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망경]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
연말이면 찰리 브라운을 찾는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가 조금씩 달라 보이는 이유는 변함없는 그를 바라보는 내 안목이 차츰차츰 변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남들과 달리 우울해지는 찰리 브라운. 집단의식에 밀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카드를 보내며 트리를 장식해도, “나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아.” 하며 친구 라이너스에게 속을 털어놓는다. - “A Charlie Brown Christmas,” 1965년 12월 9일 CBS TV 스페셜. 길가에 노점을 차려놓고 세션당 5센트를 받으며 정신과 의사를 하는 루시는 말투가 직설적이라 환자들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찰리 브라운을 주인으로 섬기는 스누피는 의사표시를 비언어적으로 하며 때때로 자기는 1차 세계대전 전투기를 조종하는 병정이라는 망상에 빠진다. 스누피의 탁월한 자의식이며 루시의 넘치는 카리스마에 비하면 찰리 브라운은 별로 매력이 없는 성격. 그러나 그런 그를 노골적으로 좋아하는 페퍼민트 패티. 패티와 찰리는 놀이공원에서 솜사탕도 사 먹고과녁 맞히기를 하며 즐거워한다. 그녀는 찰리의 관심을 자기 쪽으로 진하게 유인한다. “우리 지금 좋은 시간을 보내는 거지, 그치? 나는 이런 라이프를 좋아해. 액션을 좋아해. 난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으면 기분이 저조해져. 그래서 나는 늘 움직여.” 그리고 그녀는 찰리를 다그친다. - “너 나하고 같이 있는 거를 좋아하지, 그치?” - “사랑이 무어라고 생각해?” 찰리가 응답한다. “아버지한테서 들은 얘긴데. 옛날에 1934년 2-door 세단을 몰으셨대. 아주 예쁜 여자애가 있었는데 아버지와 같이 차를 타는 걸 좋아했대. 걔가 차를 타려 하면 차 문을 열어주고, 차에 들어간 후 차 문을 닫아주고, 운전석으로 가려고 차 뒤쪽을 돌아서 가는 사이에 걔는 운전석 문을 안에서 잠근 다음 아버지가 차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대. 그리고 차 안에 혼자 앉아 코를 찌푸리며 히죽 웃었다는 거야. 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찰리 브라운은 이상한 아이다. 패티는 전형적인 ‘ordinary people, 일상인’의 ‘뽄때, 本態’를 보여주지만 그의 사랑에 대한 소견은 참 유별나다. 그러나 당신도 생각해 보라. 세상을 관람하는 운영권을 쥔 운전자를 차 밖에 놓아둠으로써 짧은 순간 동안 그 예쁜 여자애가 탐닉한 짜릿한 기쁨에 대하여. 걔는 곧 찰리 아버지에게 운전석 문을 열어 주었을 것이고 둘은 이내 설레는 승차감에 심취했을 것이다. 1997년,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를 그려서 크게 성공한 ‘찰스 슐즈, Charles Schulz(1922~2000)’의 인터뷰에서 왜 찰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unhappy’ 하냐는 질문이 나온다. 대답은 간단하다. “Happiness is not at all funny.” ‘A Charlie Brown Christmas’는 그의 친구들이 ‘Merry Christmas, Charlie Brown!’ 하며 크게 소리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merry’는 고대영어에서 ‘pleasure, joy, 기쁨’이라는 뜻. 전인도유럽어로는 ‘short, 짧다’는 의미였다. 반면에 ‘happy’는 단연 ‘fortunate, 운이 좋다’, 또는 ‘wealthy, 부유하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merry’는 심리적인 것. ‘happy’는 외부적 상황. 하여, 나는 행복보다는 기쁨을 추구하는 찰리 브라운의 순수성을 좋아한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크리스마스 브라운 찰리 브라운 찰리 아버지 크리스마스 시즌
2025.12.23.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