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2세 형제가 한국과 미국, 양국의 주류 문화에서 착안해 설립한 숙취 해소 음료 회사가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더 플러그 드링크(The Plug Drink)의 레이 김(31.CEO)과 저스틴 김(30.COO) 형제. LA한인상공회의소 47대 김봉현 회장의 자제이기도 한 이들 형제로부터 사업 근황과 업계 리더로서의 포부에 대해 들어봤다. -회사에 대해 소개해 달라 “한국 방문길에 과음한 청년들이 편의점에서 숙취해소 음료를 마시는 것을 보고 착안, 미국서도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해 가족들과 지인들이 투자한 100만 달러를 씨드머니로 2019년 ‘더 플러그 드링크’를 설립했다. 연구 개발 끝에 2020년 10월 첨단 증류발효 이슬공법으로 13종의 천연원료가 들어간 숙취해소 음료 ‘더 플러그 드링크’를 출시했다. 친분 있는 할리우드 배우들의 소셜미디어를 통한 홍보 지원 등에 힘입어 팬데믹 기간 중임에도 2021년 100만 달러 매출을 달성했다. 지난해에도 유명 래퍼 잭 할로우를 비롯해 NBA, NFL 선수 등으로부터 투자 유치를 끌어내며 2년 연속 500% 이상 성장했다. 자체 웹사이트(theplugdrink.com)와 전해질 음료 부문 고객만족도 1위를 기록 중인 아마존을 통해 매출의 90%를 올리고 있다. 8명의 직원과 30명의 인턴이 함께 일하고 있다” -미국에 숙취해소 음료 소개 의미는 “미국인들에게 생소했던 간 해독과 숙취해소 음료라는 새 카테고리를 창출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최초의 내추럴 기능성 음료로 주목을 받으며 스타트업 회사로는 최초로 종합격투기 단체 UFC 공식 파트너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븐일레븐, BevMo, 리커반 체인 등 전국 2000여 매장에서 판매되는 등 호평 덕분에 저스틴은 2023년 포브스의 식음료 분야 ‘30세 미만 30인’에 선정됐으며 레이도 클리어코의 기능성 식품 분야 톱3에 선정됨으로써 미국 시장에서 인정받게 됐다고 생각한다”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와 성공 비결은? “할아버지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후 간 건강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데 몰두하게 됐다. 또한 팬데믹 기간 중 주류 소비가 늘어나면서 우리의 임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인생 멘토인 이민자 부모님이 보여준 사랑, 직업윤리, 성취가 성공에 대한 잠재 열망에 불을 지핀 원동력이 됐다” -향후 포부는 “지난해 10월 간 해독 보충제 ‘더 플러그 필’을 출시하는 등 올해 매출 2000만 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매출 신장도 중요하지만, 미국인의 3분의 1 이상이 지방간을 경험할 정도로 간 질환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약초의 효능 홍보와 함께 간 건강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한다. 더 플러그 드링크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의 건강 지킴이 역할을 이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힘쓰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 형제가 이 사업에 매진하는 가장 큰 보람이자 의미다. 한인 커뮤니티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박낙희 기자 [email protected]차세대 리더를 만나다 목표 매출 숙취해소 음료 플러그 드링크 식음료 분야
2023.06.19. 19:28
유명 갤러리인 뉴욕 하시모토 컨템포러리에는 현재 ‘사이구(Saigu)’라는 제목의 그림이 내걸렸다. 시카고 지역 한인 2세 화가인 데이비드 허(31)씨의 작품이다. 세로 36인치, 가로 24인치 작품으로 휴대용 게임기 화면 속에 총을 들고 사업체를 지키는 한인들의 모습이 캔버스에 담겨있다. 그 옆에는 허씨가 ‘사이구’와 같은 사이즈로 그린 ‘로드니(Rodney)’라는 제목의 그림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허씨는 시카고예술대학 미술 석사(MFA) 출신이다. 그림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요즘 현대 미술계에서 신예 화가로 주목받고 있다. 허 작가에게 그가 걷고 있는 예술가로서의 여정을 물었다. -왜 ‘사이구’를 그리게 됐나. “내 생일도 ‘1992년 4월 29일’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축하와 함께 나와 같은 한인들에게는 비극적인 날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셨다. 그때만 해도 ‘사이구’는 나에게 하나의 역사였을 뿐이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미국 사회에 아시안에 대한 인종차별, 인종주의, 계급주의 등이 얼마나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알게 됐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려낸 역사적 탐구의 작품이 바로 ‘사이구’다.” -인종 문제의 뿌리를 알게 된 계기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었다. 이는 ‘사이구’를 촉발한 로드니 킹 사건과 겹쳐진다. 나에게 ‘사이구’는 더는 역사가 아닌 내가 사는 현실이었다. 31년의 시차가 있지만, 상황과 촉매제는 같다.” -정체성이 작품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나는 세 가지 맛을 조합한 ‘나폴리탄 아이스크림’과 같다. 나의 부모님은 1980년대에 텍사스로 온 이민자였다. 이후 조지아에서 나를 낳았다. 나는 집에서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배웠고, 학교에서는 남부 특유의 문화와 신념 등을 익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시카고로 터전을 옮겼다. 이러한 다양한 배경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게다가 시카고는 근면한 노동자, 상인 등을 빗댄 ‘큰 어깨(Big Shoulder)의 도시’로 불린다. 시카고는 그동안 이민자로서 열심히 살아온 부모님의 인생 여정을 떠올리게 하는 도시다. 나는 이러한 다양한 배경 속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90년대생 예술가로서 작품의 공감 요소는. “사회학에서는 최근 ‘제3 문화 아이들(Third Culture Kids)’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줄여서 ‘TCK’라고 하는데 이들은 사회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부모 세대 문화를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고 동시에 주류 문화에 속하게끔 권유받지만, 그곳에서도 ‘다른 것’으로 분류된다. TCK는 이 때문에 표류하게 되고 일종의 ‘불분명한 지역’에 놓이게 된다. 나 역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제3의 문화’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려고 탐구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세대가 TCK를 목격하고 있고, 이는 앞으로 나의 작품 활동 속에서도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왜 미술을 하게 됐나. “대부분의 이민자처럼 우리 부모님도 내가 예술가가 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법이나 의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길 원했다. 때문에 미술 교육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 것도 고등학교 진학 후였다. 이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되기까지 순탄하지 않았다. 나는 작업을 통해 도전하는 것을 즐긴다. 의도적으로라도 창의적으로 살아가길 열망한다. 물론 전업 예술가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때론 ‘가면 증후군’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일이기에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다. 계속 꿈을 꾸고 이러한 의식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게 나의 열망이다.” 장열 기자 [email protected]차세대 리더를 만나다 la폭동 인종차별 시카고예술대학 미술 작품 활동 시카고 지역
2023.05.16. 19:57
"재판에서 지더라도 진실을 제시하는 것이 검사의 가장 높은 윤리적 의무입니다." LA카운티 검찰 센트럴 트라이얼스(Central Trials) 소속 저스틴 김(38.사진) 검사(Felony Trial Deputy)는 지난 2015년부터 법조계에 투신해 올해로 9년 차 검사다. LA카운티에서 기소 시 90%는 유죄를 인정하고 형량을 협상하는 사법 거래로 끝나지만, 나머지는 공판절차로 이어진다. LA다운타운 형사법원(Clara Shortridge Foltz Criminal Justice Center)에서 근무 중인 김 검사는 수백 건의 사건을 맡아 12건의 경범죄와 25건의 중범죄, 총 37건의 재판 경험이 있다. 현재도 10건의 살인사건과 여러 건의 강도, 증오범죄, 폭행 등 30건 이상의 중범죄 케이스를 맡고 있다. 김 검사는 검사의 윤리적 의무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검사에게 수사권이 있지만, 미국 검사는 기소자(litigator)다. 합리적 의심을 넘어 정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며 "물론 검사에게도 승소는 중요한 의미이지만 변호사가 갖는 승소의 개념과 다르다. 진실이 밝혀졌고 무고한 사람이 혐의를 벗었다면 지는 것도 즐거워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 검사는 LA한인사회에서 잘 알려진 김기준 형사법 전문 변호사와 민 김 오픈뱅크 행장의 아들이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를 보며 자랑스러워했다"며 "어쩌면 변호사와 검사라는 상반된 일을 하고 있지만 같은 법조계에서 사람들을 돕는 공통적인 일을 하는 것에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 검사는 "축구에서도 공격수가 있듯이 방어보다는 공격이 성격상 잘맞아서 법대생 시절부터 오로지 검사를 꿈꿨다"고 말했다. 그는 법대생 시절 법률 서기(law clerk)로 일하면서 처음 참여한 재판이 한인 업주를 총격 살해한 강도 사건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처참히 숨진 피해자의 사진과 증거들을 보며 '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며 "하지만 당시 피고의 유죄를 입증한 담당 검사의 손을 부여잡고 고맙다며 우는 유가족을 보며 검사일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검사는 검찰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7~8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전했다. 그는 "법정에 들어설 때 배심원들이 의심의 눈길을 종종 보인다. 마치 검사가 나쁜 쪽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며 "점점 (범죄자를) 기소하기도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김 검사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홈리스와 범죄의 증가와 그간의 소송 적체 건으로 일은 많아졌지만, 검사들의 수는 줄고 있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바뀐 사회적 분위기가 영향을 끼쳤고, 조지 개스콘 검사장의 취임 역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그는 말했다. 김 검사는 "(개스콘은) 기존의 검사장과는 많이 다르다. 기소에 대해 우리가 갖는 철학과도 다르다"며 "체포를 해도 기소되지 않는다는 경찰의 고충을 알고 있다. 현재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떠나는 검사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까운 미래에 상황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규모인 LA카운티 검찰청은 카운티 내 88개 도시 중 자체 검찰청이 없는 78개 도시의 경범죄와 카운티 전역의 중범죄의 공소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800명의 검사가 소속돼 LA다운타운에 있는 형사법원과 각 지역 법원에서 활동 중이다. 김 검사에 따르면 현재 LA카운티 검찰 소속 한인 검사는 40~50명이다. 장수아 기자 [email protected]차세대 리더를 만나다 재판 진실 la카운티 검찰청 la다운타운 형사법원 담당 검사
2023.05.03.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