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과실치사 '이상한' 처벌…조건부 기소유예형 대체처분
캘리포니아주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람을 숨지게 하고도 단순 음주운전이나 과속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2020년 도입된 형사법 개혁법에 따른 경범죄 다이버전(조건부 기소유예형 대체처분) 제도에서 비롯됐다. 자동차 과실로 인한 사망 사고가 경범죄로 기소될 경우, 운전자가 일정 조건을 이행하면 전과는 물론 가주차량국(DMV) 운전 기록에서도 치사에 대한 사건이 남지 않는 구조다. 비영리 탐사매체 캘매터스는 지난 17일 경범 차량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일부 운전자들이 다이버전 제도를 통해 전과를 남기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으며, 운전 기록까지 무결점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사망 사고가 “과속 티켓 하나보다 가볍게 처리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다이버전 제도는 수십 년 전부터 전국에서 운영돼 왔다. 본래 단순 절도나 마약 소지 등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성인들이 전과로 인해 취업이나 주거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입됐다. 판사가 형사 절차를 일시 중단하고 피고인에게 일정 기간 재활 치료나 사회봉사 등의 조건을 이행하도록 명령한 뒤, 이를 충족하면 사건을 기각하는 방식이다. 그동안은 재향군인이나 정신 건강 문제를 가진 피고인 등 특정 대상에 한해 적용됐고, 검사 동의가 필수 요건이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에서는 2020년 법 개정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개정안에 따라 판사는 검사의 반대에도 거의 모든 경범죄에 대해 다이버전을 명령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갖게 됐고, 피고인이 반드시 이행해야 할 요건도 사실상 최소화됐다. 해당 법안은 민주당 소속 필립 팅 당시 가주 하원의원이 대표 발의했으며, 개빈 뉴섬 주지사가 서명해 법으로 확정됐다. 캘매터스 조사에 따르면 가주에서 다이버전 제도를 통해 차량 과실치사 유죄 판결을 피한 운전자는 최소 30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수의 사건이 봉인 처리되거나 법원 기록에서 삭제된 점을 고려하면 실제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들 대부분은 현재도 유효한 운전면허를 유지하고 있으며, DMV 기록에는 사망 사고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다이버전은 법적으로 유죄 판결로 간주되지 않아 통상 차량 과실치사 운전자에게 부과되는 2점 벌점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보험료 인상이나 교통학교 이수, 면허 정지 등 각종 행정 처분도 함께 피해 가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다이버전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차량 사망 사고 관련 운전자들의 후속 교통 위반 사례도 높다는 점이다. 캘매터스는 다이버전으로 형사 책임을 면한 이들 가운데 3명 중 1명이 이후 과속이나 신호 위반 티켓을 받거나 또 다른 교통사고에 연루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LA에서는 졸음운전으로 자전거 이용자를 숨지게 한 운전자가 다이버전 승인 후 불과 몇 달 만에 신호 위반과 과속으로 적발된 사례도 확인됐다. 검찰 측은 제도의 남용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로셸 비어즐리 새크라멘토카운티 검찰청 검사는 “이처럼 관대한 다이버전 제도는 피해자 가족에게 그들의 고통과 상실이 아무 의미 없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극히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2020년 법 제정에 관여한 LA카운티 수퍼리어법원의 대니얼 로웬탈 판사는 다이버전 제도의 취지 자체는 옹호하면서도 “최소한 다이버전 적용 사실이 DMV 운전 기록에는 남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기소유예형 과실치사 차량 과실치사 조건부 기소유예형 경범죄 다이버전
2025.12.18. 2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