 뉴스레터 매체도 크게 늘고 있다. 또 특정 독자층을 타깃으로 이들에게 필요한 뉴스만 공급하는 매체가 생겨난다.     독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한 끈끈한 관계 형성에 신경 쓰는 모습도 하나의 트렌드다. 더는 일방적인 뉴스 제공은 의미가 없으며, 너와 내가 의견을 교환하며 서로 함께 만들고 반응하는 뉴스 매체가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각종 캠페인이나 펀딩을 시도하는 것도 독자들과 함께하려는 표현 방식일 것이다.   온라인 뉴스 사이트 입장에서는 사이트 구성에 고민이 많다. 신문이 구독자 수와 광고 효과에 사업적 기반을 두고 있다면 온라인 뉴스 사이트는 클릭 수와 사용자 수가 사업적으로 중요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해당 사이트를 방문하고 있으며 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기사를 클릭해서 보느냐에 따라 수입이 달라진다.     이런 구조는 자연스럽게 언론사의 품위 유지에 필요한 기사와 사이트 방문자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 선호도에 맞는 내용을 어느 선에서 조절하느냐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결국 지금의 언론사 온라인 뉴스 사이트는 뉴스에 대한 신뢰도를 확보하면서 이용자의 선호도를 고려하고, 이용자와의 쌍방 의사소통을 통한 관계 강화까지 해결하면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끊임 없이 찾고 있는 과도기인 셈이다.     미주 중앙일보가 동영상, 영어 사이트, 뉴스레터, 팟캐스트, SNS 활동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투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타깃층 설정과 사이트 유료화, 쌍방 의사소통 통로 개설, 온라인 뉴스 전담 기자 확대 등도 앞으로 해결할 과제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다. 김병일 / 뉴스랩 에디터중앙칼럼 입장권 종이 뉴스레터 매체 디지털본부 뉴스랩 뉴스 소비자

2022.09.1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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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종이 1장 아끼자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와 이메일 시대가 오면 종이 소비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컴퓨터가 있으면 문서로 일일이 보관할 필요가 없고, 이메일을 통하면 종이 없이도 내용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예상은 빗나갔다.  컴퓨터와 이메일 사용에도 여전히 종이는 많이 소비되고 있다. 오히려 이전에는 인쇄소에서만 가능했던 ‘프린트’ 작업을 개인들도 할 수 있어 종이 사용이 늘고 있다. 내 경우도 특별히 종이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데도 편의를 위해 프린트 해서 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인쇄 부분이 전체 종이의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도 작은 규격의 프린트 종이가 없어 큰 종이를 사용한다.     하루의 업무를 마치면 단순히 내용을 참조한 후 버린 종이가 수북이 쌓인다. 이런 종이의 대부분은 뒤쪽 면을 사용하지 않은 것들이다. 부모 세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종이가 무척이나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는데 이제는 너무 흔해졌다.     문제는 종이의 원료가 식물체의 섬유를 추출한 펄프라는 점이다. 재료를 얻기 위해서는 자연 훼손이 불가피한다. 또한 종이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자원을 사용하고, 오염물질도 발생시키고 있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대기의 온도가 올라가고, 지구 자연이 훼손되면 미래에 엄청난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생활 속의 작은 관심만으로도 지구 살리기에 동참할 수 있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 지구의 천연자원을 보존해야 한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종이 한 장을 줄이고 히터의 온도를 조금 낮추는 것도 방법이 될 수가 있다.     미래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은 지구가 유일하다. 우리의 지구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한인진·가디나독자 마당 종이 종이 사용 프린트 종이 종이 소비

2022.01.2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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