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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시니어 스토리] "이민 첫해 학비 대출이 은행과 첫 인연"

옛말에 '인생에는 (최소) 3번 기회가 있다'는 것이 있다.   첫 한인은행인 한미은행의 박창규 전 이사장(2002-2004)에게는 특히 그런 것 같다. 물론 기회를 잡고 안 잡고는 개인적인 문제지만, 그는 모두 잡았다.   첫 기회는 미국 이민이다. 1941년생인 그는 서울대 약대를 나오고 이민 오자마자 USC약대를 마친 후에 바로 한인타운에 한인이 주인인 첫 약국(올림피아 약국)을 열었다. 지금은 50곳도 넘을 정도로 한국말이 통하는 약국이 많지만 당시에는 한인 약사가 드물어 말이 잘 안 통해 약도 제대로 못 먹던 상황에 구세주 같은 역할을 했다. 문전성시 덕분에 2호점 웨스턴 약국, 3호점 세라노 약국의 문을 열었다.   대략 3번째 기회는 1982년에 왔다.     "어느 날 평소 신뢰가 두터웠던 정원훈씨가 은행을 설립하겠다고 집에 찾아왔어요. 당시엔 한인 자본으로 세운 한인 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창립 이사들에겐 모두 큰 모험이었던 셈이죠."   그래서 한미은행 창립 이사가 됐다. 총 500만달러를 조지 최, 안이준, 안성주씨와 모았는데 그중 6%쯤을 투자했다. 지금 되돌아 보면 은행에  투자한 것이 쉬워 보이지만 정 초대 행장을 100% 신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에 더 공격적인 부동산 투자나 더 안정적인 금융 상품에 투자했다면 훨씬 더 큰 돈을 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한인들에게 친근한 한인은행을 원했다. 한인타운에서 돈을 벌었기에 한인들의 비즈니스를  도울 수 있는 은행을 시작한 것이다. 결과는 "한때 한미은행 너댓번째 개인 주주까지 됐다"고 전한다.   그에게 은행은 또 다른 인연이 있다. 미국에 온 첫 해, USC약대 진학하고 보니 첫 1년 학비 7000달러를 구할 길이 없었다. 크레딧도 없고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는 코리아에서 온 낯선 학생이 약대 학비를 빌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가 지금도 고맙고 감사하는 일이 그때 일어났다. 은행 대출 담당 직원이 그의 얘기를 듣고 학비를 빌려줬다. 코리아에서 온 낯선 학생에게는 매우 기적같은 일이다. 불과 10여 년 후 창립 이사가 된 것도 미국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이다.   네번째 기회는 58세 은퇴 후에 왔다. 돈은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돈 보다 더한 것을 얻었다.   "어려서 이은관의 배뱅이굿, 강옥주의 회심곡을 좋아했다"며 그는 "평생 판소리를 꿈꿨는데 음악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판소리는 물론, 색소폰과 아코디언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났다. 취미생활에 그치지 않고 봉사활동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교회, 양로원까지 공연에 나서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미주에 국악을 알리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2013년부터는 후원하는 '미주한국국악경연대회' 대회장을 맡았고 올해 10회 대회는 10월28일에 개최한다. 또 고원기념 사업회를 설립해 고원문학상을 제정하는 등 문화 사업에도 힘을 쏟으며 보람을 얻고 있다.   박 전 이사장은 "그 옛날 대출 담당 직원을 찾아 보은하고 싶다"며 "그때 학비 대출 덕분에 한인 은행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는 것을 알면 매우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이민 첫해 한인은행인 한미은행 은행 대출 한미은행 창립

2023.07.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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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읽기] 평균수명 짧아진 첫해

 근대 이전의 평균수명은 읽기가 까다롭다. 조선 말엽의 평균수명이 34세였다는 정보를 접하면, 그때는 서른 남짓한 나이에 다들 요절했을 것이라 오해하는 식이다. 그런데 그보다 몇천 년 전의 사람인 공자(孔子)도 73살을 살다 떠났고, 제자인 자공(子貢)도 64살까지 천수를 누리고 떠났다. 공자가 유학(儒學) 대신 오래 사는 비법을 가르친 게 아니라면, 사람들의 평균수명에 대한 인식이 꽤 잘못됐다는 뜻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을 처음으로 연구하여 자료로 남긴 곳은 경성제국대학(서울대의 전신)이다. 일본인 의대 교수가 1926년부터 1930년 사이의 한국인 수명자료를 분석해보니, 그 시기 한국인 평균수명이 34세로 나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난해 90세로 작고한 고(故) 전두환씨가 1931년생이다. 그가 유독 장수한 것이라도 당시 평균수명과의 괴리가 큰데,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즈음엔 태어나는 아이 100명 중 24명이 해를 못 넘기고 죽었기 때문이다. 태어나 0살을 살고 떠나는 아이들이 많으니, 성년까지 생존한 이가 얼마나 오래 사는 가와 별개로 ‘평균’ 수명의 절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한국에도 뒤늦게 근대가 도래하며, 영아 사망과 아동 사망은 빠르게 개선됐다. 아동의 생명을 앗아가는 주요 질병이 백신 접종 덕에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70년 이래 대한민국 평균수명은 단 한 차례도 줄어든 적이 없었고, 꾸준히 상승을 거듭하던 끝에 현재는 83.5세로 세계 2위 수준에 올라섰다.   이런 현상이 한국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구(舊)소련 해체와 함께 국가 기능이 마비됐던 러시아 같은 아주 특수한 일부 예를 제외하면, 주요 선진국에서 평균수명이 감소하는 일은 여태껏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선진국의 평균수명을 인류 발전 수준의 가늠자로 삼아도 될 정도다.   그런 찬란한 역사에 상처를 낸 첫해가 바로 재작년인 2020년, 코로나 대유행 원년이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인데, 영국도 1980년 집계 이래 단 한 차례도 평균수명 하락을 겪지 않았다. 그런데 2021년 말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영국의 평균수명은 80.4세로, 그 전년보다 한 살이나 감소했다. 같은 값을 찾으려면 2009년까지 돌아가야 하니, 코로나 한 번에 10년간 차근차근 누적된 수명 연장 효과가 감쪽같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온라인상에서는 코로나19가 고작 1%만 죽는 ‘감기’란 말이 횡행하고 있지만, 그 1%가 영국에서만 17만 명의 사망을 야기해 평균수명마저 줄였다. 어떻게 봐도 무책임한 발언이다. 차분히 숫자를 읽어야만 상황이 보일 때가 있다. 박한슬 / 약사·작가숫자읽기 평균수명 첫해 당시 평균수명과 평균수명 하락 한국인 수명자료

2022.01.26. 20:16

[기고] 평균수명 짧아진 첫해

근대 이전의 평균수명은 읽기가 까다롭다. 조선 말엽의 평균수명이 34세였다는 정보를 접하면, 그때는 서른 남짓한 나이에 다들 요절했을 것이라 오해하는 식이다. 그런데 그보다 몇천 년 전의 사람인 공자도 73살을 살다 떠났고, 제자인 자공도 64살까지 천수를 누리고 떠났다. 공자가 유학 대신 오래 사는 비법을 가르친 게 아니라면, 사람들의 평균수명에 대한 인식이 꽤 잘못됐다는 뜻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을 처음으로 연구하여 자료로 남긴 곳은 경성제국대학이다. 일본인 의대 교수가 1926년부터 1930년 사이의 한국인 수명자료를 분석해보니, 그 시기 한국인 평균수명이 34세로 나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난해 90세로 작고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31년생이다. 그가 유독 장수한 것이라도 당시 평균수명과의 괴리가 큰데,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즈음엔 태어나는 아이 100명 중 24명이 해를 못 넘기고 죽었기 때문이다. 태어나 0살을 살고 떠나는 아이들이 많으니, 성년까지 생존한 이가 얼마나 오래 사는 가와 별개로 ‘평균’ 수명의 절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한국에도 뒤늦게 근대가 도래하며, 영아 사망과 아동 사망은 빠르게 개선됐다. 아동의 생명을 앗아가는 주요 질병이 백신 접종 덕에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70년 이래 대한민국 평균수명은 단 한 차례도 줄어든 적이 없었고, 꾸준히 상승을 거듭하던 끝에 현재는 83.5세로 세계 2위 수준에 올라섰다.   이런 현상이 한국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옛소련 해체와 함께 국가 기능이 마비됐던 러시아 같은 아주 특수한 일부 예를 제외하면, 주요 선진국에서 평균수명이 감소하는 일은 여태껏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선진국의 평균수명을 인류 발전 수준의 가늠자로 삼아도 될 정도다.   그런 찬란한 역사에 상처를 낸 첫해가 바로 재작년인 2020년, 코로나 대유행 원년이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인데, 영국도 1980년 집계 이래 단 한 차례도 평균수명 하락을 겪지 않았다.     그런데 2021년 말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영국의 평균수명은 80.4세로, 그 전년보다 한 살이나 감소했다. 같은 값을 찾으려면 2009년까지 돌아가야 하니, 코로나 한 번에 10년간 차근차근 누적된 수명 연장 효과가 감쪽같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온라인상에서는 코로나19가 고작 1%만 죽는 ‘감기’란 말이 횡행하고 있지만, 그 1%가 영국에서만 17만 명의 사망을 야기해 평균수명마저 줄였다. 어떻게 봐도 무책임한 발언이다. 정부의 방역 혼선에 대한 분노는 알지만, 차분히 숫자를 읽어야만 상황이 보일 때가 있다. 코로나19는 결코 감기가 아니다.  박한슬 / 약사·작가기고 평균수명 첫해 당시 평균수명과 평균수명 하락 한국인 수명자료

2022.01.2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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