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LA다운타운의 JW 메리어트에서 열린 ‘2025 대규모 지식재산 세미나’는 단순한 행사를 넘어 대한민국 지식재산 정책의 전환점을 상징하는 자리였다. ‘첨단 기술과 K-브랜드, IP로 투자하는 미래’라는 주제 아래, 산업·학계·투자·법률 각계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기술과 브랜드, 자본과 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지식재산(IP)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논의했다. 올해는 지식재산 정책사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의 해였다. 지난 10월, 특허청이 국무총리 소속 ‘지식재산처’로 공식 승격되며, IP가 단순한 권리 보호의 영역을 넘어 국가 경쟁력과 산업정책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었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의 IP 정책이 ‘보호 중심’에서 ‘투자와 성장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 결정적인 계기였다. 개회사와 축사에서 연사들은 한목소리로 지식재산 전략은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한국의 최신 정책 동향을 공유하며,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IP의 역할이 단순한 방어 수단을 넘어 산업의 성장 동력임을 확인했다. 세미나의 첫 강연자로 나선 현대 자동차그룹의 허광훈 상무는 ‘자동차 혁신의 미래를 그리다’는 주제로 자사의 지적재산권 현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현대차의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체계적인 IP 전략이 글로벌 경쟁력의 기반이 되었음을 확인했다. 두 번째 강연자로는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회장인 류재현 아이다호 공과대 교수가 나서서 현재 드론 산업계 현황을 설명했다. 토양수자원시스템학과를 맡고 있는 그는 드론과 AI 기술을 활용한 기후 연구를 통해 창의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오후 첫 세션은 진현준 농협 아메리카 법인장이 맡았다. 그는 “올해 9월 현재까지 K-푸드 미국 수출액은 16억 달러로 전년 대비 18.9% 급증했다”면서 “동기간 역대 최대 매출로 올해 전체 수출액 역시 최고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K- 푸드 브랜드의 해외 진출 사례를 소개하면서 “지식재산 보호가 곧 수출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진 법인장에 이어 강단에 오른 클리브랜드 에비뉴의 이민구 대표는 벤처 캐피탈(VC)과 멍거 톨스 앤 올슨 법률사무소의 아담 권 변호사는 각각 IP의 자산 가치 평가와 집행의 실효성을 짚었다. 이처럼 기술, 자본, 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IP는 더 이상 법률적 권리의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 지식 재산은 산업의 언어이자,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적 자산이다. 기술과 문화, 브랜드가 융합된 글로벌 시장에서 IP는 기업 가치의 근간이자 국가 경쟁력의 척도로 기능한다. AI가 발명을 하고, 알고리즘이 음악을 작곡하는 시대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데이터로부터 어떤 지식과 권리를 창출하느냐다. 대한민국은 창의적 인재와 혁신 역량이 풍부한 나라다. 그러나 지식이 보호되지 않으면 노력은 사라지고, 그 가치는 남지 않는다. IP는 발명의 끝이 아니라, 지식이 경제적 가치로 전환되는 통로다. 결국 지식재산 보호는 단순한 방패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는 투자이자 전략적 선택이다. 기술 기업이든 식품 기업이든, 모든 산업은 IP를 중심에 두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지식재산의 본질도 다르지 않다. 새로운 생각과 발명을 존중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 바로 그 사회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래다. 지은정 / 미국 특허변호사·KOIPA LA IP CENTER 센터장지식 재산 컨설팅 지식재산권 브랜드 지식재산 정책사 브랜드 자본 지식재산 전략
2025.11.10. 18:40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특허 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했다. 특허의 가치를 기준으로 수수료를 부과하는, 일종의 ‘재산세’ 개념이 논의되고 있다. 물론 정확한 특허 가치를 산정하는 데에는 본질적인 어려움이 있고, 제도가 실제 시행될 경우 건전한 발명 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어 실제로 시행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특허를 단순한 기술 권리가 아니라 부동산처럼 과세 가능한 재산(property)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 특허청(USPTO)은 연방 정부에서 매년 흑자를 내는 거의 유일한 기관이다. 정부조차 특허를 국가 재정에 기여할 수 있는 자산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지식재산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많은 창업자는 투자 유치와 사업 확장에 몰두한 나머지 특허권·상표권 확보를 뒤로 미룬다. “비용이 부담된다”, “우선순위가 아니다” 등등의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훗날 가장 큰 자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유럽 특허청(EPO)과 EUIPO의 공동 연구(2023년)에 따르면, 특허와 상표를 동시에 출원한 스타트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투자 유치 성공 확률이 최대 10.2배 높았다. 이는 벤처캐피털이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지식재산을 핵심 요소로 본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역사도 이를 증명한다. 에디슨은 수천 건의 특허로 명성과 부를 동시에 얻었고, 조지 셀든은 엔진 특허 한 장으로 막대한 로열티를 거뒀다. 코카콜라와 스타벅스의 기업 가치 역시 물리적 자산이 아니라 상표권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분자진단 기업 ‘씨젠(Seegene)’은 진단키트 특허를 조기에 확보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세계 시장을 선도하며 단숨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에서는 오스틴 러셀이 15세에 개발한 라이다 센서 기술을 특허로 지켜낸 뒤 이를 기반으로 자율주행 센서 기업 ‘루미나(Luminar Technologies)’를 창업해 25세에 억만장자가 되었다. 이처럼 특허와 상표는 국경과 산업을 넘어 기업의 가치를 결정짓는 핵심 동력이 된다. 지식재산권은 스톡옵션과 닮았다. 초기에는 종이 한 장, 변리사 비용 몇천 달러에 불과해 보이지만, 기업이 성장하면 그 가치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뛴다. 다만 스톡옵션이 회사가 주는 수동적 권리라면, 특허·상표는 스스로 출원하고 확보해야만 얻을 수 있는 적극적 권리다. 지식재산은 기다린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쟁취해야 하는 자산이다. 다행히 정부는 기업이 지재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초기 비용 부담이 큰 현실을 고려해, 특허청과 지식재산보호원을 통해 다양한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해외 특허·상표 출원비용 지원은 물론 분쟁 대응 비용 보조와 법률 서비스 연계까지 KOIPA가 수행하는 사업도 많다. 이는 기업이 비용 문제로 권리 확보를 미루지 않도록 돕는 장치다. 결국 지식재산을 확보하는 것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지금의 선택이 미래의 자산 가치를 결정한다. 미국이 특허를 국가 재정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재산으로 인식하며 제도를 개편하는 흐름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역시 지식재산을 단순한 행정이 아니라 국가와 개인의 미래 부를 창출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바라봐야 한다. 보이지 않는 스톡옵션, 지식재산. 권리를 먼저 확보하는 자가 결국 미래의 부를 선점한다. 기업인들은 더 늦기 전에 특허와 상표를 출원하고, 정부의 지원 제도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지식재산은 지금 손에 쥐어야 할 미래의 약속이다. 지은정 / 미국 특허변호사·KOIPA LA IP CENTER 센터장지식 재산 컨설팅 스톡옵션 특허 특허 가치 유럽 특허청 특허 제도
2025.09.09. 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