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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10만불 장벽, 해답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H-1B 비자 신청 수수료 10만 달러 부과방침이 이민자 사회에 혼란을 낳고 있다.     지난 19일 발표에서 백악관은 “값싼 외국 노동으로부터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미국 최우선’을 정책 목적으로 앞세웠다.     갑작스런 조치에 아직 ‘미국인’이 되지 못한 이민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발표 당시 기존 H-1B 소지자에게 적용 여부가 불분명했고, 재입국 가능성과 갱신·고용주 변경에 따른 영향 등도 명시되지 않았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지난 주말 사이 “수수료는 신규 신청에 한해 1회성 부과”라고 한발 물러섰지만, 현장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10만 달러라는 금액은 사실상 넘기 어려운 장벽이다. 종전 수수료 1000달러의 100배다. 수수료의 급격한 증액에 대기업도 타격을 받겠지만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고용주에게는 더 치명적이다. 결국 채용 축소의 역효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1990년 도입된 H-1B 제도는 지난 35년간 미국이 기술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간이자 첨단 산업계의 모세혈관이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부터 지방의 공공병원까지, 전 세계의 명석한 두뇌를 수혈받아온 통로가 막혀서는 안 된다.   법적·절차적 정당성도 문제다. 정부는 이민 혜택의 수수료를 부과할 권한이 있다. 하지만 행정비용 인상 조치를 넘어 사실상 특정 집단을 겨냥한 억제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권한은 남용이 된다.   무엇보다 큰 논란은 과정의 불투명성이다. 여행금지 권한을 끌어와 즉시 시행하려 한 점, 공고·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점은 예측 가능성과 신뢰 보호라는 행정법의 원칙을 무시한 행위다.   특히 이번 조치는 한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흔들고 있다. 한인 유학생 상당수가 STEM 전공으로 OPT를 거쳐 H-1B를 신청해 경력을 이어간다. 10만 달러라는 장벽은 이들에게 사실상 기회의 사다리를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 인재를 고용하지 못하는 한인 중소기업들의 타격 역시 불 보듯 뻔하다.   정책의 칼날은 개개인의 삶을 파고든다. 체류 신분을 일터와 연동시키는 H-1B의 특성상, 갑작스러운 비용·절차 변화는 가정의 주거·교육·재정 계획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좌절을 넘어, 장차 한인 커뮤니티의 성장을 이끌 잠재적 리더들을 잃는 한인 공동체의 손실이기도 하다.     H-1B 제도의 남용을 막겠다는 목표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해법은 수수료의 장벽이 아니라 정교한 정책 설계에 있다.   우선 임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시장을 왜곡하는 저임금 청탁을 막기 위해 직종별 ‘적정임금(Prevailing Wage)’ 기준을 상향하고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   또 대상에 대한 선별적 접근이 필요하다. 고임금·고숙련 인재에게는 수수료 감면과 신속 심사 혜택을 주고, 반복적으로 H-1B를 대량 청원하는 기업에는 페널티를 부과하는 차등적 규제가 합리적이다. 예외도 필요하다. 대학, 병원, 비영리 연구기관 등 공익성이 높은 분야의 인재들은 보호해야 한다.     무엇보다 모든 제도의 변경은 절차적 투명성에 따라 시행되어야 한다. 충분한 예고와 의견 수렴, 유예기간을 거쳐야 한다.   어차피 올해 회계연도(9월30일 종료) H-1B 쿼터 8만5000개는 이미 소진된 상황이다. 사실상 수수료 인상은 다음 회계연도 신규 신청자들에게 적용될 예정이다. 이제라도 미진한 부분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인 사회도 지켜만 봐서는 안 된다. 한인회, 한인 상공회의소는 물론이고 각 전문직 단체, 대학 동문회들이 머리를 맞대 공동 연대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선배 이민자’들로서 이번 조치의 부당성과 경제적 손실에 대해 따져묻고 지역 정치인들을 상대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 사이 유학생·취업이민 준비생들은 여행·신청 시기·고용계약 조항 등을 점검하고, 고용주는 법률자문을 통해 비용·위험 분담 구조를 다시 계산해야 한다.   미국을 위대하게 한 것은 장벽이 아닌 기회였다. 그 기회 덕분에 한인 이민자들 역시 미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기여해 왔다. 미래의 꿈들이 수수료의 장벽을 넘지못해 좌절되어서 되겠는가.   행정부는 이번 조치 시행을 잠정 중단하고, 예측가능하고 합헌적인 절차에 따라 합리적 개혁안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미국 경제와 이민자 공동체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사설 장벽 신청 수수료 이민자 사회 종전 수수료

2025.09.24.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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