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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20년 지기 친구를 보내고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니, 사고를 냈다고 해야 맞겠다. 선배 언니를 만나러 나서던 길이었다.   모처럼 만남으로 좀 들떠 있었던가. 동네 골목길 모퉁이를 도는 순간, 속도를 내지도 않았는데 무언가 튀어나온 것 같아 그걸 피하는 순간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고, 내 차는 인도에 올라섰다.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눈앞에 떡 하니 가로수가 버티고 있었다.   집을 나선지 5분도 안 된 시점이었다. 에어백이 터지고 앞유리는 길게 금이 갔으며 오른쪽 앞바퀴가 찌부러졌다. 에어백이 펄럭거리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사방에서 달려왔다. “괜찮니?” “구급차를 불러줄까?” “경찰을 부를까?” 모두들 야단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었다. 머리부터 살살 움직여 보았다. 양팔을, 어깨를, 다리를 조심스레 더듬었다. 손끝이 저릿했지만 부러지거나 찢어진 곳은 없는 듯했다.   정신을 차린 후,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사실 며칠 전부터 하찮은 일로 냉전 중에 있던 터였다. 하지만 위급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그는 다친 곳 없느냐고 묻더니 곧바로 달려와 주었다. 기다리고 있을 선배 언니에게 간단히 사정 얘기를 했다. 선배는 오히려 미안해 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다. 간단히 몇 마디 묻고는 다친 사람 없고, 상해 입힌 것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돌아갔다.   견인차가 와서 내 부서진 차를 실었다. 고칠 수 있으면 고쳐서 쓰겠노라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몰던 차였다. 승용차의 평균 수명이 11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 차는 평균 수명을 한참 넘긴 상황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100세를 훌쩍 넘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제때 정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아직은 탈만 했다. 무엇보다도 한 달쯤 전에 배터리도 새것으로 교체하지 않았던가. 녀석은 그동안 나를 들로, 산으로, 바닷가로, 심지어는 사막으로 동서남북 데려다 주며 발이 되어 주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다. 구닥다리 같은 차를 이번 기회에 아예 바꿔 버리라는 충고도 했다.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밖이 소란스러웠다. 견인차에 실려 정비소로 떠난 차가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나와 함께하려고 돌아온 게 아니었다. 점검한 결과 회생 불가능 하다는 진단이 내려졌단다. 영구차가 옛집을 한 바퀴 돌 듯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신발을 끌며 뛰어나가 내 차를 어루만졌다. 착잡한 심정으로 백미러에 달려 있던 장식물을 떼어내고 트렁크에 실린 잡동사니 상자를 들어냈다.   오늘부터는 어느 외진 폐차장에서 쓸 만한 부품은 모두 털리고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삭아져 갈 것이다. 난장에서 비를 맞고 서 있을 처량한 모습이 떠올랐다.   교통사고 후유증인가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그렇지만, 마음은 더 절절했다. 이제 새 친구를 맞으면 다시 그와 새로운 정을 나누게 될 것이지만 오랜 친구와 이별하는 마음이 못내 허허롭고 울적했다. 20년 지기 친구가 견인차에 실려 골목 끝 모퉁이를 돌아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래오래 서 있었다. 이영미 / 수필가이 아침에 지기 친구 지기 친구 선배 언니 동네 골목길

2025.08.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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