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 오늘을 대하는 자세
겨울을 나면서 세상을 떠난 분들 소식이 계속됐다. 친구 부모님, 집안 어르신 등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나눴던 분들이 어느 순간 눈을 감으셨다. 선명했던 만남이 기억될수록 고인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참 낯설다. 집안 어르신은 성장기 추억에 주요 등장인물이다. 어르신들을 떠올릴 때마다 어린 시절이 선명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연락이 뜸해졌지만, 막상 더 이상 인사 한마디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체감하니 죄송한 마음이 크다. 어릴 때 집안 어르신들은 못 하는 일이 없을 것 같아 보였다. 말 그대로 정신적 버팀목이었다. 힘들고 지칠 때 기댈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은 인생의 에너지다. 어느 시점에 버팀목은 무너지고 사라졌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자리를 내주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당사자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오만 감정의 소용돌이가 어른이 감당해야 할 무게라는 것인지 반문해 보기도 한다. 친구 부모님의 애정 어린 배려는 잊을 수가 없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나서까지 부모님처럼 응원도 아끼지 않으셨다. 친구는 부모님 병환이 시작되면서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부고를 전하는 친구와 그 부고를 접한 당사자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다. 부고, 준비되지 않고 경험도 없던 만큼 모든 것이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제대로 된 위로의 말조차 전하지 못한 모습을 자책하며, 이 자리를 빌려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부모님 장례를 치르고 난 친구들은 약속처럼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아직은 실감 나지 않는다며 애써 웃음 지으려는 그 모습을 보고 가족과 이별이 무엇인지 어림짐작해 볼 수밖에 없다. 친구는 그동안 정신없이 살아온 이유를 되물었다고 한다.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반문은 지금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곱씹는 모습이다. 가족과 주변인을 향한 고마움의 표현을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보인다. 인생의 곁가지에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감사와 겸손을 체득하고 싶다는 바람도 크다. 부모님이 남기고 간 마지막 가르침이라면 가르침인 셈이다. 양로병원에서 일하는 한 지인은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볼 때마다 삶과 죽음은 현실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전한다. 누군가는 몸에 꽂은 영양 호스 하나로 수개월, 수년을 버틴다. 다른 누군가는 추가 검진과 치료를 마다하고 담담하게 다가올 순간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본인이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행복과 공허의 어디쯤인지 묻고 또 묻는다고 한다. 인생의 행복과 공허는 일상의 풍경이다. 애써 외면하고 달려온 시간 끝에서, 결국 포근한 에너지의 근원은 허물없이 웃고 떠들었던 보고 싶은 얼굴이다. 지금 이룬 성취 여부보다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가 삶의 풍요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허물없는 사람과의 교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삶을 견디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안부 한 마디, 짧은 통화, 의미 없는 수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언젠가라는 안일함으로 미뤄 둔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멀어진다. 소중한 이가 떠난 뒤에야 전하지 못한 말들이 평생 마음에 남게 하는 실수는 되도록 반복하지 않는 것이 좋다. 평소 우리의 삶은 길고 죽음은 멀리 있다고 믿지만, 우리 모두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오늘의 인사는 마지막이 될 수 있고, 평범한 하루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즐기려 노력하면서, 곁에 있는 사람을 소홀히 대하지 않아야겠다. 오늘을 대하는 자세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집안 어르신들 친구 부모님 부모님 장례
2026.01.25.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