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2년째였던 지난 2018년 11월, 미국은 ‘차이나 이니셔티브’ 행동에 나섰다. 학계에서 암약하는 ‘중국 스파이’ 색출 작전이었다. 수천 명의 중국인 학자들이 지재권 침탈, 중국과의 음성 거래 등 혐의로 조사받았다. 대부분 증거 불충분으로 드러났고, 결국 ‘이니셔티브’는 2022년 공식 종료됐다. 작전은 흐지부지 끝났지만, 그 여파는 여전히 미·중 학계 판도를 흔들고 있다. 베이징의 창업 단지 중관춘(中關村)에 요즘 주목받은 한 반도체 회사가 있다. 칩 설계 전문 회사인 스모 마이크로일렉트릭스(士模微電子)가 주인공. 설립 4년 만에 고속철도·전기차·전력망 등에 쓰이는 반도체 50여개를 개발했다. 세계 최고 기술로 인정받으면서 투자 업계의 관심이 뜨겁다. 설립자 순난(孫楠·41)은 칭화대 교수다. 수재였다. 2006년 칭화대학을 졸업한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4년 만에 하버드대 박사 학위를 땄다. 2011년 텍사스대(오스틴) 교수로 자리 잡았고, 2017년에는 테뉴어(종신 교수)를 받기도 했다. 뭐하나 부족한 게 없는 학자였지만, ‘스파이 작전’은 피할 수 없었다. ‘첩자’라는 따가운 시선을 느껴야 했고, 연구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국 ‘스파이 색출’ 작전이 한창이던 2020년 미국 생활을 접었다. 지금은 모교 칭화대 전자공학과 교수로, 벤처 회사 CEO로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다. 스타급 학자의 귀국 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세계적인 분자 물리학자 푸샹둥(付向東), ‘나노 발전기의 아버지’ 왕중린(王中林), 혈액암 전문가 청타오(程濤)…. 미국 스탠퍼드대 중국 경제 센터는 2010년 한 해 약 900명이었던 중국인 학자의 유출이 2021년에는 2621명으로 늘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두 손 들어 환영한다. 미국보다 더 우수한 연구 환경과 자금 지원을 제시한다. 귀국 학자들은 후진을 양성하고, 중국 산업의 자생력을 키우고 있다. 이들 덕택에 딥시크 설립자 량원펑(梁文鋒)은 미국 유학 없이도 서방을 능가할 기술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인공지능(AI)·배터리·전기차 등 미래 산업은 이들이 깔아 놓은 과학 인프라를 딛고 도약한다. 트럼프 대통령 2기 집권 이제 40여 일. 그는 중국 제품에 부과했던 기존 10% 관세에 추가로 10%를 더 부과하겠다며 중국을 옥죈다. 관세로 중국 경제의 성장세를 꺾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과연 그럴까? ‘차이나 이니셔티브’는 이 질문에 전혀 다른 답을 내놓는다. 한우덕 / 차이나랩 선임기자중국읽기 이니셔티브 차이나 차이나 이니셔티브 스파이 작전 분자 물리학자
2025.03.03. 22:19
‘G2(Group of Two)’. 미국과 중국을 일컫는 용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이를 전 세계 미디어로 퍼트린 사람이 바로 당시 블룸버그 칼럼니스트였던 윌리엄 페섹이다. 글로벌 경제에 대한 그의 통찰을 보여준다. 페섹이 최근 투자 전문 매체인 배런스에 칼럼을 썼다. ‘중국 디플레가 빠르게 글로벌 경제로 확산될 것’이라는 제목. 그는 “이번에는 의류·장난감 등 임가공 공장이 아닌 테슬라·애플·소니·삼성 등 첨단 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방 첨단 기업이 ‘차이나 쇼크’에 직면할 거라는 얘기다. 이미 현실화하고 있는 흐름이다. 중국은 지난해 전기차 약진에 힘입어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으로 등장했다. BYD는 기존 강자 테슬라를 2위로 밀어냈다. 태양광도 그렇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지난해 글로벌 태양광 패널값은 25% 이상 급락했다. 유럽 태양광 업체는 줄 파산했다. 작년 중국 수출의 최고 히트 상품은 전기차·리튬배터리·태양광 등이다. 전체 수출액이 1조 위안(약 1400억 달러)을 돌파했다. 경기 위축으로 이들 제품의 중국 내수시장은 공급과잉 양상이다. ‘덤핑 수출’, ‘디플레 수출’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반도체 분야도 중국의 디플레 수출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반도체 전쟁(Chip War)』을 쓴 크리스 밀러는 파이낸셜 타임스(FT) 기고에서 “싸구려 중국 칩이 글로벌 시장에 쏟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동차·가전 등 일반 소비 용품에 쓰이는 범용 반도체 제품의 중국 생산량이 5년 후 지금의 두 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매출의 약 25%를 범용 반도체 공정에 의존하고 있는 대만 TSMC도 충격을 피할 수 없다. ‘쇼크’의 시작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었다. 중국은 ‘세계 공장’으로 등장했고, 각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빨아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1차 쇼크가 주로 개발도상국의 제조업에 타격을 줬다면, 이번 2차 쇼크는 선진국 고부가 산업을 위협한다. 미국·유럽·일본 등 서방은 ‘첨단 분야만큼은 중국에 당하지 않겠다’고 방어벽 쌓기에 나선다. 첨단 공장 유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2차 쇼크가 더욱 극렬하게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다. 문제는 우리다. BYD의 전기 승용차가 호시탐탐 국내 시장을 노린다. BYD코리아는 상반기 안에 영업 조직을 짜기 위해 인력 확충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제2차 차이나 쇼크’는 이미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다. 한우덕 / 한국 차이나랩 선임기자중국읽기 차이나 쇼크 차이나 쇼크 디플레 수출 유럽 태양광
2024.03.18. 21:52
매사에 음양이 있듯이 중국 경제도 그렇다. 밝고 어두운 면이 혼재한다. 최근 판궁성(潘功勝) 중국인민은행 총재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 5.0%를 무난하게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의 20%가 중국으로 향하는 우리에겐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어두운 이야기도 들린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단체관광이 불가하던 2017~19년 유커(游客)의 월평균 한국 방문은 41만6000명. 한데 지난 8월 단체관광을 풀었음에도 올해는 월 14만4000명으로 3분의 1 수준이다. 왜? 중국의 경기 둔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상하이와 선전엔 도산과 감원, 실업의 세 가지 바람이 분다고 한다. “8000여 곳에 이력서 제출했고 27개 회사 면접을 봤지만 다 떨어졌다”는 절규가 인터넷 공간을 지배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중국인을 짓누른다. 그 결과 해외여행보다는 저축을 늘리고 있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중국 가계의 초과 저축을 무려 7200억 달러(약 928조5000억원)로 추산한다. 눈여겨볼 건 중국 당국이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말 중국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등 6개국에 대해 1년 한시의 비자 면제 조치를 밝혔다. 그도 그럴 게 지난 상반기 중국을 찾은 외국인은 약 50만 명. 2019년 1400만 명보다 96%가 줄었다. 주중 미 대사관에 따르면 현재 중국 유학 중인 미국인은 350명. 2019년 1만1000명보다 97%가 감소했다. 중국 공항이 썰렁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투자사 록펠러 인터내셔널의 루치르 샤르마 회장이 중국의 세계 속 GDP 비중이 2021년 18.4%에서 올해는 17%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해 화제다. 중국은 1990년 1.7%를 바닥으로 지난 30여 년간 그 비중을 계속 확대해 왔다. 2010년 일본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선 이후 미국 추월이 시간문제로 꼽혀왔다. 한데 이제 33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 속 중국 GDP 비중이 줄게 됐다. 연초 유행한 중국의 성장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피크 차이나’ 논란이 다시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우리는 0.15%포인트 동반 하락한다고 한다. 추운 겨울을 맞은 중국 경제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셈이다. 낙관도 비관도 금물이다. 중국 경제 상황에 대한 더욱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연말이다. 유상철 / 한국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중국읽기 차이나 피크 피크 차이나 경제성장률 목표 현대경제연구원 분석
2023.12.04. 21:02
그동안 중국 경제의 ‘폭망’을 점친 전문가는 많았다. ‘중국의 몰락’ ‘중국발 세계 경제 위기’ 등 외국책이 번역돼 소개되기도 했다. 모두 어긋났다. 중국 경제는 여러 곡절 속에서도 성장을 지속해 세계 2위 반열에 올랐다. 이번엔 ‘피크 차이나(Peak China)’이다. 중국 경제가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주장이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5월 보도한 후 국내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그러면 그렇지, 중국 시대는 이제 끝났어~’라는 유튜버의 말에 클릭이 쏟아진다. 이번에는 맞을까. 충분히 납득이 가는 논리다. 투자에 의존한 중국의 국가 주도형 발전은 분명 한계에 직면했다. 급증한 지방 정부 부채, 부동산 과잉 투자, 인터넷 규제 강화, 여기에 인구감소까지 겹쳐 성장 동력은 소실되고 있다. ‘공동부유’라는 정치 논리에 밀려 민간의 역동성은 떨어지고 있다. 20%를 웃도는 청년실업은 그 대표적인 징후로 꼽힌다. 그런데 의문이 하나 든다. ‘시진핑(習近平)은 왜 안 하지?’라는 것이다. 예전 경우라면 중국 정부는 경제를 성장세로 되돌리기 위해 다시 돈을 풀고, 부동산 규제를 해제해야 했다. 인터넷 플랫폼 업체에 대한 족쇄도 풀었을 것이다. 그런데 안 한다. 오히려 ‘인위적인 부양은 없다’라는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체질 강화를 말한다. 성장이 곧 왜곡을 잉태하는 악순환을 끊어 지속가능한 성장 구조를 짜겠다는 취지다. 그들은 이를 ‘고품질 발전’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동부유 논리에서 후퇴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성장의 한계인지, 아니면 고품질 발전을 위한 과정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동안의 ‘왜곡된 성장’ 속에서도 분명 ‘혁신’은 존재했다는 점이다. 2010년 들어 본격화한 인터넷 혁명은 지금 AI(인공지능), 전기 자동차, 신소재 등 차세대 산업으로 확장 중이다. 많은 분야에서 한국을 추월했거나, 위협하고 있다. 중국 경제는 여전히 꿈틀댄다. 신소재, 첨단 장비제조, 신에너지 자동차 등을 ‘8대 전략 신흥 산업’으로 지정하고 국가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국가가 나서 과학기술 자원을 총동원하는 ‘신형 거국체제’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도 그 대상 중 하나다. ‘중국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라는 단편적 시각으로는 이 같은 움직임을 간파할 수 없다. 그 흐름을 놓치면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피크 차이나’ 논리에 매몰되지 말아야 할 이유다. 한우덕 / 차이나랩 선임기자중국읽기 중국 차이나 피크 차이나 세계 경제 경제 주간지
2023.07.03.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